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복서-1> 권투도 인생도 ‘4전 5기’ 홍수환

등록 2012.03.21.

“여가수와 스캔들났다고 경기출전막아”
“그렇게 싫어하던 권투위원회 회장된 건 아이러니”

1978년 11월 26일. 파나마에서 열린 WBA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 결정전. ‘지옥에서온 복서’ 카라스키야는 폭풍같은 펀치로 홍수환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다. 2라운드에서만 4번의 다운. ‘4번 간 놈이 5번은 못 가겠느냐’ 홍수환은 다시 일어났다. 시련은 링위에서만 닥치는 것이 아니었다. 인생에서는 더 큰 고난과 역경이 그를 쓰러뜨렸다. 그때마다 그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별 볼일 없던 선수에서 ‘국민 영웅’으로
홍수환은 주목받지 못하던 선수였다. 중앙고 2학년 시절부터 복싱을 시작했지만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아마추어 시합 2번을 모두 진 후 프로로 전향했지만 데뷔전에서도 수세에 몰리다 겨우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 때 어머니는 탈의실로 그를 찾아와 “이왕 시작한 거 한번은 이기고 그만둬라”고 말했다. 2전째에 첫 승을 거둔 홍수환은 ‘아! 복싱이 이런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로는 연승가도를 달렸다.
프로 첫 패배는 데뷔 이듬해인 70년 6월 9일. 일본 원정에서 우시와까마루 하라다에게 석연치 않은 판정패를 당했다. (하라다에게는 72년 장충체육관에서 설욕전에 성공했다) 그보다 더 뼈아팠던 패배는 71년 콜리 살로마에게 당한 패배였다. 71년 11월 7일 오르테가와 10라운드 판정까지 가는 소모전을 펼친 홍수환은 닷새만에 괌으로 날아가 살로마와 싸웠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살인적인 경기일정이다. 체중도 700g그램을 더 빼야했다. 최악의 몸상태로 경기에 나선 홍수환은 일방적인 난타를 당한 끝에 판정패했다. 홍수환은 “선수가 매니저에게 종처럼 부려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했기 때문에 지더라도 판정까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한 그는 “너무 많이 맞아서 잊혀지지않는 경기”라고 회상했다.
프로에서 2번의 패배를 맛본 홍수환은 3번째 패하면 은퇴하겠다는 각오로 운동에 매진했다. 파죽지세로 연승을 쌓고 동양챔피언까지 따낸 그는 1974년 남아공 더반에서 세계 챔피언 타이틀전을 갖게 된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멘트로 유명세를 타게 된 그 경기다. 원정경기의 불리함을 딛고 15라운드 판정승을 거둔 그는 개선장군이 돼서 돌아왔다. 유력 신문 1면을 장식했고 일등병 신분으로 군사열도 받았다. 홍수환은 그때 당시를 생각하며 “도전할 때의 절실했던 마음이 사라지게 됐다”고 고백했다.

병주고 약 준 라이벌 알폰소 자모라마음이 안이해지자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홍수환은 이듬해 LA원정에서 알폰소 자모라에게 타이틀을 빼앗겼다. 그는 “자모라와의 첫 시합은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여건이 최악이었다. 데리고 갔던 트레이너 두 명이 홍수환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감량중인 홍수환 앞에서 물을 마시고 식사를 하기도 했다. 홍수환은 “그때 ‘내가 누굴 위해서 싸워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었다”고 말했다. 시합전에 먹은 꿀도 화근이었다. 시합장에 들어서기 전 할아버지가 보내주신 꿀단지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는 것. 꿀을 먹고 올라간 홍수환은 3라운드부터 거리가 안잡히기 시작했다. “꿀에 취해서 졌다”는게 그의 변.
실력으로는 지지않았다고 생각한 홍수환은 억울한 마음에 사비를 털어 자모라를 인천으로 불러들였다. 집과 목욕탕을 팔아 대전료 10만 달러를 만들고 도전했지만 또다시 KO패를 당하고 만다. 그 당시에도 억울한 마음은 있었다. 더 싸울 수 있다는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심판이 서둘러 경기를 종료시켜버린 것. 홍수환은 “정확히는 무효경기가 되는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도전자는 비겨도 진거니까”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모라는 의기소침해 있는 홍수환에게 선물을 주고 간다. 전형적인 아웃복싱 스타일에 펀치력이 약했던 홍수환에게 “도끼질을 하면 펀치력이 좋아진다”고 조언 한 것. 이후 새로운 훈련법을 배운 홍수환의 펀치력이 좋아졌음은 물론이고 그것으로 카라스키야를 때려눕히며 4전 5기 신화를 써내려갔다.

나 같은 선수 다신 없었으면
홍수환은 “사실은 사람들에게 ‘4전 5기 신화’를 이야기할 땐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고 고백했다.
“왜냐하면 그땐 뭐가 뭔지 몰랐거든요. 여기와서 보니까 완전히 기억이 나더라고. 그걸 이제 약간 미화시켜서 이야기하는거죠.”

WBA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이 된 홍수환은 다시 한번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가수 옥희와의 스캔들이 터지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던 국민들은 검지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리카르도 카르도나에게 패하며 타이틀을 상실하자 비난의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이후로는 시합이 잡히지도 않았다. 권투위원회가 괘씸죄를 들어 그의 경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2년 반만에 겨우 성사된 라이벌 염동균과 재기전을 끝으로 홍수환은 링을 떠난다.

“그럴 순 없는거 아니예요? 권투위원회가 선수를 죽인거라고 선수를 아끼지 않고. 이때부터 권투위원회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권투위원회 회장으로 왔으니 참 재미있는 인생입니다”

홍수환은 파행을 거듭하던 회장단 중심의 집행부를 밀어내고 전국총회를 개최해 22번째 회장에 올랐다. WBA와 WBC는 홍회장 체제에 즉각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전임집행부는 홍수환 회장과 신임집행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상태다. 그러나 홍회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권투위원회가 막지 않았다면 선수생활 3~4년은 더했을 겁니다. 저같은 선수가 없게 만들겠습니다. 정말 선수위주로 키우겠습니다. 프로복싱 영광의 시절을 다시 만들겠습니다”

백완종 동아닷컴 기자 100pd@donga.com


“여가수와 스캔들났다고 경기출전막아”
“그렇게 싫어하던 권투위원회 회장된 건 아이러니”

1978년 11월 26일. 파나마에서 열린 WBA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 결정전. ‘지옥에서온 복서’ 카라스키야는 폭풍같은 펀치로 홍수환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다. 2라운드에서만 4번의 다운. ‘4번 간 놈이 5번은 못 가겠느냐’ 홍수환은 다시 일어났다. 시련은 링위에서만 닥치는 것이 아니었다. 인생에서는 더 큰 고난과 역경이 그를 쓰러뜨렸다. 그때마다 그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별 볼일 없던 선수에서 ‘국민 영웅’으로
홍수환은 주목받지 못하던 선수였다. 중앙고 2학년 시절부터 복싱을 시작했지만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아마추어 시합 2번을 모두 진 후 프로로 전향했지만 데뷔전에서도 수세에 몰리다 겨우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 때 어머니는 탈의실로 그를 찾아와 “이왕 시작한 거 한번은 이기고 그만둬라”고 말했다. 2전째에 첫 승을 거둔 홍수환은 ‘아! 복싱이 이런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로는 연승가도를 달렸다.
프로 첫 패배는 데뷔 이듬해인 70년 6월 9일. 일본 원정에서 우시와까마루 하라다에게 석연치 않은 판정패를 당했다. (하라다에게는 72년 장충체육관에서 설욕전에 성공했다) 그보다 더 뼈아팠던 패배는 71년 콜리 살로마에게 당한 패배였다. 71년 11월 7일 오르테가와 10라운드 판정까지 가는 소모전을 펼친 홍수환은 닷새만에 괌으로 날아가 살로마와 싸웠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살인적인 경기일정이다. 체중도 700g그램을 더 빼야했다. 최악의 몸상태로 경기에 나선 홍수환은 일방적인 난타를 당한 끝에 판정패했다. 홍수환은 “선수가 매니저에게 종처럼 부려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했기 때문에 지더라도 판정까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한 그는 “너무 많이 맞아서 잊혀지지않는 경기”라고 회상했다.
프로에서 2번의 패배를 맛본 홍수환은 3번째 패하면 은퇴하겠다는 각오로 운동에 매진했다. 파죽지세로 연승을 쌓고 동양챔피언까지 따낸 그는 1974년 남아공 더반에서 세계 챔피언 타이틀전을 갖게 된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멘트로 유명세를 타게 된 그 경기다. 원정경기의 불리함을 딛고 15라운드 판정승을 거둔 그는 개선장군이 돼서 돌아왔다. 유력 신문 1면을 장식했고 일등병 신분으로 군사열도 받았다. 홍수환은 그때 당시를 생각하며 “도전할 때의 절실했던 마음이 사라지게 됐다”고 고백했다.

병주고 약 준 라이벌 알폰소 자모라마음이 안이해지자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홍수환은 이듬해 LA원정에서 알폰소 자모라에게 타이틀을 빼앗겼다. 그는 “자모라와의 첫 시합은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여건이 최악이었다. 데리고 갔던 트레이너 두 명이 홍수환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감량중인 홍수환 앞에서 물을 마시고 식사를 하기도 했다. 홍수환은 “그때 ‘내가 누굴 위해서 싸워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었다”고 말했다. 시합전에 먹은 꿀도 화근이었다. 시합장에 들어서기 전 할아버지가 보내주신 꿀단지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는 것. 꿀을 먹고 올라간 홍수환은 3라운드부터 거리가 안잡히기 시작했다. “꿀에 취해서 졌다”는게 그의 변.
실력으로는 지지않았다고 생각한 홍수환은 억울한 마음에 사비를 털어 자모라를 인천으로 불러들였다. 집과 목욕탕을 팔아 대전료 10만 달러를 만들고 도전했지만 또다시 KO패를 당하고 만다. 그 당시에도 억울한 마음은 있었다. 더 싸울 수 있다는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심판이 서둘러 경기를 종료시켜버린 것. 홍수환은 “정확히는 무효경기가 되는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도전자는 비겨도 진거니까”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모라는 의기소침해 있는 홍수환에게 선물을 주고 간다. 전형적인 아웃복싱 스타일에 펀치력이 약했던 홍수환에게 “도끼질을 하면 펀치력이 좋아진다”고 조언 한 것. 이후 새로운 훈련법을 배운 홍수환의 펀치력이 좋아졌음은 물론이고 그것으로 카라스키야를 때려눕히며 4전 5기 신화를 써내려갔다.

나 같은 선수 다신 없었으면
홍수환은 “사실은 사람들에게 ‘4전 5기 신화’를 이야기할 땐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고 고백했다.
“왜냐하면 그땐 뭐가 뭔지 몰랐거든요. 여기와서 보니까 완전히 기억이 나더라고. 그걸 이제 약간 미화시켜서 이야기하는거죠.”

WBA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이 된 홍수환은 다시 한번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가수 옥희와의 스캔들이 터지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던 국민들은 검지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리카르도 카르도나에게 패하며 타이틀을 상실하자 비난의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이후로는 시합이 잡히지도 않았다. 권투위원회가 괘씸죄를 들어 그의 경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2년 반만에 겨우 성사된 라이벌 염동균과 재기전을 끝으로 홍수환은 링을 떠난다.

“그럴 순 없는거 아니예요? 권투위원회가 선수를 죽인거라고 선수를 아끼지 않고. 이때부터 권투위원회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권투위원회 회장으로 왔으니 참 재미있는 인생입니다”

홍수환은 파행을 거듭하던 회장단 중심의 집행부를 밀어내고 전국총회를 개최해 22번째 회장에 올랐다. WBA와 WBC는 홍회장 체제에 즉각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전임집행부는 홍수환 회장과 신임집행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상태다. 그러나 홍회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권투위원회가 막지 않았다면 선수생활 3~4년은 더했을 겁니다. 저같은 선수가 없게 만들겠습니다. 정말 선수위주로 키우겠습니다. 프로복싱 영광의 시절을 다시 만들겠습니다”

백완종 동아닷컴 기자 100p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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