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단속 피하는 마법번호판 ‘속도 높여야 안찍혀’

등록 2013.03.06.

직장인 윤모 씨(34)는 서울에서 고향 대구로 승용차를 운전해 내려가다 아찔한 순간을 맞았다. 제한속도가 시속 110km인 중부내륙고속도로의 한 무인단속 카메라 앞에서 속도를 늦추다 뒤에 따라오던 차량에 추돌당할 뻔한 것. 아슬아슬하게 1차로의 윤 씨 차량을 스쳐 간 상대방은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2차로로 끼어들었다가 바로 1차로로 돌아와 윤 씨 차량을 앞질러 내달렸다. 2차로에도 속도를 줄이던 차량이 있었지만 반칙 운전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윤 씨는 “다들 속도를 줄이는 과속 단속 카메라 앞을 시속 150km 넘는 속도로 통과해도 안 걸리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반칙 운전의 종류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 가장 불법성이 높은 것이 과속 단속 회피다. 주로 불법 번호판 사용으로 이뤄지는 과속 단속 회피는 고의적으로 과속을 일삼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선택하는 ‘적극 범죄’에 가깝다. 동아일보 취재진이 실제 불법 번호판을 사용해 그 위험 정도를 진단해 봤다.

○ 단속 카메라 앞에서 더 밟는다

지난달 15일 오후 5시 경기 화성시 송산면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검은색 쏘나타가 3km 이상 트인 직선 도로에서 굉음을 내며 질주했다. 100km, 120km… 속도를 낼수록 이 차의 번호판은 마법처럼 더 꺾였다.

이날 연구원 내 실험 도로에서 이뤄진 주행은 불법 번호판이 도로를 달릴 때 실제 경찰 단속에 적발되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시했다. 사용한 번호판은 속칭 ‘꺾기 번호판’으로 경찰 단속 때 압수된 물품이다. 차량이 달리기 시작하면 공기 저항에 따라 번호판이 범퍼 밑으로 꺾이며, 단속 카메라로 촬영해도 번호가 식별되지 않는다. 취재진이 실험을 위해 일반 번호판을 꺾기 번호판으로 바꾸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을 만큼 설치도 간단했다.

처음 속도는 시속 80km. 실험에 참여한 경찰의 이동식 단속 카메라에는 차량 번호 네 자리가 선명하게 찍혔다. 불법 번호판 단속을 담당하는 김영국 교통안전공단 과장은 “시중에서는 시속 80km 이상이면 번호판이 꺾인다고 하지만 속도를 더 내야 단속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속도를 120km까지 올리는 순간 경찰 카메라가 번호판을 촬영해도 식별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네 자리 번호 중 숫자 ‘8’을 제외한 나머지는 짐작하기 힘들었다. 동행한 경찰 관계자는 “이 정도가 되면 식별 불능으로 분류돼 단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속 카메라가 있는 지역에서 속도를 올리는 차량은 주로 이 같은 꺾기 번호판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차량의 운전자는 단속을 확실히 피하기 위해 브레이크 대신 오히려 가속 페달을 밟는다. 시험 차량을 운전한 문덕수 공단 연구원은 “모두가 속도를 줄이는 단속 카메라 앞에서 시속 120km 이상을 유지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 행위”라며 “운전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사고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죽음을 부르는 다양한 번호판 꼼수

불법 번호판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은밀히 거래되는 특성상 주로 별명을 붙여 부른다. 대표적인 것이 속칭 ‘일지매 번호판’. 평상시에는 일반 번호판과 똑같지만 과속 단속 지역에서는 번호판 위에 장착돼 있는 발광다이오드(LED)를 켜 카메라 판독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눈으로는 알아볼 수 있지만 카메라의 속성상 반사되면서 사진이 찍히지 않는다.

번호판을 아예 가리는 자동스크린가드(속칭 지미번호판)도 있다. 차량 안에서 버튼을 누르면 검은 천이 내려와 번호판이 가려진다. 처음에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만들었다고 판매했지만 점차 과속 회피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이나 대만에서 들여온 ‘젬머’라는 장치는 단속 카메라를 감지하면 카메라 쪽으로 레이저를 발사해 과속 수치를 ‘0’으로 만든다. 이 밖에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하는 유럽식 반사 스티커, 번호판에 반사물질을 뿌려 야간 단속을 막는 반사 스프레이 등이 대표적인 불법 번호판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번호판을 가리는 것은 범죄 행위로 처벌 대상이다.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번호판을 식별할 수 없게 하는 행위는 1년 이하 징역, 3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김홍주 서울지방경찰청 교통범죄수사팀장은 “실수라고 해도 번호판을 가리면 처벌 대상”이라며 “모텔 등에서 차량 번호를 가리거나, 불법 장비가 장착된 중고차를 구입한 뒤 이를 떼지 않아도 똑같이 처벌된다”고 설명했다.

○ 단속은 엉금엉금 꼼수는 펄펄

번호판 불법 행위 중 경찰이 ‘식별 불능’으로 처리하고 수사 의뢰한 것은 지난해 200건에 불과하다. 그나마 2011년 158건에 비해 늘어났다. 식별 불능으로 분류됐다고 해서 모두 처벌을 피하는 건 아니다. 경찰 컴퓨터가 단속 카메라 화면에서 번호를 식별해 내지 못한다 해도 나중에 경찰관이 육안으로 화면을 보고 차량 종류 등을 분석하면 번호를 식별해 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인력 부족 때문에 식별 불능 번호판을 따로 육안으로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게 일선 경찰관들의 설명이다. 결국 상당수 과속 반칙운전 행위가 법의 처벌을 피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불법 과속이 계속되면서 과속 운전의 위험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2011년 과속으로 발생한 교통사고 치사율은 30%에 달했다. 사고 원인이 과속인 교통사고 10건 중 3건에서 사망자가 나왔다는 의미다. 이는 철길 건널목을 건너다 사고가 난 경우(75.0%)에 이어 사망 확률 2위다. 또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로 불법 번호판 단속 권한이 분산된 것도 문제 근절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한 교통기관 관계자는 “전문성을 갖춘 기관이 단속에 나서야 실효성을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명·서동일 기자 jmpark@donga.com


직장인 윤모 씨(34)는 서울에서 고향 대구로 승용차를 운전해 내려가다 아찔한 순간을 맞았다. 제한속도가 시속 110km인 중부내륙고속도로의 한 무인단속 카메라 앞에서 속도를 늦추다 뒤에 따라오던 차량에 추돌당할 뻔한 것. 아슬아슬하게 1차로의 윤 씨 차량을 스쳐 간 상대방은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2차로로 끼어들었다가 바로 1차로로 돌아와 윤 씨 차량을 앞질러 내달렸다. 2차로에도 속도를 줄이던 차량이 있었지만 반칙 운전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윤 씨는 “다들 속도를 줄이는 과속 단속 카메라 앞을 시속 150km 넘는 속도로 통과해도 안 걸리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반칙 운전의 종류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 가장 불법성이 높은 것이 과속 단속 회피다. 주로 불법 번호판 사용으로 이뤄지는 과속 단속 회피는 고의적으로 과속을 일삼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선택하는 ‘적극 범죄’에 가깝다. 동아일보 취재진이 실제 불법 번호판을 사용해 그 위험 정도를 진단해 봤다.

○ 단속 카메라 앞에서 더 밟는다

지난달 15일 오후 5시 경기 화성시 송산면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검은색 쏘나타가 3km 이상 트인 직선 도로에서 굉음을 내며 질주했다. 100km, 120km… 속도를 낼수록 이 차의 번호판은 마법처럼 더 꺾였다.

이날 연구원 내 실험 도로에서 이뤄진 주행은 불법 번호판이 도로를 달릴 때 실제 경찰 단속에 적발되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시했다. 사용한 번호판은 속칭 ‘꺾기 번호판’으로 경찰 단속 때 압수된 물품이다. 차량이 달리기 시작하면 공기 저항에 따라 번호판이 범퍼 밑으로 꺾이며, 단속 카메라로 촬영해도 번호가 식별되지 않는다. 취재진이 실험을 위해 일반 번호판을 꺾기 번호판으로 바꾸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을 만큼 설치도 간단했다.

처음 속도는 시속 80km. 실험에 참여한 경찰의 이동식 단속 카메라에는 차량 번호 네 자리가 선명하게 찍혔다. 불법 번호판 단속을 담당하는 김영국 교통안전공단 과장은 “시중에서는 시속 80km 이상이면 번호판이 꺾인다고 하지만 속도를 더 내야 단속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속도를 120km까지 올리는 순간 경찰 카메라가 번호판을 촬영해도 식별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네 자리 번호 중 숫자 ‘8’을 제외한 나머지는 짐작하기 힘들었다. 동행한 경찰 관계자는 “이 정도가 되면 식별 불능으로 분류돼 단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속 카메라가 있는 지역에서 속도를 올리는 차량은 주로 이 같은 꺾기 번호판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차량의 운전자는 단속을 확실히 피하기 위해 브레이크 대신 오히려 가속 페달을 밟는다. 시험 차량을 운전한 문덕수 공단 연구원은 “모두가 속도를 줄이는 단속 카메라 앞에서 시속 120km 이상을 유지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 행위”라며 “운전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사고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죽음을 부르는 다양한 번호판 꼼수

불법 번호판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은밀히 거래되는 특성상 주로 별명을 붙여 부른다. 대표적인 것이 속칭 ‘일지매 번호판’. 평상시에는 일반 번호판과 똑같지만 과속 단속 지역에서는 번호판 위에 장착돼 있는 발광다이오드(LED)를 켜 카메라 판독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눈으로는 알아볼 수 있지만 카메라의 속성상 반사되면서 사진이 찍히지 않는다.

번호판을 아예 가리는 자동스크린가드(속칭 지미번호판)도 있다. 차량 안에서 버튼을 누르면 검은 천이 내려와 번호판이 가려진다. 처음에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만들었다고 판매했지만 점차 과속 회피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이나 대만에서 들여온 ‘젬머’라는 장치는 단속 카메라를 감지하면 카메라 쪽으로 레이저를 발사해 과속 수치를 ‘0’으로 만든다. 이 밖에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하는 유럽식 반사 스티커, 번호판에 반사물질을 뿌려 야간 단속을 막는 반사 스프레이 등이 대표적인 불법 번호판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번호판을 가리는 것은 범죄 행위로 처벌 대상이다.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번호판을 식별할 수 없게 하는 행위는 1년 이하 징역, 3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김홍주 서울지방경찰청 교통범죄수사팀장은 “실수라고 해도 번호판을 가리면 처벌 대상”이라며 “모텔 등에서 차량 번호를 가리거나, 불법 장비가 장착된 중고차를 구입한 뒤 이를 떼지 않아도 똑같이 처벌된다”고 설명했다.

○ 단속은 엉금엉금 꼼수는 펄펄

번호판 불법 행위 중 경찰이 ‘식별 불능’으로 처리하고 수사 의뢰한 것은 지난해 200건에 불과하다. 그나마 2011년 158건에 비해 늘어났다. 식별 불능으로 분류됐다고 해서 모두 처벌을 피하는 건 아니다. 경찰 컴퓨터가 단속 카메라 화면에서 번호를 식별해 내지 못한다 해도 나중에 경찰관이 육안으로 화면을 보고 차량 종류 등을 분석하면 번호를 식별해 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인력 부족 때문에 식별 불능 번호판을 따로 육안으로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게 일선 경찰관들의 설명이다. 결국 상당수 과속 반칙운전 행위가 법의 처벌을 피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불법 과속이 계속되면서 과속 운전의 위험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2011년 과속으로 발생한 교통사고 치사율은 30%에 달했다. 사고 원인이 과속인 교통사고 10건 중 3건에서 사망자가 나왔다는 의미다. 이는 철길 건널목을 건너다 사고가 난 경우(75.0%)에 이어 사망 확률 2위다. 또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로 불법 번호판 단속 권한이 분산된 것도 문제 근절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한 교통기관 관계자는 “전문성을 갖춘 기관이 단속에 나서야 실효성을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명·서동일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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