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유물 특별전

등록 2011.06.27.
동아대학교 박물관(관장 정은우)은 7월 30일까지 전라남도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유물 특별전 ‘소현세자 가족의 작은 소망’을 개최한다.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의 복장물(腹藏物ㆍ불상을 봉안할 때 가슴 안쪽에 넣는 물건들로 신앙적인 의미를 지님)은 2009년 11월 송광사 관음전에 봉안돼 있는 목조관음보살좌상을 개금(改金.다시 금칠을 함)하기 위해 상태를 확인하던 중 저고리를 비롯한 의류 2, 시주자 명단 1, 직물조각 11점, 전적 8종 17권, 다라니 2종 423장, 후령통(불상 등을 조성할 때 함께 넣는 금·은·칠보 등의 보물과 오곡·오향·오약 등 복장을 넣는 통) 1, 유리편 1점 등이 발견됐다. 이들 가운데 불상을 제외한 저고리와 직물조각, 전적 등 관련 유물 50여 점이 순회전시의 일환으로 국립고궁박물관에 이어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선보인다. 목조관음보살좌상의 복장물은 보존상태가 매우 뛰어나 당시 불교신앙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조선 시대 복식사 및 서지학과 인쇄문화사에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아 2010년 8월 보물 제1660호 및 제1661호로 지정됐다. 저고리 안감에 적혀있는 발원문을 통해 1662년 소현세자(1612~1645)의 3남인 경안군(慶安君ㆍ1644∼1665) 내외와 궁중 나인이었던 노 씨(盧 氏)와 박 씨(朴 氏) 그리고 당대의 고승 취미수초(翠微守初) 등이 경안군 내외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불상을 제작해 복장물을 넣은 것임이 밝혀졌다. 소현세자는 인조의 장자이자 효종의 형으로 1625년 세자로 책봉됐으나,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아우 봉림대군(뒤의 효종)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 34세인 1645년 한양에 귀환했지만 급사했고, 부인도 임금 독살 혐의를 쓰고 죽음을 당했다. 소현세자의 셋째아들인 경안군이 이렇게 부모를 모두 잃은 것은 2살 때이며, 어머니의 혐의로 인해 형들과 함께 제주도로 유배된 후 두 형마저 죽어 불과 5살의 나이에 홀로 남겨졌다. 이후 13살 때까지 유배생활을 하는 등 불운한 삶을 살았다. 경안군과 송광사의 인연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 수 없으나, 목조관음보살좌상과 복장물에는 조선의 왕손으로 태어나 부모형제를 모두 잃고 홀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했던 경안군의 절실한 염원이 담겨있다.

동아대학교 박물관(관장 정은우)은 7월 30일까지 전라남도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유물 특별전 ‘소현세자 가족의 작은 소망’을 개최한다.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의 복장물(腹藏物ㆍ불상을 봉안할 때 가슴 안쪽에 넣는 물건들로 신앙적인 의미를 지님)은 2009년 11월 송광사 관음전에 봉안돼 있는 목조관음보살좌상을 개금(改金.다시 금칠을 함)하기 위해 상태를 확인하던 중 저고리를 비롯한 의류 2, 시주자 명단 1, 직물조각 11점, 전적 8종 17권, 다라니 2종 423장, 후령통(불상 등을 조성할 때 함께 넣는 금·은·칠보 등의 보물과 오곡·오향·오약 등 복장을 넣는 통) 1, 유리편 1점 등이 발견됐다. 이들 가운데 불상을 제외한 저고리와 직물조각, 전적 등 관련 유물 50여 점이 순회전시의 일환으로 국립고궁박물관에 이어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선보인다. 목조관음보살좌상의 복장물은 보존상태가 매우 뛰어나 당시 불교신앙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조선 시대 복식사 및 서지학과 인쇄문화사에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아 2010년 8월 보물 제1660호 및 제1661호로 지정됐다. 저고리 안감에 적혀있는 발원문을 통해 1662년 소현세자(1612~1645)의 3남인 경안군(慶安君ㆍ1644∼1665) 내외와 궁중 나인이었던 노 씨(盧 氏)와 박 씨(朴 氏) 그리고 당대의 고승 취미수초(翠微守初) 등이 경안군 내외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불상을 제작해 복장물을 넣은 것임이 밝혀졌다. 소현세자는 인조의 장자이자 효종의 형으로 1625년 세자로 책봉됐으나,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아우 봉림대군(뒤의 효종)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 34세인 1645년 한양에 귀환했지만 급사했고, 부인도 임금 독살 혐의를 쓰고 죽음을 당했다. 소현세자의 셋째아들인 경안군이 이렇게 부모를 모두 잃은 것은 2살 때이며, 어머니의 혐의로 인해 형들과 함께 제주도로 유배된 후 두 형마저 죽어 불과 5살의 나이에 홀로 남겨졌다. 이후 13살 때까지 유배생활을 하는 등 불운한 삶을 살았다. 경안군과 송광사의 인연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 수 없으나, 목조관음보살좌상과 복장물에는 조선의 왕손으로 태어나 부모형제를 모두 잃고 홀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했던 경안군의 절실한 염원이 담겨있다.

더보기
공유하기 닫기

VODA 인기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