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지중해 아말피 해안 - 아말피해안도로

등록 2011.06.30.
이건 아이러니다. 평생 한 번 가볼 만한 여행지를 다른 곳도 아닌 비디오게임 속에서 찾아낸 것은. 이탈리아 서부 소렌토반도 남쪽의 아말피 해안(Costiera Amalfitana)도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말피란 이름을 안 건 7년 전. 플레이스테이션2용 자동차운전 시뮬레이터 ‘그란투리스모 4’를 통해서다.

이 게임에는 엘 캐피탄(미국 캘리포니아 주 요세미티국립공원의 수직암벽)등 전 세계 유명 드라이빙 코스와 서킷이 망라됐다. 그중 아말피 서킷이 관심을 끌었다. 지중해(티레니아 해)로 추락하듯 내리뻗은 가파른 산자락 허리에 건설된 해안도로 주변의 멋진 경관 때문이었다. 도로가는 물론 위아래 산과 계곡의 기슭, 해안절벽에 그림처럼 들어선 성냥갑 모양의 집과 동네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파란 하늘, 코발트 빛깔 바다와 어울린 이 풍경은 비록 그래픽이기는 해도 여행본능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알게 됐고 언젠가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아말피 해안을 지난주 다녀왔다. 지구상에서 가장 환상적이라는 SS163 ‘아말피타나’(아말피 해안도로)를 이번엔 게임이 아니라 진짜로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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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산토리니라 불릴 만한 포지타노

로마에서 렌트한 차량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소형. A1고속도로를 따라 나폴리로 향하다가 소렌토반도에서 남쪽으로 빠져 서해안에 접어들었다. 아말피 해안도로의 북쪽 들머리, 포지타노가 멀지 않았다. 해안절벽 오르막의 헤어핀 코스를 돌아 나온 순간. 바다를 `V`자 모양으로 품은 거대한 계곡(면적 8㎢)이 펼쳐졌다. 포지타노였다. 파라솔로 뒤덮인 해변부터 200여m 높이 산기슭까지 계곡은 온통 하얀 집으로 빼곡했다. 주민 4000명이 살기에는 너무도 큰 규모인데 알고 보니 대부분 호텔이었다.

계곡의 산기슭까지 집이 오른 이유. 전쟁과 약탈을 피해서다. 수시로 침탈했던 사라센왕국 등 외적의 침탈 때문이었다. 포지타노는 7~11세기 강력한 독립 해상왕국을 이뤘던 중세 아말피 공국(839~1200년)의 외항. 아말피공국은 당시 이슬람권과 해상무역을 통해 종이 등 귀한 물건을 가져다 유럽에 되팔아 막대한 이익을 남겼는데 그 중심인 아말피는 이 길로 18km 남쪽이었다.

계곡이 온통 집으로 덮인 포지타노 타운에 들어섰다. 길은 해안도로보다 훨씬 좁았다. 그래서 일방통행이었는데 마치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길이었다. 그래도 혼잡은 없었다. 산기슭에 기댄 가게와 호텔, 주택은 모두 천정이 낮아 아담했다. 지붕을 주차장과 마당으로 이용하는 것은 산자락 동네가 터득한 지혜다.

고급 호텔은 해안절벽의 전망 좋은 곳에 있었다. 그중 5성급 부티크 호텔 ‘아가비’를 찾았다. 포지타노 외곽 해안도로 고개 마루에 있었는데 간판만 보일 뿐 건물은 온데간데없었다. 다가 가보니 길 아래 절벽에 있었다. 들어선 로비. 귀족의 저택거실처럼 우아하다. 아래 층 식당은 포지타노의 절경이 180도로 조망되는 전망대. 객실은 가파른 산기슭에 계단처럼 층층(13개)이 들어섰다. 덕분에 50여개 객실 모두에서 바다가 조망된다. 중간쯤에 야외 풀도 있다.

아가비 호텔에만 있는 게 있다. 절벽에 수직으로 들어선 객실, 절벽아래 전용해변을 오르내리는 후니쿨라(지상레일 케이블카·고도차 100m)와 엘리베이터(〃·85m)다. 후니쿨라는 객실과 식당을, 엘리베이터는 해변과 객실 층을 오갔다. 해변은 선박 외에는 외부인의 접근이 불가능했다. 거기엔 식당과 휴식용 데크가 있었는데 그 누구도 방해 없이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이었다. 떠나기 전 야외테라스에서 전망을 즐기며 점심식사를 했다. 스파게티는 물론 레몬과 밤 등 아말피 특산물로 만든 디저트가 예술품 급이었다.

●아말피 해안의 유서 깊은 해변마을 미노르

해안도로의 드라이빙이 어느 정도 익숙해 질 즈음. 길은 몇 개의 터널을 통과한 뒤 해발 0m의 항구가 있는 아말피에 도착했다. 아말피는 당시 이슬람권 항구를 출입하는 무역특권으로 종이 등을 수입, 유럽에 팔아 부를 축적했고 이를 바탕으로 훗날 피사 제노아 베니스와 함께 해상강국으로 성장했다.

현재도 버스와 페리 터미널을 둔 아말피 해안의 중심인데 역시 넓은 계곡처럼 움푹 팬 산등성으로 집들이 산중턱까지 뒤덮었다. 해변은 이미 바캉스 휴가객으로 뒤덮였고 항구는 멀리 카프리 이스키야 두 섬과 나폴리, 소렌토, 포지타노 등 인근에서 관광객을 싣고 오가는 페리보트로 부산했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남쪽 고개 너머(3km) 해변마을인 미노리. 로마시대에 형성된 이 마을은 대주교좌 성당이 1000년 이상 존치됐을 만큼 중심을 이뤘는데 중세 아말피 공국 번성기에는 조선소였다. 해질녘 도착해 보니 번잡함과는 동떨어진 조용한 마을이었다. 수평선에 해가 지기도 훨씬 전인데 마을과 항구는 벌써 그늘져 시원하다. 계곡에 파묻힌 입지(立地) 덕분이다. 이즈음 해변광장은 한낮의 비키니 휴가객을 대신한 산책객 차지. 광장에서는 곳곳에서 이야기꽃이 피었다. 이런 지중해의 여유가 부러웠다. 서울 도심에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도 없는 유려한 한가함이다.

이날 저녁 ‘무어인의 거리’로 명명된 마을 길. 팔뚝 굵기 등나무로 천정을, 레몬트리로 벽을 삼은 정원식당 ‘쟈르디니엘로’에서 식사를 했다. 전식으로 주문한 알리치(앤초비)와 인근 라벨로산 화이트와인이 이룬 맛의 조화. 기대를 넘어선 환상의 풍미였다. 디저트로 레몬껍질에 담아 낸 상큼한 레몬 소르베는 평생 잊지 못할 맛이었다. 레몬은 이곳 특산물이다.

●바그너와 그리그의 음악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산악마을 라벨로

아말피와 미노리를 잇는 아말피 해안도로의 고개 마루로 올랐다. ‘라벨로’ ‘스칼라’ 두 산악마을의 초입이다. 바다가 내려다뵈는 해발 360m 산중턱에 들어선 고대마을인데 거기까지도 좁고 굽은 산악도로가 놓였다. 그 길은 ‘드래곤 밸리’라는 큰 계곡을 지그재그로 올랐다.

스칼라는 이 부근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 꼭대기에 중세성당이 있다. 계곡 건너의 라벨로는 5세기 서로마제국 말기 바바리아 침공에 대비해 마련한 피난지. 9세기에 아말피 공국의 해상무역 배후도시로 번성해 12세기에는 주민 2만5000명의 도시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천상의 풍경’을 간직했다는 ‘빌라 루폴로’(1200년에 완공된 중세별장)를 업고 관광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먼저 루폴로부터 올랐다. 마을 중심은 12세기 건축물 두오모(대성당)가 있는 베스코바도 광장. 광장에 올라서자 계곡건너 산악마을 스칼라와 지중해, 해안과 마을이 두루 조망됐다. 그 바다풍치를 두고 지금도 이런 전설이 전해진다. 사탄이 세상 모두를 주겠다며 광야의 예수를 유혹할 때 두 번째로 데려와 보여주었던 아름다운 곳이 바로 여기였다는.

그뿐이 아니다. 그리그(노르웨이 작곡가)는 이곳의 호텔 토로에 머물며 이 풍경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입센의 환상 시곡을 바탕으로 한 ‘페르귄트 모음곡’을 작곡했다. 영국작가 E.M.포스터와 버지니아 울프도 라벨로를 자주 찾았는데 소설 ‘풍경이 있는 방’(Room with a view·1908년)과 ‘등대로’(To the lighthouse·1927년)에 이곳의 풍치가 담겼다.

라벨로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해안절벽에 지은 빌라 루폴로. 1200년에 이곳 거부 루폴로 가문이 지은 별장이다. 아랍색체가 가미된 이 중세건물은 매년 7, 8월에 여는 ‘루폴로 페스티벌’의 주요 공연장이다. 바그네리안(바그너를 사랑하는 음악 팬)이라면 매년 여름 독일서 열리는 바이로이트 음악축제에만 갈 게 아니라 라벨로 페스티벌에도 참가할 만하다. 왜냐면 이 음악축제 자체가 바그너를 추모해 만든 것이어서 인데 거기엔 사연이 있다.

바그너는 1880년 5월26일 빌라 루폴로를 방문했다. 당시 그는 오페라 ‘파르지팔’을 작곡 중이었는데 2막의 악상과 무대 아이디어를 여기서 찾았다고 한다. 그날 호텔 방문록에 바그너는 ‘드디어 클링소르(오페라에 등장하는 사악한 마술가)의 마술정원을 발견했다.’고 기록했던 것. 두오모 옆 골목의 계단 길엔 ‘바그너의 길’이란 명판도 붙었다. 루폴로 페스티벌은 1953년 바그너 콘서트로 시작했다. 올해는 7월8일~8월27일 모두 60회 공연(클래식 재즈 무용)이 예정돼 있다. 빌라 루폴로의 중심무대는 계단정원의 공중에 임시로 설치한 테라스로 관객은 지중해로 추락하는 안타리산맥의 산자락과 바다를 배경으로 연주를 감상한다. . 빌라 루폴로는 복카치오가 쓴 ‘데카메론’(둘째 날 네 번째 이야기)에도 등장하는데 복카치오 역시 이곳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찾았다.



Travel Info

기온 이탈리아반도 중서부 티레네 해(지중해) 여름 12~29도.

아말피 해안도로 포지타노~비에트리 술 마레 간 49km(SS163호). 해안을 형성한 아타리 산맥의 산자락 허리로 낸 산악도로. 세계최고의 경관도로. 비디오게임 그란투리스모4(플레이스테이션2)에 등재. 루트는 로마~A1고속도로(나폴리)~소렌토~포지타노~아말피~미노리~비에트리 술 마레. 소형차 혹은 택시(www.amalfitaxidriver.altervista.org) 강추.

호텔 르 아가비(포지타노) ★★★★★ 54실 모두 오션뷰. 성수기(6.1~9.30) 1박에 400~550유로. www.leagavi.it www.leagavi.com

빌라 로마나(미노르) ★★★★ 7월 145, 8~9월 165유로 www.hotelvillaromana.it

식당 Giardiniello(미노르) 1955년 개업, 미노리 풍미가 담긴 해물요리 전문. www.ristorantegiardiniello.com

포지타노 로마에서 262km. 유네스코 인류유산 등재.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존 스타인벡(미국)이 잡지(Harper`s Bazaar)에 기고(1953년)한 글 ‘포지타노에 홀리다.’(Positano bites deep)로 유명해짐.

라벨로 아말피에서 5km. www.ravellosense.com www.ravelloarts.org www.villarufolo.it www.ravello.info

아말피 포지타노에서 18km, 나폴리에서 35km. 유네스코 인류유산 등재. 아말피해안의 중심도시.



조성하 동아일보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이건 아이러니다. 평생 한 번 가볼 만한 여행지를 다른 곳도 아닌 비디오게임 속에서 찾아낸 것은. 이탈리아 서부 소렌토반도 남쪽의 아말피 해안(Costiera Amalfitana)도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말피란 이름을 안 건 7년 전. 플레이스테이션2용 자동차운전 시뮬레이터 ‘그란투리스모 4’를 통해서다.

이 게임에는 엘 캐피탄(미국 캘리포니아 주 요세미티국립공원의 수직암벽)등 전 세계 유명 드라이빙 코스와 서킷이 망라됐다. 그중 아말피 서킷이 관심을 끌었다. 지중해(티레니아 해)로 추락하듯 내리뻗은 가파른 산자락 허리에 건설된 해안도로 주변의 멋진 경관 때문이었다. 도로가는 물론 위아래 산과 계곡의 기슭, 해안절벽에 그림처럼 들어선 성냥갑 모양의 집과 동네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파란 하늘, 코발트 빛깔 바다와 어울린 이 풍경은 비록 그래픽이기는 해도 여행본능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알게 됐고 언젠가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아말피 해안을 지난주 다녀왔다. 지구상에서 가장 환상적이라는 SS163 ‘아말피타나’(아말피 해안도로)를 이번엔 게임이 아니라 진짜로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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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산토리니라 불릴 만한 포지타노

로마에서 렌트한 차량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소형. A1고속도로를 따라 나폴리로 향하다가 소렌토반도에서 남쪽으로 빠져 서해안에 접어들었다. 아말피 해안도로의 북쪽 들머리, 포지타노가 멀지 않았다. 해안절벽 오르막의 헤어핀 코스를 돌아 나온 순간. 바다를 `V`자 모양으로 품은 거대한 계곡(면적 8㎢)이 펼쳐졌다. 포지타노였다. 파라솔로 뒤덮인 해변부터 200여m 높이 산기슭까지 계곡은 온통 하얀 집으로 빼곡했다. 주민 4000명이 살기에는 너무도 큰 규모인데 알고 보니 대부분 호텔이었다.

계곡의 산기슭까지 집이 오른 이유. 전쟁과 약탈을 피해서다. 수시로 침탈했던 사라센왕국 등 외적의 침탈 때문이었다. 포지타노는 7~11세기 강력한 독립 해상왕국을 이뤘던 중세 아말피 공국(839~1200년)의 외항. 아말피공국은 당시 이슬람권과 해상무역을 통해 종이 등 귀한 물건을 가져다 유럽에 되팔아 막대한 이익을 남겼는데 그 중심인 아말피는 이 길로 18km 남쪽이었다.

계곡이 온통 집으로 덮인 포지타노 타운에 들어섰다. 길은 해안도로보다 훨씬 좁았다. 그래서 일방통행이었는데 마치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길이었다. 그래도 혼잡은 없었다. 산기슭에 기댄 가게와 호텔, 주택은 모두 천정이 낮아 아담했다. 지붕을 주차장과 마당으로 이용하는 것은 산자락 동네가 터득한 지혜다.

고급 호텔은 해안절벽의 전망 좋은 곳에 있었다. 그중 5성급 부티크 호텔 ‘아가비’를 찾았다. 포지타노 외곽 해안도로 고개 마루에 있었는데 간판만 보일 뿐 건물은 온데간데없었다. 다가 가보니 길 아래 절벽에 있었다. 들어선 로비. 귀족의 저택거실처럼 우아하다. 아래 층 식당은 포지타노의 절경이 180도로 조망되는 전망대. 객실은 가파른 산기슭에 계단처럼 층층(13개)이 들어섰다. 덕분에 50여개 객실 모두에서 바다가 조망된다. 중간쯤에 야외 풀도 있다.

아가비 호텔에만 있는 게 있다. 절벽에 수직으로 들어선 객실, 절벽아래 전용해변을 오르내리는 후니쿨라(지상레일 케이블카·고도차 100m)와 엘리베이터(〃·85m)다. 후니쿨라는 객실과 식당을, 엘리베이터는 해변과 객실 층을 오갔다. 해변은 선박 외에는 외부인의 접근이 불가능했다. 거기엔 식당과 휴식용 데크가 있었는데 그 누구도 방해 없이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이었다. 떠나기 전 야외테라스에서 전망을 즐기며 점심식사를 했다. 스파게티는 물론 레몬과 밤 등 아말피 특산물로 만든 디저트가 예술품 급이었다.

●아말피 해안의 유서 깊은 해변마을 미노르

해안도로의 드라이빙이 어느 정도 익숙해 질 즈음. 길은 몇 개의 터널을 통과한 뒤 해발 0m의 항구가 있는 아말피에 도착했다. 아말피는 당시 이슬람권 항구를 출입하는 무역특권으로 종이 등을 수입, 유럽에 팔아 부를 축적했고 이를 바탕으로 훗날 피사 제노아 베니스와 함께 해상강국으로 성장했다.

현재도 버스와 페리 터미널을 둔 아말피 해안의 중심인데 역시 넓은 계곡처럼 움푹 팬 산등성으로 집들이 산중턱까지 뒤덮었다. 해변은 이미 바캉스 휴가객으로 뒤덮였고 항구는 멀리 카프리 이스키야 두 섬과 나폴리, 소렌토, 포지타노 등 인근에서 관광객을 싣고 오가는 페리보트로 부산했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남쪽 고개 너머(3km) 해변마을인 미노리. 로마시대에 형성된 이 마을은 대주교좌 성당이 1000년 이상 존치됐을 만큼 중심을 이뤘는데 중세 아말피 공국 번성기에는 조선소였다. 해질녘 도착해 보니 번잡함과는 동떨어진 조용한 마을이었다. 수평선에 해가 지기도 훨씬 전인데 마을과 항구는 벌써 그늘져 시원하다. 계곡에 파묻힌 입지(立地) 덕분이다. 이즈음 해변광장은 한낮의 비키니 휴가객을 대신한 산책객 차지. 광장에서는 곳곳에서 이야기꽃이 피었다. 이런 지중해의 여유가 부러웠다. 서울 도심에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도 없는 유려한 한가함이다.

이날 저녁 ‘무어인의 거리’로 명명된 마을 길. 팔뚝 굵기 등나무로 천정을, 레몬트리로 벽을 삼은 정원식당 ‘쟈르디니엘로’에서 식사를 했다. 전식으로 주문한 알리치(앤초비)와 인근 라벨로산 화이트와인이 이룬 맛의 조화. 기대를 넘어선 환상의 풍미였다. 디저트로 레몬껍질에 담아 낸 상큼한 레몬 소르베는 평생 잊지 못할 맛이었다. 레몬은 이곳 특산물이다.

●바그너와 그리그의 음악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산악마을 라벨로

아말피와 미노리를 잇는 아말피 해안도로의 고개 마루로 올랐다. ‘라벨로’ ‘스칼라’ 두 산악마을의 초입이다. 바다가 내려다뵈는 해발 360m 산중턱에 들어선 고대마을인데 거기까지도 좁고 굽은 산악도로가 놓였다. 그 길은 ‘드래곤 밸리’라는 큰 계곡을 지그재그로 올랐다.

스칼라는 이 부근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 꼭대기에 중세성당이 있다. 계곡 건너의 라벨로는 5세기 서로마제국 말기 바바리아 침공에 대비해 마련한 피난지. 9세기에 아말피 공국의 해상무역 배후도시로 번성해 12세기에는 주민 2만5000명의 도시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천상의 풍경’을 간직했다는 ‘빌라 루폴로’(1200년에 완공된 중세별장)를 업고 관광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먼저 루폴로부터 올랐다. 마을 중심은 12세기 건축물 두오모(대성당)가 있는 베스코바도 광장. 광장에 올라서자 계곡건너 산악마을 스칼라와 지중해, 해안과 마을이 두루 조망됐다. 그 바다풍치를 두고 지금도 이런 전설이 전해진다. 사탄이 세상 모두를 주겠다며 광야의 예수를 유혹할 때 두 번째로 데려와 보여주었던 아름다운 곳이 바로 여기였다는.

그뿐이 아니다. 그리그(노르웨이 작곡가)는 이곳의 호텔 토로에 머물며 이 풍경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입센의 환상 시곡을 바탕으로 한 ‘페르귄트 모음곡’을 작곡했다. 영국작가 E.M.포스터와 버지니아 울프도 라벨로를 자주 찾았는데 소설 ‘풍경이 있는 방’(Room with a view·1908년)과 ‘등대로’(To the lighthouse·1927년)에 이곳의 풍치가 담겼다.

라벨로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해안절벽에 지은 빌라 루폴로. 1200년에 이곳 거부 루폴로 가문이 지은 별장이다. 아랍색체가 가미된 이 중세건물은 매년 7, 8월에 여는 ‘루폴로 페스티벌’의 주요 공연장이다. 바그네리안(바그너를 사랑하는 음악 팬)이라면 매년 여름 독일서 열리는 바이로이트 음악축제에만 갈 게 아니라 라벨로 페스티벌에도 참가할 만하다. 왜냐면 이 음악축제 자체가 바그너를 추모해 만든 것이어서 인데 거기엔 사연이 있다.

바그너는 1880년 5월26일 빌라 루폴로를 방문했다. 당시 그는 오페라 ‘파르지팔’을 작곡 중이었는데 2막의 악상과 무대 아이디어를 여기서 찾았다고 한다. 그날 호텔 방문록에 바그너는 ‘드디어 클링소르(오페라에 등장하는 사악한 마술가)의 마술정원을 발견했다.’고 기록했던 것. 두오모 옆 골목의 계단 길엔 ‘바그너의 길’이란 명판도 붙었다. 루폴로 페스티벌은 1953년 바그너 콘서트로 시작했다. 올해는 7월8일~8월27일 모두 60회 공연(클래식 재즈 무용)이 예정돼 있다. 빌라 루폴로의 중심무대는 계단정원의 공중에 임시로 설치한 테라스로 관객은 지중해로 추락하는 안타리산맥의 산자락과 바다를 배경으로 연주를 감상한다. . 빌라 루폴로는 복카치오가 쓴 ‘데카메론’(둘째 날 네 번째 이야기)에도 등장하는데 복카치오 역시 이곳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찾았다.



Travel Info

기온 이탈리아반도 중서부 티레네 해(지중해) 여름 12~29도.

아말피 해안도로 포지타노~비에트리 술 마레 간 49km(SS163호). 해안을 형성한 아타리 산맥의 산자락 허리로 낸 산악도로. 세계최고의 경관도로. 비디오게임 그란투리스모4(플레이스테이션2)에 등재. 루트는 로마~A1고속도로(나폴리)~소렌토~포지타노~아말피~미노리~비에트리 술 마레. 소형차 혹은 택시(www.amalfitaxidriver.altervista.org) 강추.

호텔 르 아가비(포지타노) ★★★★★ 54실 모두 오션뷰. 성수기(6.1~9.30) 1박에 400~550유로. www.leagavi.it www.leagavi.com

빌라 로마나(미노르) ★★★★ 7월 145, 8~9월 165유로 www.hotelvillaromana.it

식당 Giardiniello(미노르) 1955년 개업, 미노리 풍미가 담긴 해물요리 전문. www.ristorantegiardiniello.com

포지타노 로마에서 262km. 유네스코 인류유산 등재.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존 스타인벡(미국)이 잡지(Harper`s Bazaar)에 기고(1953년)한 글 ‘포지타노에 홀리다.’(Positano bites deep)로 유명해짐.

라벨로 아말피에서 5km. www.ravellosense.com www.ravelloarts.org www.villarufolo.it www.ravello.info

아말피 포지타노에서 18km, 나폴리에서 35km. 유네스코 인류유산 등재. 아말피해안의 중심도시.



조성하 동아일보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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