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장에 갇힌 곰들의 기구한 삶
등록 2012.07.21.20일 경기 안성시의 한 곰 사육장. 기자가 들어서자 곰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발바닥으로 철창을 두드렸다. 가슴에 흰 줄이 선명한 반달가슴곰이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철창에 부딪쳐 ‘딱딱’ 소리가 났다. 농장주인 윤모 씨는 “사람이 반가워서 이런다”고 했다. 3.3m²(약 1평) 남짓한 곰 우리는 사방과 천장이 붉은 철창으로 돼 있었다. 방 하나에 한두 마리씩 30여 개의 우리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그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성인 남성만 한 곰 두 마리가 앞발을 들고 서로의 얼굴을 후려치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올 1월생 새끼 곰은 겁에 질려 눈만 껌벅였다. 넓은 곳에서 혼자 사는 야생의 습성 때문에 곰은 좁은 곳에 오래 있으면 쉽게 예민해진다. 한 4년생 곰은 새끼 때 옆방 곰에게 물려 왼쪽 앞다리가 아예 없다. 그 곰은 자꾸 넘어지는데도 절뚝거리며 우리 안을 빙빙 돌았다. 사육장 앞에서는 목줄에 묶인 누런 개 한 마리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 “10년 키운 곰 버릴 수도 없고…”
이곳 곰들은 동남아시아에서 팔려 오던 1981년만 해도 주인의 기대주였다. 당시 정부는 국정홍보영화 ‘대한늬우스’를 통해 “곰의 웅담과 가죽 등은 국내 수요가 많고 수입 대체 효과도 있다”며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곰을 키우라고 권장했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윤 씨의 곰 27마리는 오도 가도 못 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윤 씨가 돈을 벌려면 10년 이상 된 곰을 도축해 웅담을 팔아야 한다. 정부는 야생 곰 평균 수명이 25년임을 고려해 당초 24년이 넘은 곰만 도축을 허락했지만 농가 반발로 2005년 도축 연한을 10년으로 낮췄다.
10년 미만 곰에게서 웅담을 빼거나 도축 곰의 쓸개가 아닌 다른 부위를 팔면 불법이다. 마리당 10g 정도가 나오는 웅담을 얻기 위해 최소 10년을 기르다 보니 한 마리의 웅담 값이 2000만∼3000만 원 선이다. 비싼 데다 동물 복지 논란이 일면서 최근 웅담 수요가 급감했다. 우리 정부가 1993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해 곰을 외국에 팔 수도 없다.
판로가 막히면서 윤 씨는 10년 넘은 곰을 최근 4년간 한 마리도 못 잡았다. 전체 27마리 중 10년을 넘긴 곰이 20마리다. 사료비로 하루 8만 원씩, 27마리를 키우는 데 매달 240여 만 원이 필요하다. 벼농사 수입을 대부분 쏟아 붓는다. 윤 씨는 “당장 사육장을 없애고 싶지만 살아 있는 곰을 버릴 수도 없고 10년 넘게 키운 정이 있어 굶겨 죽이지도 못한다”고 했다.
국내에서 사육되는 곰은 모두 1000마리. 전국 곰 사육장 50여 곳이 윤 씨와 비슷한 처지다. 수익이 적다 보니 일부에선 산 채로 쓸개즙을 빼내 파는 불법을 저지른다. 시설 투자에도 소홀할 수밖에 없다. 15일 곰 두 마리가 탈출한 경기 용인시의 농장은 철창 문고리가 녹슬어 곰들이 조금만 힘을 줘도 열릴 만큼 노후했다. 같은 종인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돼 특급 대우를 받지만 이들은 야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돼 웅담 채취용 ‘마루타’로 산다.
○ “대책 안 나오면 곰 풀겠다”
사육 농가들은 정부가 곰 사육을 권장한 책임이 있는 만큼 곰을 모두 사들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부 농가와 동물단체는 “정부가 곰을 수매한 뒤 10년 이상 된 곰은 안락사시키면 300억 원 정도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환경부는 “사육 곰을 매입하려면 사후 관리 및 처리 비용을 포함할 경우 1000억 원가량이 필요해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며 “국가가 곰을 매입해 죽이면 비난 여론이 일 수 있어 안락사시키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곰은 국내 웅담 수요가 살아나면 예전처럼 도축되고, 정부가 농가 요구대로 수매 후 안락사를 결정해도 죽게 될 운명이다. 철창에 갇힌 사형수 신세와 다를 바 없다. 농가들은 마땅한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정부과천청사 앞에 곰 수백 마리를 풀어 놓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관규 강원대 조경학과 교수는 “정부가 국내 곰 테마파크에 비용을 일부 대 주며 20∼30마리씩 맡기거나 수의대 학술림에 보내 연구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안성=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신무경 인턴기자 고려대 철학과 4학년
‘곰 탈출 사건’ 계기… 국내 곰 사육 농장 가보니
20일 경기 안성시의 한 곰 사육장. 기자가 들어서자 곰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발바닥으로 철창을 두드렸다. 가슴에 흰 줄이 선명한 반달가슴곰이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철창에 부딪쳐 ‘딱딱’ 소리가 났다. 농장주인 윤모 씨는 “사람이 반가워서 이런다”고 했다. 3.3m²(약 1평) 남짓한 곰 우리는 사방과 천장이 붉은 철창으로 돼 있었다. 방 하나에 한두 마리씩 30여 개의 우리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그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성인 남성만 한 곰 두 마리가 앞발을 들고 서로의 얼굴을 후려치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올 1월생 새끼 곰은 겁에 질려 눈만 껌벅였다. 넓은 곳에서 혼자 사는 야생의 습성 때문에 곰은 좁은 곳에 오래 있으면 쉽게 예민해진다. 한 4년생 곰은 새끼 때 옆방 곰에게 물려 왼쪽 앞다리가 아예 없다. 그 곰은 자꾸 넘어지는데도 절뚝거리며 우리 안을 빙빙 돌았다. 사육장 앞에서는 목줄에 묶인 누런 개 한 마리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 “10년 키운 곰 버릴 수도 없고…”
이곳 곰들은 동남아시아에서 팔려 오던 1981년만 해도 주인의 기대주였다. 당시 정부는 국정홍보영화 ‘대한늬우스’를 통해 “곰의 웅담과 가죽 등은 국내 수요가 많고 수입 대체 효과도 있다”며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곰을 키우라고 권장했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윤 씨의 곰 27마리는 오도 가도 못 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윤 씨가 돈을 벌려면 10년 이상 된 곰을 도축해 웅담을 팔아야 한다. 정부는 야생 곰 평균 수명이 25년임을 고려해 당초 24년이 넘은 곰만 도축을 허락했지만 농가 반발로 2005년 도축 연한을 10년으로 낮췄다.
10년 미만 곰에게서 웅담을 빼거나 도축 곰의 쓸개가 아닌 다른 부위를 팔면 불법이다. 마리당 10g 정도가 나오는 웅담을 얻기 위해 최소 10년을 기르다 보니 한 마리의 웅담 값이 2000만∼3000만 원 선이다. 비싼 데다 동물 복지 논란이 일면서 최근 웅담 수요가 급감했다. 우리 정부가 1993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해 곰을 외국에 팔 수도 없다.
판로가 막히면서 윤 씨는 10년 넘은 곰을 최근 4년간 한 마리도 못 잡았다. 전체 27마리 중 10년을 넘긴 곰이 20마리다. 사료비로 하루 8만 원씩, 27마리를 키우는 데 매달 240여 만 원이 필요하다. 벼농사 수입을 대부분 쏟아 붓는다. 윤 씨는 “당장 사육장을 없애고 싶지만 살아 있는 곰을 버릴 수도 없고 10년 넘게 키운 정이 있어 굶겨 죽이지도 못한다”고 했다.
국내에서 사육되는 곰은 모두 1000마리. 전국 곰 사육장 50여 곳이 윤 씨와 비슷한 처지다. 수익이 적다 보니 일부에선 산 채로 쓸개즙을 빼내 파는 불법을 저지른다. 시설 투자에도 소홀할 수밖에 없다. 15일 곰 두 마리가 탈출한 경기 용인시의 농장은 철창 문고리가 녹슬어 곰들이 조금만 힘을 줘도 열릴 만큼 노후했다. 같은 종인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돼 특급 대우를 받지만 이들은 야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돼 웅담 채취용 ‘마루타’로 산다.
○ “대책 안 나오면 곰 풀겠다”
사육 농가들은 정부가 곰 사육을 권장한 책임이 있는 만큼 곰을 모두 사들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부 농가와 동물단체는 “정부가 곰을 수매한 뒤 10년 이상 된 곰은 안락사시키면 300억 원 정도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환경부는 “사육 곰을 매입하려면 사후 관리 및 처리 비용을 포함할 경우 1000억 원가량이 필요해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며 “국가가 곰을 매입해 죽이면 비난 여론이 일 수 있어 안락사시키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곰은 국내 웅담 수요가 살아나면 예전처럼 도축되고, 정부가 농가 요구대로 수매 후 안락사를 결정해도 죽게 될 운명이다. 철창에 갇힌 사형수 신세와 다를 바 없다. 농가들은 마땅한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정부과천청사 앞에 곰 수백 마리를 풀어 놓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관규 강원대 조경학과 교수는 “정부가 국내 곰 테마파크에 비용을 일부 대 주며 20∼30마리씩 맡기거나 수의대 학술림에 보내 연구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안성=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신무경 인턴기자 고려대 철학과 4학년
VODA 인기 동영상
- 재생03:441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선공개] 대화를 할수록 서로에게 상처뿐인 '가시대화'를 하고 있는 박세진 모녀
- 재생08:552요즘남자라이프 신랑수업[선공개] "경제권은 누구에게?" 윤아의 절친 조현아의 갑.분.청문회?
- 재생01:233아이돌 편의점이펙스(EPEX), 3부작으로 나눈 이유
- 재생05:474요즘남자라이프 신랑수업뮤지컬 캣츠의 추억 인순이&에녹 인연의 시작은?!
- 재생05:245요즘남자라이프 신랑수업((인순이 감동)) 에녹이 데려간 특별한 식당의 정체는?!
- 재생03:466세모집억만장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섬?! TV CHOSUN 240423 방송
- 재생02:147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녀 멤버들, 킥오프 직전 벤치로 들어오는 허경희에 일동 당황!
- 재생03:198틈만나면,유재석×유연석×이광수, 순식간에 종료된 피아노 선생님과 대화에 당황
- 재생02:089선재 업고 튀어김혜윤의 눈물을 오해한 변우석, 실랑이 중 막걸리 세례 맞고 기절?!! | tvN 240423 방송
- 재생02:3310수지맞은 우리윤다훈의 일을 대신 처리하는 함은정 | KBS 240424 방송
- 재생04:061미스터 로또서진이랑 함께 사랑의 열차를 타고 ‘간다고야’ TV CHOSUN 240419 방송
- 재생03:052세자가 사라졌다세자 수호, 대비 명세빈과 어의 김주헌의 사이 알고 극대노!!! MBN 240421 방송
- 재생03:283미스터 로또사랑에 빠지게 만든 진욱이는 유죄 ‘사랑은 무죄다’ TV CHOSUN 240419 방송
- 재생02:454미스터 로또돌고 돌아도 해성이에게로 ‘영시의 이별’ TV CHOSUN 240419 방송
- 재생03:555라디오스타"내가 꿈을 꿨는데..." 임신 사실을 밝히지 않은 랄랄의 결혼을 예상한 풍자, MBC 240417 방송
- 재생02:566미스터 로또무대 장인 사랑하는 건 안 미안해 ‘사랑해서 미안해’ TV CHOSUN 240419 방송
- 재생01:117미스쓰리랑[미스쓰리랑 선공개] 트롯 레전드와 트롯 샛별이 만났다! TV CHOSUN 240425 방송
- 재생01:418조선의 사랑꾼[선공개] 전진이서 스킨십에 놀라는 김지민 TV CHOSUN 240422 방송
- 재생03:489미스터 로또또르르 가슴이 메어온다 성훈 & 혁진의 ‘나만의 슬픔’ TV CHOSUN 240419 방송
- 재생04:1010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끝없이 이어지는 반찬들에 정신 혼미 보리굴비정식 TV CHOSUN 240421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