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총알택시, 사고 나면 책임은…

등록 2013.03.13.

“길빵으로 언제 사납금 다 벌어요. 황금시간대에 한 번이라도 더 탕뛰기(총알택시 영업)를 해야 먹고살지….”

서울지하철 사당역 5번 출구 앞에서 만난 택시운전사 박모 씨(58)는 귀찮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12일 0시 반경 그는 연신 행인들을 향해 “안산, 수원”을 외치고 있었다. “요즘은 밤늦게까지 버스와 지하철이 다니고 첫차도 빨라서 이때를 놓치면 손님 태우기 힘들어요. 시내 돌아다니는 ‘길빵’으로는 손님을 언제 만날지 알 수가 있나. 좀 기다리더라도 손님 3명 태워서 한 탕 뛰면 30분 만에 6만 원 버는 걸….”

사당역 주변에는 평일인데도 서울과 경기 택시 수십 대가 줄지어 있었다. 손님을 합승시켜 짧은 시간 내에 경기 안산과 수원 등으로 장거리 운행을 해 돈을 버는 ‘총알택시’ 집합소였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총알택시와 법규를 지키며 주행하는 ‘준법 택시’에 나눠 타고 그 위험성을 분석했다.
○ 파랗든 빨갛든 신호등은 그냥 통과

호객하는 운전사에게 묻자 “수원은 2만 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택시에 탔지만 곧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운전사는 당연하다는 듯 합승 손님을 계속 모았다. 19분을 기다려 안산 가는 손님 2명을 더 태우고서야 출발했다. 3명을 태운 총알택시는 미터기를 켜지 않았다. 0시 53분. 동시에 미리 섭외해 둔 준법 택시는 미터기를 켜고 사당역을 떠났다.

남태령 수도방위사령부 앞 횡단보도에서 처음 빨간 신호에 걸렸지만 총알택시는 망설임 없이 쌩하고 내달렸다. 총알택시는 수원역에 도착할 때까지 빨간 신호등에 다섯 번 걸렸지만 멈칫거리지도 않고 그대로 질주했다. 유일하게 바퀴가 멈춘 때는 의왕 요금소에서 요금을 낼 때뿐이었다.

과천대로를 거쳐 한적한 과천∼의왕 고속화도로에 들어서자 운전사는 본격적으로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시속 90km인 제한속도 표지판이 곳곳에 보였지만 택시 속도계는 120 밑으로 내려올 줄 몰랐다. 보통 130km에서 최고 150km 사이를 유지했다. 언덕길에선 살짝 몸이 뜨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단숨에 수원 시내로 들어선 총알택시는 목적지인 수원역 앞에 오전 1시 11분 도착했다. 약 27km를 18분 만에 주파한 것이다.

그 시각 준법 택시는 월암 나들목을 지나고 있었다. 수원역에서 약 5km 떨어진 지점이다. 총알택시가 도착하고 11분 뒤인 1시 22분 수원역에 도착했다. 미터기 숫자는 ‘24480’을 가리키고 있었다. 돈 4480원과 시간 11분을 아꼈지만 합승하려 기다린 시간과 아슬아슬했던 ‘죽음의 질주’를 떠올리면 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취재팀은 사당역∼수원 구간 외에도 영등포역∼인천 부평역 구간 총알택시에 탑승했다. 이 택시는 최고 속도가 180km에 이를 정도로 질주했다. 기자는 두려움에, 택시 엔진은 무리한 가속에 부르르 떨어야 했다. 이 속도에서도 추월하려고 이리저리 차로를 바꾸는 것은 예사였다.
○ 30년 고질병, 못 고치는 속사정

국내에 총알택시의 등장을 알린 첫 보도는 동아일보 1983년 7월 11일자였다. 교통안전공단 권기동 교통안전교육센터장은 “1982년 통행금지가 해제된 이후 귀가가 늦어지면서 총알택시가 처음 등장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본보 기사는 ‘시속 130km의 광포운전, 승객들 아예 눈 감아버려’라는 부제 아래 ‘총알택시는 일단 고속도로나 한적한 국도에 들어서면 시속 130km까지 속력을 내 을지로5가에서 성남시청 앞까지 34km를 20여 분 내에 달린다. 합승요금은 수원·인천 2000원 성남 1300원 의정부·부천 1000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30년이 지났지만 요금만 올랐을 뿐 그때의 상황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택시운전사들은 “수입이 낮기 때문에 반복되는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의 택시운전사 김상운 씨(58)는 “법인택시 운전사는 하루 12시간 택시를 쓰는데 회사에 8만∼10만 원 낸다. 이 돈을 못 채우면 제 주머니에서 채워야 한다. 회사로부터 연료로 액화석유가스(LPG) 25L를 받지만 이걸로는 겨우 180km 정도밖에 가지 못해 운행을 많이 할 땐 추가 연료비도 운전사의 몫”이라고 말했다.

결국 합승 손님을 받아 장거리 운행을 하는 것이 사납금 걱정을 덜면서 연료도 아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총알 영업’을 하면 정상적으로 승객을 태울 때에 비해 짧은 시간에 2∼3배 더 벌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초고속 운행을 해서 재빨리 돌아오면 이른바 황금시간대에 한두 차례 더 ‘총알 영업’을 할 수 있어 수입이 배가된다는 설명이다. 시 외곽으로 갔다가 빈차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지만 과속을 하면 20분 만에 돌아올 수 있으므로 감수할 만한 수준이 된다.
○ 총알택시 사고 승객도 20% 책임

단속은 어렵다. 총알택시의 과속 단속은 일반 차량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사업구역 외 영업 문제(허가된 지역 이외의 장소에서 손님을 태우는 것)와 합승 문제가 처벌이 가능한 대목이 된다. 예를 들어 인천 택시가 일부러 서울에 와서 손님을 태우면 안 되지만 인천에서 서울로 승객을 태우고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손님을 받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총알택시는 보통 미터기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실제 손님을 태우고 다른 영업구역으로 넘어갔는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다. 합승도 보통 늦은 밤부터 새벽 시간대에 이뤄지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사실상 총알택시 단속에 손을 놓고 있다.

서울시는 택시에 기계적인 장치를 달아 시속 120km 이상으로 달리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총알택시의 대부분이 서울 시내를 달리기보단 서울과 경기 인천 지역을 오가는 타 지역 택시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인천시 대중교통과는 “속도제한장치는 검토한 바 없다”며 “지자체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법률 개정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총알택시인 줄 알고 탔다가 사고가 났다면 승객에게도 책임이 있다.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총알택시라는 것을 알고 타서 운전사의 과속을 말리지 않았다면 사고로 인한 손해의 20%는 본인 책임”이라고 밝히고 있다. 승객에게도 총알택시를 타지 않을 의무가 일정 부분 있는 셈이다.

김성규·권오혁 기자 sunggyu@donga.com


“길빵으로 언제 사납금 다 벌어요. 황금시간대에 한 번이라도 더 탕뛰기(총알택시 영업)를 해야 먹고살지….”

서울지하철 사당역 5번 출구 앞에서 만난 택시운전사 박모 씨(58)는 귀찮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12일 0시 반경 그는 연신 행인들을 향해 “안산, 수원”을 외치고 있었다. “요즘은 밤늦게까지 버스와 지하철이 다니고 첫차도 빨라서 이때를 놓치면 손님 태우기 힘들어요. 시내 돌아다니는 ‘길빵’으로는 손님을 언제 만날지 알 수가 있나. 좀 기다리더라도 손님 3명 태워서 한 탕 뛰면 30분 만에 6만 원 버는 걸….”

사당역 주변에는 평일인데도 서울과 경기 택시 수십 대가 줄지어 있었다. 손님을 합승시켜 짧은 시간 내에 경기 안산과 수원 등으로 장거리 운행을 해 돈을 버는 ‘총알택시’ 집합소였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총알택시와 법규를 지키며 주행하는 ‘준법 택시’에 나눠 타고 그 위험성을 분석했다.
○ 파랗든 빨갛든 신호등은 그냥 통과

호객하는 운전사에게 묻자 “수원은 2만 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택시에 탔지만 곧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운전사는 당연하다는 듯 합승 손님을 계속 모았다. 19분을 기다려 안산 가는 손님 2명을 더 태우고서야 출발했다. 3명을 태운 총알택시는 미터기를 켜지 않았다. 0시 53분. 동시에 미리 섭외해 둔 준법 택시는 미터기를 켜고 사당역을 떠났다.

남태령 수도방위사령부 앞 횡단보도에서 처음 빨간 신호에 걸렸지만 총알택시는 망설임 없이 쌩하고 내달렸다. 총알택시는 수원역에 도착할 때까지 빨간 신호등에 다섯 번 걸렸지만 멈칫거리지도 않고 그대로 질주했다. 유일하게 바퀴가 멈춘 때는 의왕 요금소에서 요금을 낼 때뿐이었다.

과천대로를 거쳐 한적한 과천∼의왕 고속화도로에 들어서자 운전사는 본격적으로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시속 90km인 제한속도 표지판이 곳곳에 보였지만 택시 속도계는 120 밑으로 내려올 줄 몰랐다. 보통 130km에서 최고 150km 사이를 유지했다. 언덕길에선 살짝 몸이 뜨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단숨에 수원 시내로 들어선 총알택시는 목적지인 수원역 앞에 오전 1시 11분 도착했다. 약 27km를 18분 만에 주파한 것이다.

그 시각 준법 택시는 월암 나들목을 지나고 있었다. 수원역에서 약 5km 떨어진 지점이다. 총알택시가 도착하고 11분 뒤인 1시 22분 수원역에 도착했다. 미터기 숫자는 ‘24480’을 가리키고 있었다. 돈 4480원과 시간 11분을 아꼈지만 합승하려 기다린 시간과 아슬아슬했던 ‘죽음의 질주’를 떠올리면 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취재팀은 사당역∼수원 구간 외에도 영등포역∼인천 부평역 구간 총알택시에 탑승했다. 이 택시는 최고 속도가 180km에 이를 정도로 질주했다. 기자는 두려움에, 택시 엔진은 무리한 가속에 부르르 떨어야 했다. 이 속도에서도 추월하려고 이리저리 차로를 바꾸는 것은 예사였다.
○ 30년 고질병, 못 고치는 속사정

국내에 총알택시의 등장을 알린 첫 보도는 동아일보 1983년 7월 11일자였다. 교통안전공단 권기동 교통안전교육센터장은 “1982년 통행금지가 해제된 이후 귀가가 늦어지면서 총알택시가 처음 등장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본보 기사는 ‘시속 130km의 광포운전, 승객들 아예 눈 감아버려’라는 부제 아래 ‘총알택시는 일단 고속도로나 한적한 국도에 들어서면 시속 130km까지 속력을 내 을지로5가에서 성남시청 앞까지 34km를 20여 분 내에 달린다. 합승요금은 수원·인천 2000원 성남 1300원 의정부·부천 1000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30년이 지났지만 요금만 올랐을 뿐 그때의 상황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택시운전사들은 “수입이 낮기 때문에 반복되는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의 택시운전사 김상운 씨(58)는 “법인택시 운전사는 하루 12시간 택시를 쓰는데 회사에 8만∼10만 원 낸다. 이 돈을 못 채우면 제 주머니에서 채워야 한다. 회사로부터 연료로 액화석유가스(LPG) 25L를 받지만 이걸로는 겨우 180km 정도밖에 가지 못해 운행을 많이 할 땐 추가 연료비도 운전사의 몫”이라고 말했다.

결국 합승 손님을 받아 장거리 운행을 하는 것이 사납금 걱정을 덜면서 연료도 아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총알 영업’을 하면 정상적으로 승객을 태울 때에 비해 짧은 시간에 2∼3배 더 벌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초고속 운행을 해서 재빨리 돌아오면 이른바 황금시간대에 한두 차례 더 ‘총알 영업’을 할 수 있어 수입이 배가된다는 설명이다. 시 외곽으로 갔다가 빈차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지만 과속을 하면 20분 만에 돌아올 수 있으므로 감수할 만한 수준이 된다.
○ 총알택시 사고 승객도 20% 책임

단속은 어렵다. 총알택시의 과속 단속은 일반 차량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사업구역 외 영업 문제(허가된 지역 이외의 장소에서 손님을 태우는 것)와 합승 문제가 처벌이 가능한 대목이 된다. 예를 들어 인천 택시가 일부러 서울에 와서 손님을 태우면 안 되지만 인천에서 서울로 승객을 태우고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손님을 받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총알택시는 보통 미터기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실제 손님을 태우고 다른 영업구역으로 넘어갔는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다. 합승도 보통 늦은 밤부터 새벽 시간대에 이뤄지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사실상 총알택시 단속에 손을 놓고 있다.

서울시는 택시에 기계적인 장치를 달아 시속 120km 이상으로 달리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총알택시의 대부분이 서울 시내를 달리기보단 서울과 경기 인천 지역을 오가는 타 지역 택시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인천시 대중교통과는 “속도제한장치는 검토한 바 없다”며 “지자체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법률 개정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총알택시인 줄 알고 탔다가 사고가 났다면 승객에게도 책임이 있다.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총알택시라는 것을 알고 타서 운전사의 과속을 말리지 않았다면 사고로 인한 손해의 20%는 본인 책임”이라고 밝히고 있다. 승객에게도 총알택시를 타지 않을 의무가 일정 부분 있는 셈이다.

김성규·권오혁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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