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복서-10> 영업왕이 된 복싱 챔피언

등록 2012.06.22.

“재능은 전혀 없었어요. 그냥 투지와 깡으로 덤볐습니다”

전 WBA 주니어 밴텀급 챔피언 이형철(42)의 말이다. 그는 아마추어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프로 데뷔 후에도 4전동안 1승 3패의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그런 그가 어떻게 세계 챔피언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이형철은 정답을 ‘노력’ 이라고 말했다.

싸움은 곧잘 한다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링 위의 싸움은 그것과 달랐다. 재능있는 선수들은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고 그 벽은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아 보였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시작했던 복싱이 점점 그의 목을 옥죄어왔다. 벼랑 끝에 몰린 순간 하나의 깨달음이 그에게 스쳐갔다. ‘재능이 부족하다면 그 재능을 배우자’ 이형철은 역대 천재 복서들의 움직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동작과 기술들을 따라하며 익히기 시작했다. 효과는 링 위에서 나타났다. 새로 익힌 기술들은 상대선수에게 곧잘 먹혀들었다. 기술이 하나씩 늘어갈 수록 그의 랭킹도 올라갔다. 그 결과 5전째부터 WBA챔피언 타이틀을 잃기 전까지 19전을 치르며 단 1패만을 기록했다.

챔피언 영광 저버린 이유
승승장구하던 이형철은 1994년 9월 일본에서 천재 복서 카즈야 오니즈카를 꺾으며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원정 챔피언이 됐다. 당시 오니즈카는 24전 전승을 거두며 일본에서 영웅 대접을 받던 스타였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모두 이형철의 열세를 점쳤다. 이형철도 그 점을 인정했다. 그리고 더욱더 훈련에 매진했다. 결과는 9라운드 KO승. 기대하지 않았던 승리였기에 더욱 갚진 승리였다.
그러나 이형철은 타이틀을 오래 지키지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의욕저하였다. 챔피언이 되었지만 상황은 달라진 게 없었다. 챔피언과 싸우러 가는 길에 비행기에서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돌아올 땐 분명히 내 집을 한 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1차방어전을 마치고서도 빈곤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었다. 복싱에 대한 회의감은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알리미 고이티아와 벌인 2차 방어전에서 그는 4회 반칙타를 맞고 쓰러졌다. 종료 공이 울린 뒤 맞은 주먹이었지만 심판은 카운팅을 계속했고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결과는 이형철의 KO패 선언. 이형철 측 코너에서 거세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후에 경기 감독관과 WBA모두 주심의 잘못을 시인했지만 경기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

“일어날 수 있었는데 안 일어났어요. 단 몇 분이라도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생각했더라면 안 그랬을겁니다. 지금은 많이 후회되죠”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제 2의 인생
이형철은 은퇴후 커피전문점을 개업했다. 그의 커피전문점은 세계 챔피언이 운영하는 곳으로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누렸다. 어느날 우연히 길을 지나던 김병태 한올바이오파마 회장이 커피를 마시러 왔다. 김 회장은 이형철에게 ‘왜 세계 챔피언이 커피전문점을 하느냐’고 물었다. 이형철은 ‘사회경험을 많이 쌓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김회장은 그럼 ‘우리 회사에 입사해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이형철은 그 말을 웃으며 흘려들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음 날부터 커피전문점 손님들 중에 넥타이부대가 많아졌어요. 나중에 알고봤더니 한올바이오파마 직원들이더라구요. 김 회장님께서 도움을 주셨던 거죠. 하루는 인사팀장님이 헐레벌떡 뛰어오시더니 입사지원서를 넣었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마감이 코앞이니 빨리 지원하라고. 김 회장님이 입사 권유하셨던 게 진심이었던 거죠”

이형철은 고심 끝에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 도전해보는 영업일은 물론 쉽지 않았다. 6개월 간의 수습 기간동안 교육성적은 늘 바닥이었다. 그럴수록 이형철은 더욱 이를 악물었다.

“저는 한 분야에서 이미 정점을 찍었던 사람입니다. 복싱에서도 해냈는데 여기서 못하리란 법 없다고 생각했어요. 필드에 나가면 누구보다 잘 할 자신있었어요”

노력은 재능을 이긴다
필드에 투입되자 성과는 바로 나타났다. 이형철은 자신의 얼굴과 경력을 새겨넣은 명함을 들고 다니며 거래처를 방문했다. 만나주지 않으면 만나줄때까지 매번 같은 시간에 방문했다. 처음부터 챔피언을 알아보는 이는 없었지만 명함을 받고는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챔피언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 며 의아해 했지만 이형철의 진심이 담긴 말을 듣고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대형 제약사를 상대하기 위해 이형철이 준비했던 무기, ‘진심과 노력’이 통하는 순간이었다.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만큼 이형철의 승진도 빨라졌다. 수습사원으로 입사한지 10년만에 부장까지 초고속 승진을 했다.
영업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복싱을 잊은 것은 아니다. 영업에서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다방면에서 복싱에 기여할 방법을 찾고 있다. 한올바이오파마의 김성욱 대표이사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여자 복싱 세계 챔피언 최신희를 후원했고, 복싱 대회가 열릴 때마다 광고 스폰서로 참여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혹자는 그를 두고 역대 챔피언 중 가장 재능이 없었던 챔피언이라 평한다. 데뷔초 전적을 보면 선뜻 수긍이 가는 평이다. 그는 영업에서도 그리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어려운 제약 용어들을 제대로 외우지도 못했고 특출난 대화의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두 분야에서 모두 성공을 거뒀다. 그는 복싱과 영업이 전혀 다른 분야 같지만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어느 분야에서도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력은 재능을 이깁니다. 바로 제 경력이 그걸 증명해주지 않습니까.”

백완종 동아닷컴 기자 100pd@donga.com


“재능은 전혀 없었어요. 그냥 투지와 깡으로 덤볐습니다”

전 WBA 주니어 밴텀급 챔피언 이형철(42)의 말이다. 그는 아마추어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프로 데뷔 후에도 4전동안 1승 3패의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그런 그가 어떻게 세계 챔피언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이형철은 정답을 ‘노력’ 이라고 말했다.

싸움은 곧잘 한다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링 위의 싸움은 그것과 달랐다. 재능있는 선수들은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고 그 벽은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아 보였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시작했던 복싱이 점점 그의 목을 옥죄어왔다. 벼랑 끝에 몰린 순간 하나의 깨달음이 그에게 스쳐갔다. ‘재능이 부족하다면 그 재능을 배우자’ 이형철은 역대 천재 복서들의 움직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동작과 기술들을 따라하며 익히기 시작했다. 효과는 링 위에서 나타났다. 새로 익힌 기술들은 상대선수에게 곧잘 먹혀들었다. 기술이 하나씩 늘어갈 수록 그의 랭킹도 올라갔다. 그 결과 5전째부터 WBA챔피언 타이틀을 잃기 전까지 19전을 치르며 단 1패만을 기록했다.

챔피언 영광 저버린 이유
승승장구하던 이형철은 1994년 9월 일본에서 천재 복서 카즈야 오니즈카를 꺾으며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원정 챔피언이 됐다. 당시 오니즈카는 24전 전승을 거두며 일본에서 영웅 대접을 받던 스타였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모두 이형철의 열세를 점쳤다. 이형철도 그 점을 인정했다. 그리고 더욱더 훈련에 매진했다. 결과는 9라운드 KO승. 기대하지 않았던 승리였기에 더욱 갚진 승리였다.
그러나 이형철은 타이틀을 오래 지키지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의욕저하였다. 챔피언이 되었지만 상황은 달라진 게 없었다. 챔피언과 싸우러 가는 길에 비행기에서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돌아올 땐 분명히 내 집을 한 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1차방어전을 마치고서도 빈곤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었다. 복싱에 대한 회의감은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알리미 고이티아와 벌인 2차 방어전에서 그는 4회 반칙타를 맞고 쓰러졌다. 종료 공이 울린 뒤 맞은 주먹이었지만 심판은 카운팅을 계속했고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결과는 이형철의 KO패 선언. 이형철 측 코너에서 거세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후에 경기 감독관과 WBA모두 주심의 잘못을 시인했지만 경기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

“일어날 수 있었는데 안 일어났어요. 단 몇 분이라도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생각했더라면 안 그랬을겁니다. 지금은 많이 후회되죠”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제 2의 인생
이형철은 은퇴후 커피전문점을 개업했다. 그의 커피전문점은 세계 챔피언이 운영하는 곳으로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누렸다. 어느날 우연히 길을 지나던 김병태 한올바이오파마 회장이 커피를 마시러 왔다. 김 회장은 이형철에게 ‘왜 세계 챔피언이 커피전문점을 하느냐’고 물었다. 이형철은 ‘사회경험을 많이 쌓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김회장은 그럼 ‘우리 회사에 입사해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이형철은 그 말을 웃으며 흘려들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음 날부터 커피전문점 손님들 중에 넥타이부대가 많아졌어요. 나중에 알고봤더니 한올바이오파마 직원들이더라구요. 김 회장님께서 도움을 주셨던 거죠. 하루는 인사팀장님이 헐레벌떡 뛰어오시더니 입사지원서를 넣었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마감이 코앞이니 빨리 지원하라고. 김 회장님이 입사 권유하셨던 게 진심이었던 거죠”

이형철은 고심 끝에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 도전해보는 영업일은 물론 쉽지 않았다. 6개월 간의 수습 기간동안 교육성적은 늘 바닥이었다. 그럴수록 이형철은 더욱 이를 악물었다.

“저는 한 분야에서 이미 정점을 찍었던 사람입니다. 복싱에서도 해냈는데 여기서 못하리란 법 없다고 생각했어요. 필드에 나가면 누구보다 잘 할 자신있었어요”

노력은 재능을 이긴다
필드에 투입되자 성과는 바로 나타났다. 이형철은 자신의 얼굴과 경력을 새겨넣은 명함을 들고 다니며 거래처를 방문했다. 만나주지 않으면 만나줄때까지 매번 같은 시간에 방문했다. 처음부터 챔피언을 알아보는 이는 없었지만 명함을 받고는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챔피언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 며 의아해 했지만 이형철의 진심이 담긴 말을 듣고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대형 제약사를 상대하기 위해 이형철이 준비했던 무기, ‘진심과 노력’이 통하는 순간이었다.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만큼 이형철의 승진도 빨라졌다. 수습사원으로 입사한지 10년만에 부장까지 초고속 승진을 했다.
영업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복싱을 잊은 것은 아니다. 영업에서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다방면에서 복싱에 기여할 방법을 찾고 있다. 한올바이오파마의 김성욱 대표이사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여자 복싱 세계 챔피언 최신희를 후원했고, 복싱 대회가 열릴 때마다 광고 스폰서로 참여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혹자는 그를 두고 역대 챔피언 중 가장 재능이 없었던 챔피언이라 평한다. 데뷔초 전적을 보면 선뜻 수긍이 가는 평이다. 그는 영업에서도 그리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어려운 제약 용어들을 제대로 외우지도 못했고 특출난 대화의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두 분야에서 모두 성공을 거뒀다. 그는 복싱과 영업이 전혀 다른 분야 같지만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어느 분야에서도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력은 재능을 이깁니다. 바로 제 경력이 그걸 증명해주지 않습니까.”

백완종 동아닷컴 기자 100pd@donga.com

더보기
공유하기 닫기

VODA 인기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