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어서 와, 할리우드는 처음이지?

등록 2013.02.15.
“‘어서 와, 할리우드는 처음이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분위기였죠.”

스타 감독도 할리우드에서는 ‘촌닭’이 된 기분이었나 보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지운 감독(49)은 “시스템의 차이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경험들을 얘기하자면 책 한 권이 될 것”이라며 ‘멘붕(멘털 붕괴)’ 할리우드 진출기를 들려줬다.

21일 개봉하는 영화 ‘라스트 스탠드’는 그의 첫 할리우드 영화 연출작이다. 헬기보다 빠른 슈퍼카를 타고 멕시코 국경을 향해 질주하는 마약왕(에두아르도 노리에가)과 미국 연방수사국(FBI)도 막지 못한 그를 잡아야 하는 국경의 작은 마을 보안관(아널드 슈워제네거) 사이에서 벌어지는 혈투를 그렸다.

“세상에서 제일 빠른 차와 세상에서 가장 느린 마을을 대비시켜 오락적인 요소를 더했어요. 스피드와 풍경을 교차시키면서 하이테크(high-tech)를 로테크(low-tech·구식 기술)로 막는다는 내용을 전달하는 거죠.”

‘악마를 보았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독특한 연출로 주목받았지만 할리우드에선 “내 ‘칼날’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제작자와의 엄청난 샅바싸움과 심리전, 무섭더라고요. 현장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라 즉흥적으로 찍으려 해도 조감독은 ‘그래, 찍어라. 그 대신 다른 신 빼야 한다’라고 매몰차게 말합니다. 할리우드에선 촬영시간이 초과되면 제작비가 불어나기 때문에 보험회사가 와서 시간 관리를 해요. 보험회사가 ‘필요 없다’고 하는 장면은 시나리오에서 지워버립니다.”

한국 촬영 현장에선 가족 같았던 조감독과의 관계도 그의 ‘멘붕’을 부채질했다. “촬영 중 몸이 점점 달아오르는데 조감독이 점심시간이라고 딱 잘라버리더라고요. 뭔가 나올 거 같은데, 싸늘하게 식는 창작 의욕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점심시간을 15분 미룰 수 있는 ‘그레이스 제도’가 있긴 해요. 하지만 카메라와 조명을 건드리면 안 되기 때문에 앵글을 좀 바꾸고 싶어도 여의치가 않은 거죠.”

영어도 문제였다. “10분 영어로 얘기하면 온몸에 기가 쫙 빠져요. 그때부턴 아주 간단한 것도 통역을 시켰어요. 포리스트 휘태커,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얘기할 때는 저도 모르게 존댓말을 쓰게 돼요. 앉아서 편히 ‘쉬셔도’ 된다고.”

시스템의 차이, 언어 장벽, 정서적 이질감으로 헤매던 그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건 슈워제네거 덕분이었다. “제작자와 조감독이 자꾸 재촉하니 초반엔 찍은 신이 마음에 안 들어도 넘어갔어요. 그러다 아널드가 ‘감독은 아티스트다.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감독 괴롭히지 마라’라고 하니 전부 안 괴롭히더라고요. 그때부터 내 방식대로 운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죠.”

하지만 지난달 미국에서 먼저 개봉한 이 영화의 흥행이 저조한 이유로는 슈워제네거의 추락한 인지도가 꼽힌다. “시기적으로 안 좋았죠. 미국에서 총기사건이 잇따라 액션 영화에 반감도 있었고요.”

그는 차기작으로 할리우드 SF스릴러 작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단편 2개와 장편을 잇달아 찍을 계획이다. “현장에서 한국말로 디렉션 주고 싶어서 제가 미쳤나 봐요. ‘라스트 스탠드’는 평가와 흥행, 상관없어요. 제가 맨땅에 헤딩하며 맨몸으로 한 거라 제 감독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겁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어서 와, 할리우드는 처음이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분위기였죠.”

스타 감독도 할리우드에서는 ‘촌닭’이 된 기분이었나 보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지운 감독(49)은 “시스템의 차이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경험들을 얘기하자면 책 한 권이 될 것”이라며 ‘멘붕(멘털 붕괴)’ 할리우드 진출기를 들려줬다.

21일 개봉하는 영화 ‘라스트 스탠드’는 그의 첫 할리우드 영화 연출작이다. 헬기보다 빠른 슈퍼카를 타고 멕시코 국경을 향해 질주하는 마약왕(에두아르도 노리에가)과 미국 연방수사국(FBI)도 막지 못한 그를 잡아야 하는 국경의 작은 마을 보안관(아널드 슈워제네거) 사이에서 벌어지는 혈투를 그렸다.

“세상에서 제일 빠른 차와 세상에서 가장 느린 마을을 대비시켜 오락적인 요소를 더했어요. 스피드와 풍경을 교차시키면서 하이테크(high-tech)를 로테크(low-tech·구식 기술)로 막는다는 내용을 전달하는 거죠.”

‘악마를 보았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독특한 연출로 주목받았지만 할리우드에선 “내 ‘칼날’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제작자와의 엄청난 샅바싸움과 심리전, 무섭더라고요. 현장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라 즉흥적으로 찍으려 해도 조감독은 ‘그래, 찍어라. 그 대신 다른 신 빼야 한다’라고 매몰차게 말합니다. 할리우드에선 촬영시간이 초과되면 제작비가 불어나기 때문에 보험회사가 와서 시간 관리를 해요. 보험회사가 ‘필요 없다’고 하는 장면은 시나리오에서 지워버립니다.”

한국 촬영 현장에선 가족 같았던 조감독과의 관계도 그의 ‘멘붕’을 부채질했다. “촬영 중 몸이 점점 달아오르는데 조감독이 점심시간이라고 딱 잘라버리더라고요. 뭔가 나올 거 같은데, 싸늘하게 식는 창작 의욕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점심시간을 15분 미룰 수 있는 ‘그레이스 제도’가 있긴 해요. 하지만 카메라와 조명을 건드리면 안 되기 때문에 앵글을 좀 바꾸고 싶어도 여의치가 않은 거죠.”

영어도 문제였다. “10분 영어로 얘기하면 온몸에 기가 쫙 빠져요. 그때부턴 아주 간단한 것도 통역을 시켰어요. 포리스트 휘태커,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얘기할 때는 저도 모르게 존댓말을 쓰게 돼요. 앉아서 편히 ‘쉬셔도’ 된다고.”

시스템의 차이, 언어 장벽, 정서적 이질감으로 헤매던 그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건 슈워제네거 덕분이었다. “제작자와 조감독이 자꾸 재촉하니 초반엔 찍은 신이 마음에 안 들어도 넘어갔어요. 그러다 아널드가 ‘감독은 아티스트다.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감독 괴롭히지 마라’라고 하니 전부 안 괴롭히더라고요. 그때부터 내 방식대로 운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죠.”

하지만 지난달 미국에서 먼저 개봉한 이 영화의 흥행이 저조한 이유로는 슈워제네거의 추락한 인지도가 꼽힌다. “시기적으로 안 좋았죠. 미국에서 총기사건이 잇따라 액션 영화에 반감도 있었고요.”

그는 차기작으로 할리우드 SF스릴러 작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단편 2개와 장편을 잇달아 찍을 계획이다. “현장에서 한국말로 디렉션 주고 싶어서 제가 미쳤나 봐요. ‘라스트 스탠드’는 평가와 흥행, 상관없어요. 제가 맨땅에 헤딩하며 맨몸으로 한 거라 제 감독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겁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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