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3사 사극서 필묵 대역 알고보니…

등록 2011.12.07.

글을 연주하는 예술가 - 송민 이주형의 서예미학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과정을 기본 줄거리로 엮은 SBS사극 ‘뿌리 깊은 나무’에는 유달리 많은 서한과 글을 쓰는 장면이 등장한다. 특히 글로 자신의 모든 의사를 피력하는 나인 소희(신세경 분)의 필력은 많은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극에서 서예는 그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작업이다. 드라마 ‘허준’에서 유의태가 죽기 전 동굴에서 허준에게 서찰을 남기는 장면이나 드라마 ‘황진이’에서 명나라 사신이 황진이 치마에 시를 써주는 장면은 글을 쓰는 자체만으로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과연 누가 쓰는 것일까’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40여년 붓길 인생을 살아온 서예가 송민 이주형(50)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송민 선생은 1999년 mbc드라마 ‘허준’을 인연으로 상도, 다모, 대장금, 주몽, 이산, 선덕여왕, 황진이, 추노, 계백, 왕과 나, 뿌리 깊은 나무 등 방송 3사 거의 모든 사극에서 서예자문위원을 맡아왔다. 쓰는 것 외에도 우리말을 한자로 옮기는 번역 작업과 한자를 우리말로 풀이하는 장면도 모두 그의 자문을 거친다.

서울 개봉동에 위치한 서예연구실을 찾았다. 역동적인 그의 필체처럼 너울진 반백의 머릿결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벽면에는 그의 5대 조부가 과거시험에서 썼다는 족자가 걸려 있었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이주형 선생의 어린 시절 머리맡에는 늘 지필묵이 놓여있었다. 종손이었던 그의 부친 또한 마을에서 뛰어난 명필로, 늘 지방과 축문을 쓰셨던 터에 그는 자연스럽게 붓에 대한 감성을 키워갈 수 있었다.

이후 살아오는 과정에서도 송민 선생의 인생에서 붓은 늘 곁에 있었다. 심지어 군생 활에서 조차 붓과 함께 했다. 훈련소 시절 뛰어난 그의 실력이 주목받아 국군 논산병원에서 장교들을 상대로 서예를 지도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서예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부터는 하루 6000자, 18시간을 글쓰기에 매진할 정도로 서예에 미쳐 지냈다. 낙성비룡과 옥원듕회연, 봉셔 등 고전 자료를 임서하며 필법을 연구하는데 온힘을 기울였다.

이런 가운데 ‘광개토대왕비의 비문자’에 관한 연구로 받은 철학박사학위는 세계 최초라는 영애를 안았다. 또한 칠갑산에서 펼친 길이 105m, 폭 4.5의 필금무(필묵[필] 행위를 거문고[금], 춤[무]과 어루려저 하는 것)는 가히 국내 최대라 칭송할만한 대 장관을 기록했다.

드라마에서 그는 단순한 대필을 벗어나 글 자체에 역사적 배경과 글쓴이의 감정, 신분을 드러내고자 많은 연구를 한다. “명필이라고 볼 수 있는 글은 그 속에서 기운 생동감이 나타나야 합니다. 희로애락을 이미지화 시키는 것입니다.” 또 천민, 평민, 선비, 사대부, 왕, 무인, 문인 모든 신분에 따라 필체를 달리한다고 말했다.

“추노의 경우에는 타이틀 글자가두자밖에 되지 않아도 쓰기 전에 시놉시스를 받아 충분히 읽어보고 감정을 조절해서 씁니다. 노비를 쫒는 모습과 도망자들, 구석진 헛간. 갈대숲, 말 타고 달릴 때 나는 흙먼지 등을 상상하며두자를 썼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으로는 ‘허준’에서 유의태 유언장 기록 장면을 꼽았다 “의정부 쪽에 있는 한 동굴에서 촬영을 했는데 그때가 혹한기였어요. 어찌나 춥던지 글을 쓰려고 붓을 먹에 찍으면 먹물이 얼어붙는 거예요.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어렵게 촬영했던 기억이 납니다”

때로는 출연 배우를 지도해 직접 쓰게 하기도 한다. 올해 초 방영됐던 드라마 ‘짝패’에서 ‘동녀’역을 맡았던 배우 한지혜 씨는 그가 꼽는 우수 제자다. 몇 번의 지도 끝에촬영에 임할정도로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서예에 대한 관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 그는 국내를 비롯해 유럽과 러시아 일본 등지에서 매년 수차례 서예 퍼포먼스를 통해 서예 대중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 그의 노력 덕분인지 국내 몇몇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으로 하는 학과를 운영 하고 있으며 적지 않은 학생들이 송민 선생의 뒤를 이어 붓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나인 소희(신세경 분)의 손 대역을 맡고 있는 이정화(경기대 서예학과 2년), 장순영(경기대 대학원 서예문자예술학과 ), 김세린(대전대 서예학과 4년)씨가 그의 제자들이다.

인터뷰 도중 그는 서예를 듣는다는 표현을 쓰곤 했다. “춘추시대 거문고 명수였던 ‘백아’가 자기 연주를 들어주던 마지막 사람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타지 않았다는 백아절현(伯牙絶鉉)의 고사처럼, 서예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소박한 희망으로 말을 맺었다.
동영상 뉴스팀 l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글을 연주하는 예술가 - 송민 이주형의 서예미학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과정을 기본 줄거리로 엮은 SBS사극 ‘뿌리 깊은 나무’에는 유달리 많은 서한과 글을 쓰는 장면이 등장한다. 특히 글로 자신의 모든 의사를 피력하는 나인 소희(신세경 분)의 필력은 많은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극에서 서예는 그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작업이다. 드라마 ‘허준’에서 유의태가 죽기 전 동굴에서 허준에게 서찰을 남기는 장면이나 드라마 ‘황진이’에서 명나라 사신이 황진이 치마에 시를 써주는 장면은 글을 쓰는 자체만으로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과연 누가 쓰는 것일까’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40여년 붓길 인생을 살아온 서예가 송민 이주형(50)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송민 선생은 1999년 mbc드라마 ‘허준’을 인연으로 상도, 다모, 대장금, 주몽, 이산, 선덕여왕, 황진이, 추노, 계백, 왕과 나, 뿌리 깊은 나무 등 방송 3사 거의 모든 사극에서 서예자문위원을 맡아왔다. 쓰는 것 외에도 우리말을 한자로 옮기는 번역 작업과 한자를 우리말로 풀이하는 장면도 모두 그의 자문을 거친다.

서울 개봉동에 위치한 서예연구실을 찾았다. 역동적인 그의 필체처럼 너울진 반백의 머릿결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벽면에는 그의 5대 조부가 과거시험에서 썼다는 족자가 걸려 있었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이주형 선생의 어린 시절 머리맡에는 늘 지필묵이 놓여있었다. 종손이었던 그의 부친 또한 마을에서 뛰어난 명필로, 늘 지방과 축문을 쓰셨던 터에 그는 자연스럽게 붓에 대한 감성을 키워갈 수 있었다.

이후 살아오는 과정에서도 송민 선생의 인생에서 붓은 늘 곁에 있었다. 심지어 군생 활에서 조차 붓과 함께 했다. 훈련소 시절 뛰어난 그의 실력이 주목받아 국군 논산병원에서 장교들을 상대로 서예를 지도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서예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부터는 하루 6000자, 18시간을 글쓰기에 매진할 정도로 서예에 미쳐 지냈다. 낙성비룡과 옥원듕회연, 봉셔 등 고전 자료를 임서하며 필법을 연구하는데 온힘을 기울였다.

이런 가운데 ‘광개토대왕비의 비문자’에 관한 연구로 받은 철학박사학위는 세계 최초라는 영애를 안았다. 또한 칠갑산에서 펼친 길이 105m, 폭 4.5의 필금무(필묵[필] 행위를 거문고[금], 춤[무]과 어루려저 하는 것)는 가히 국내 최대라 칭송할만한 대 장관을 기록했다.

드라마에서 그는 단순한 대필을 벗어나 글 자체에 역사적 배경과 글쓴이의 감정, 신분을 드러내고자 많은 연구를 한다. “명필이라고 볼 수 있는 글은 그 속에서 기운 생동감이 나타나야 합니다. 희로애락을 이미지화 시키는 것입니다.” 또 천민, 평민, 선비, 사대부, 왕, 무인, 문인 모든 신분에 따라 필체를 달리한다고 말했다.

“추노의 경우에는 타이틀 글자가두자밖에 되지 않아도 쓰기 전에 시놉시스를 받아 충분히 읽어보고 감정을 조절해서 씁니다. 노비를 쫒는 모습과 도망자들, 구석진 헛간. 갈대숲, 말 타고 달릴 때 나는 흙먼지 등을 상상하며두자를 썼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으로는 ‘허준’에서 유의태 유언장 기록 장면을 꼽았다 “의정부 쪽에 있는 한 동굴에서 촬영을 했는데 그때가 혹한기였어요. 어찌나 춥던지 글을 쓰려고 붓을 먹에 찍으면 먹물이 얼어붙는 거예요.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어렵게 촬영했던 기억이 납니다”

때로는 출연 배우를 지도해 직접 쓰게 하기도 한다. 올해 초 방영됐던 드라마 ‘짝패’에서 ‘동녀’역을 맡았던 배우 한지혜 씨는 그가 꼽는 우수 제자다. 몇 번의 지도 끝에촬영에 임할정도로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서예에 대한 관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 그는 국내를 비롯해 유럽과 러시아 일본 등지에서 매년 수차례 서예 퍼포먼스를 통해 서예 대중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 그의 노력 덕분인지 국내 몇몇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으로 하는 학과를 운영 하고 있으며 적지 않은 학생들이 송민 선생의 뒤를 이어 붓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나인 소희(신세경 분)의 손 대역을 맡고 있는 이정화(경기대 서예학과 2년), 장순영(경기대 대학원 서예문자예술학과 ), 김세린(대전대 서예학과 4년)씨가 그의 제자들이다.

인터뷰 도중 그는 서예를 듣는다는 표현을 쓰곤 했다. “춘추시대 거문고 명수였던 ‘백아’가 자기 연주를 들어주던 마지막 사람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타지 않았다는 백아절현(伯牙絶鉉)의 고사처럼, 서예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소박한 희망으로 말을 맺었다.
동영상 뉴스팀 l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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