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식당 착한 이야기] 2시간 팔려고 10시간 빚죠, 손님 떠올리며…

등록 2013.03.09.
촉나라 제갈공명은 남만(南蠻·지금의 미얀마 부근) 정벌을 마치고 돌아오다 풍파가 심한 여수(濾水)를 건너기 위해 만두를 빚었다. 정벌로 숨진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고 성난 강을 달래기 위해 사람 머리 형상으로 만들었다. 만인(蠻人)의 머리를 본뜬 것이라 해서 ‘만두(蠻頭)’라 했다고 한다.

고령의 황정숙 씨(82)와 며느리 전용자 씨(57)도 사람 얼굴을 떠올리며 만두를 빚는다. 제갈공명과 다른 게 있다면 먹는 사람의 표정을 떠올리며 빚는다는 점. 지난해 10월 5일 ‘착한식당’ 16호점으로 선정된 충남 공주시 옥룡동 황해도손만두국에선 착한 사람 냄새가 난다.

황 씨가 1999년 만두가게를 연 것은 사업에 실패한 맏아들 유석진 씨(60) 때문이다. 공주 시내에서 꽤나 잘나가던 아들이 두부공장을 하다 2년 만에 폭삭 망했다. 집은 물론이고 가재도구에도 모두 빨간딱지가 붙었다. 유 씨의 고교생 딸(정)과 중학생 아들(원호)까지 온 가족이 거리에 나앉게 됐다.

유 씨는친척의 도움으로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만 원짜리 허름한 집을 구했지만 사는 게 힘들었다. 겨울이면 칼바람이 몰려 왔다. 할 일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남매는 학교에 가고, 아내와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저녁이면 지친 몸으로 들어오는 아내와 어머니에게 캐물었다. ‘어디에 다녀오는 거냐’고. 칠순에 가까운 어머니는 파출부, 아내는 식당일을 하고 있었다. “입에 풀칠을 해야 할 것 아니냐.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참고서는 사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에 가슴이 미어졌다. 가장으로서 노모와 아내를 밖으로 내몬 자괴감이 깊게 밀려 왔다.

‘입에 풀칠?’

‘풀칠’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그러다 문득 떠올렸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빚어주던 호박 소로 만든 만두. 정말 맛있어 세 그릇씩 해치웠다. 도정이 덜 돼 만두피는 시커멓고 식감도 투박했다. 하지만 소로 들어간 호박은 상큼했다. 황해도 옹진이 고향인 어머니는 설 명절만 되면 만두를 빚었다. 묵은지를 넣은 황해도식 만두였다. 김치가 마땅치 않으면 호박을 넣었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솜씨를 살려 만두가게를 내자. 부지런한 아내도 한몫할 것이고….’

1999년 개업할 때는 지금 식당에서 200m쯤 떨어진 곳이었다. 테이블이 7개만 들어갈 정도로 비좁았다. 흔한 전단광고 한 번 돌리지 못했다. 손님이 찾아올 리 없었다. 개업한 지 2∼3개월이 지난 뒤 다행히 식당 인근에 건축공사가 시작돼 인부들이 백반을 부탁했다. 간신히 끼니는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만두는 계속 빚었다. 하루 30개도 빚고 50개도 빚었다.

다행히 자녀들은 잘 커주었다. ‘사립대는 도저히 보낼 수 없다’는 아버지 말에 수긍했다. 서울대 간호학과에 합격한 딸(34)은 집안 살림이 어려운 것을 알고 등록을 포기한 뒤 장학금을 받고 청주교대를 다녔다. 아들은 충남도립 청양대를 선택해 집에서 통학했다. 졸업 후 딸은 교사, 아들은 공무원으로 일한다.

만두를 빚을 땐 어머니 황 씨의 ‘황소고집’을 아무도 꺾을 수 없다. 소는 반드시 호박을 쓴다. 부피만 늘리는 당면은 최소한으로 넣는다. 파 마늘 부추 등 야채는 신선한 것으로 당일 구입한 것만 사용한다. 돼지고기는 지방이 전혀 없는 최고급 암퇘지 뒷다리살만 쓴다.

1년 2년 시간이 지나도 만두 맛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기를 5년 6년. 이상한 변화가 시작됐다.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다. “맛이 담백하다” “야채향이 그윽하다” “속이 개운하다”며 공무원, 대학교 직원, 학교 교사들이 줄을 섰다. 점심시간 30분 안에 만두전골 한 접시 금방 먹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일주일에 2, 3회 찾아오는 마니아가 생기기 시작했다. ‘개운하고 담백한 맛이 자꾸 생각난다’는 게 이유였다. 식당 앞의 줄이 갈수록 길어졌다. 하루 세끼는 먹고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기다리다 발길을 돌리는 손님들이 ‘돈처럼’ 보여 너무 아까웠다.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업 12년 만인 2011년 9월 지금의 식당 자리로 옮겼다. 테이블은 18개로 늘어났고 주방도 쾌적해졌다. 옛날 식당으로 찾아간 손님들이 안내문을 읽고 새로운 가게로 발길을 옮겨줬다. 이제 제대로 된 만두를 빚으면 될 일이다.

만두 반죽은 아무래도 남자인 유 씨가 맡는다. 만두피는 어머니 황 씨 전문이다. 82세 고령이지만 꼿꼿하게 서서 수십 년째 같은 홍두깨로 피를 만든다. 만두소는 며느리 전 씨 담당이다.

밀가루는 최고급만을 사용한다. 직접 손으로 반죽해 2시간 정도 숙성시켜 찰기를 돕는다. 만두소 재료는 당일 구입한 것만 쓰며 당일 다 소화한다. 부추 고춧가루 등 모든 재료는 사돈이나 지인들이 농사지은 것만 사용한다. 전 씨는 만두소를 만들 때 장갑을 끼지 않는다. 맨손으로 해야 소의 질감과 농도를 느낄 수 있다.

하루 평균 100명 정도의 고정 손님이 생겨 자리를 잡아갈 즈음 ‘사고’가 터졌다.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착한식당’ 검증단에게 ‘발각’된 것.

지난해 10월 착한식당 검증단으로 활동한 이정삼 한국조리사협회 대전충남지회장(50)은 “만두소 재료에는 생명력이 있다. 당근 호박 고기 등 각각의 재료가 자기만의 빛깔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잘 어우러진다. 신선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나도 식당을 운영하지만 이 정도 신선한 재료만을 고집하기란 쉽지 않다”고 했다.

방송이 나간 후 영업시간은 줄어들었다. 옛날엔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열었으나 밀려오는 손님 때문에 오후 1시 반이면 만두가 떨어진다. 점심 장사다.

2일 오후 1시 반경 손님을 가장해 혼자 만두가게를 찾았다. 이미 가게 입구에 ‘만두 재료가 떨어졌습니다. 더이상 판매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씌어 있었다. 망설이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유 씨가 “1인분은 남아 있다”고 했다. 이날 마지막 손님인 셈이다. 식당 입구 쪽에 자리를 잡았다. 동치미에 겉절이 양파장아찌 깍두기…. 혼자 먹기 미안할 정도로 5가지 밑반찬이 나왔다.

주문은 6000원짜리 만둣국백반. 잠시 후 만두 5개가 들어있는 만둣국이 나왔다. 황해도식 사각형 모양의 만두다. 싱싱한 당근과 파, 김이 고명으로 올라왔다. 육수는 별도로 냈다.

만두 하나를 공기 뚜껑에 올려놓고 숟가락으로 배를 살짝 열어봤다. 전체 소의 분량 중 30∼40% 돼 보이는 호박이 초록색 빛깔을 잃지 않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선홍색 당근, 그리고 잘게 다져진 고기와 파도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만두전골을 주문하면 만두피를 만들고 남은 것을 칼국수로 썰어 넣어준다.

식사하는 동안 손님들이 계속 찾아왔다. 광주 서울 청주 등 전국에서 온 손님들이다. 모두 발길을 돌려야 했다.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을 돌려보내는 게 미안하지 않습니까?”(기자)

“방법이 없습니다. 2시간 영업하려고 10시간을 준비합니다. 정말로 죄송스럽지만 사람을 더 고용해 대량으로 만들 수도 없는 일입니다. 맛을 남에게 맡길 순 없어요.”(유 씨)

만두 빚기는 오전 7시 반부터 시작된다. 반죽을 하고, 소를 만들고, 만두를 빚는 데 꼬박 4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야 하루 160인(800개 정도) 분량이다. 오후 3시쯤 다시 다음 날 판매할 재료를 다듬는다. 오후 7시까지 꼬박 반복한다.

방송 후 별별 사연을 다 겪었다. 한번은 전북 익산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할머니 목소리다. “병원에 입원한 영감이 방송을 보고 꼭 먹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택배로 보내고 싶었지만 한번도 냉동해보지 않았다. 유 씨 부부는 영업이 끝난 뒤 직접 차를 몰고 익산까지 달려갔다. 감격한 할아버지는 두 사람의 손을 꼭 잡았다. 울산에서 온 모녀는 만두가 떨어졌다는 말에 공주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먹고 갔다. 체인점 문의도 잇따르고 있지만 관심도 없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봤다. ‘과연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게 착한식당인가.’ 곧 해답을 찾았다. 대기업 골목빵집의 목적은 돈이다. 그래서 목 좋은 곳곳으로 빵집을 늘려나간다. 황해도손만두국집은 돈만 보고 만두를 빚는 건 아니다. 그래서 양을 늘리지 않는다.

4일 다시 찾았다. 이번엔 만두를 빚는 할머니와 며느리의 표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먹는 사람의 즐거운 표정을 생각해서인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공주=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한식·양식·중식 조리기능사 

촉나라 제갈공명은 남만(南蠻·지금의 미얀마 부근) 정벌을 마치고 돌아오다 풍파가 심한 여수(濾水)를 건너기 위해 만두를 빚었다. 정벌로 숨진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고 성난 강을 달래기 위해 사람 머리 형상으로 만들었다. 만인(蠻人)의 머리를 본뜬 것이라 해서 ‘만두(蠻頭)’라 했다고 한다.

고령의 황정숙 씨(82)와 며느리 전용자 씨(57)도 사람 얼굴을 떠올리며 만두를 빚는다. 제갈공명과 다른 게 있다면 먹는 사람의 표정을 떠올리며 빚는다는 점. 지난해 10월 5일 ‘착한식당’ 16호점으로 선정된 충남 공주시 옥룡동 황해도손만두국에선 착한 사람 냄새가 난다.

황 씨가 1999년 만두가게를 연 것은 사업에 실패한 맏아들 유석진 씨(60) 때문이다. 공주 시내에서 꽤나 잘나가던 아들이 두부공장을 하다 2년 만에 폭삭 망했다. 집은 물론이고 가재도구에도 모두 빨간딱지가 붙었다. 유 씨의 고교생 딸(정)과 중학생 아들(원호)까지 온 가족이 거리에 나앉게 됐다.

유 씨는친척의 도움으로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만 원짜리 허름한 집을 구했지만 사는 게 힘들었다. 겨울이면 칼바람이 몰려 왔다. 할 일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남매는 학교에 가고, 아내와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저녁이면 지친 몸으로 들어오는 아내와 어머니에게 캐물었다. ‘어디에 다녀오는 거냐’고. 칠순에 가까운 어머니는 파출부, 아내는 식당일을 하고 있었다. “입에 풀칠을 해야 할 것 아니냐.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참고서는 사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에 가슴이 미어졌다. 가장으로서 노모와 아내를 밖으로 내몬 자괴감이 깊게 밀려 왔다.

‘입에 풀칠?’

‘풀칠’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그러다 문득 떠올렸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빚어주던 호박 소로 만든 만두. 정말 맛있어 세 그릇씩 해치웠다. 도정이 덜 돼 만두피는 시커멓고 식감도 투박했다. 하지만 소로 들어간 호박은 상큼했다. 황해도 옹진이 고향인 어머니는 설 명절만 되면 만두를 빚었다. 묵은지를 넣은 황해도식 만두였다. 김치가 마땅치 않으면 호박을 넣었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솜씨를 살려 만두가게를 내자. 부지런한 아내도 한몫할 것이고….’

1999년 개업할 때는 지금 식당에서 200m쯤 떨어진 곳이었다. 테이블이 7개만 들어갈 정도로 비좁았다. 흔한 전단광고 한 번 돌리지 못했다. 손님이 찾아올 리 없었다. 개업한 지 2∼3개월이 지난 뒤 다행히 식당 인근에 건축공사가 시작돼 인부들이 백반을 부탁했다. 간신히 끼니는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만두는 계속 빚었다. 하루 30개도 빚고 50개도 빚었다.

다행히 자녀들은 잘 커주었다. ‘사립대는 도저히 보낼 수 없다’는 아버지 말에 수긍했다. 서울대 간호학과에 합격한 딸(34)은 집안 살림이 어려운 것을 알고 등록을 포기한 뒤 장학금을 받고 청주교대를 다녔다. 아들은 충남도립 청양대를 선택해 집에서 통학했다. 졸업 후 딸은 교사, 아들은 공무원으로 일한다.

만두를 빚을 땐 어머니 황 씨의 ‘황소고집’을 아무도 꺾을 수 없다. 소는 반드시 호박을 쓴다. 부피만 늘리는 당면은 최소한으로 넣는다. 파 마늘 부추 등 야채는 신선한 것으로 당일 구입한 것만 사용한다. 돼지고기는 지방이 전혀 없는 최고급 암퇘지 뒷다리살만 쓴다.

1년 2년 시간이 지나도 만두 맛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기를 5년 6년. 이상한 변화가 시작됐다.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다. “맛이 담백하다” “야채향이 그윽하다” “속이 개운하다”며 공무원, 대학교 직원, 학교 교사들이 줄을 섰다. 점심시간 30분 안에 만두전골 한 접시 금방 먹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일주일에 2, 3회 찾아오는 마니아가 생기기 시작했다. ‘개운하고 담백한 맛이 자꾸 생각난다’는 게 이유였다. 식당 앞의 줄이 갈수록 길어졌다. 하루 세끼는 먹고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기다리다 발길을 돌리는 손님들이 ‘돈처럼’ 보여 너무 아까웠다.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업 12년 만인 2011년 9월 지금의 식당 자리로 옮겼다. 테이블은 18개로 늘어났고 주방도 쾌적해졌다. 옛날 식당으로 찾아간 손님들이 안내문을 읽고 새로운 가게로 발길을 옮겨줬다. 이제 제대로 된 만두를 빚으면 될 일이다.

만두 반죽은 아무래도 남자인 유 씨가 맡는다. 만두피는 어머니 황 씨 전문이다. 82세 고령이지만 꼿꼿하게 서서 수십 년째 같은 홍두깨로 피를 만든다. 만두소는 며느리 전 씨 담당이다.

밀가루는 최고급만을 사용한다. 직접 손으로 반죽해 2시간 정도 숙성시켜 찰기를 돕는다. 만두소 재료는 당일 구입한 것만 쓰며 당일 다 소화한다. 부추 고춧가루 등 모든 재료는 사돈이나 지인들이 농사지은 것만 사용한다. 전 씨는 만두소를 만들 때 장갑을 끼지 않는다. 맨손으로 해야 소의 질감과 농도를 느낄 수 있다.

하루 평균 100명 정도의 고정 손님이 생겨 자리를 잡아갈 즈음 ‘사고’가 터졌다.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착한식당’ 검증단에게 ‘발각’된 것.

지난해 10월 착한식당 검증단으로 활동한 이정삼 한국조리사협회 대전충남지회장(50)은 “만두소 재료에는 생명력이 있다. 당근 호박 고기 등 각각의 재료가 자기만의 빛깔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잘 어우러진다. 신선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나도 식당을 운영하지만 이 정도 신선한 재료만을 고집하기란 쉽지 않다”고 했다.

방송이 나간 후 영업시간은 줄어들었다. 옛날엔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열었으나 밀려오는 손님 때문에 오후 1시 반이면 만두가 떨어진다. 점심 장사다.

2일 오후 1시 반경 손님을 가장해 혼자 만두가게를 찾았다. 이미 가게 입구에 ‘만두 재료가 떨어졌습니다. 더이상 판매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씌어 있었다. 망설이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유 씨가 “1인분은 남아 있다”고 했다. 이날 마지막 손님인 셈이다. 식당 입구 쪽에 자리를 잡았다. 동치미에 겉절이 양파장아찌 깍두기…. 혼자 먹기 미안할 정도로 5가지 밑반찬이 나왔다.

주문은 6000원짜리 만둣국백반. 잠시 후 만두 5개가 들어있는 만둣국이 나왔다. 황해도식 사각형 모양의 만두다. 싱싱한 당근과 파, 김이 고명으로 올라왔다. 육수는 별도로 냈다.

만두 하나를 공기 뚜껑에 올려놓고 숟가락으로 배를 살짝 열어봤다. 전체 소의 분량 중 30∼40% 돼 보이는 호박이 초록색 빛깔을 잃지 않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선홍색 당근, 그리고 잘게 다져진 고기와 파도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만두전골을 주문하면 만두피를 만들고 남은 것을 칼국수로 썰어 넣어준다.

식사하는 동안 손님들이 계속 찾아왔다. 광주 서울 청주 등 전국에서 온 손님들이다. 모두 발길을 돌려야 했다.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을 돌려보내는 게 미안하지 않습니까?”(기자)

“방법이 없습니다. 2시간 영업하려고 10시간을 준비합니다. 정말로 죄송스럽지만 사람을 더 고용해 대량으로 만들 수도 없는 일입니다. 맛을 남에게 맡길 순 없어요.”(유 씨)

만두 빚기는 오전 7시 반부터 시작된다. 반죽을 하고, 소를 만들고, 만두를 빚는 데 꼬박 4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야 하루 160인(800개 정도) 분량이다. 오후 3시쯤 다시 다음 날 판매할 재료를 다듬는다. 오후 7시까지 꼬박 반복한다.

방송 후 별별 사연을 다 겪었다. 한번은 전북 익산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할머니 목소리다. “병원에 입원한 영감이 방송을 보고 꼭 먹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택배로 보내고 싶었지만 한번도 냉동해보지 않았다. 유 씨 부부는 영업이 끝난 뒤 직접 차를 몰고 익산까지 달려갔다. 감격한 할아버지는 두 사람의 손을 꼭 잡았다. 울산에서 온 모녀는 만두가 떨어졌다는 말에 공주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먹고 갔다. 체인점 문의도 잇따르고 있지만 관심도 없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봤다. ‘과연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게 착한식당인가.’ 곧 해답을 찾았다. 대기업 골목빵집의 목적은 돈이다. 그래서 목 좋은 곳곳으로 빵집을 늘려나간다. 황해도손만두국집은 돈만 보고 만두를 빚는 건 아니다. 그래서 양을 늘리지 않는다.

4일 다시 찾았다. 이번엔 만두를 빚는 할머니와 며느리의 표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먹는 사람의 즐거운 표정을 생각해서인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공주=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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