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시달린 경산 고교생 마지막 모습 CCTV

등록 2013.03.15.
“엄마 아빠 미안해요.… 내가 죽는 이유를 말할게요. 학교폭력은 지금처럼 (단속을) 하면 100% 못 잡아냅니다. 반에도 화장실에도 CC(폐쇄회로)TV가 없어요. 그나마 CCTV가 있어도 화질이 안 좋아 판별하기 어려워요. (학교는) 돈이 없어 CCTV를 설치하거나 교체할 수 없다는데 나는 그걸 핑계라고 생각합니다. CCTV의 사각지대에서는 아직도 학생들이 맞고 있어요.”

경북 경산에서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고교생 최모 군(15)의 유서 내용이다. 최 군은 A4 용지 크기의 종이 앞뒤에 연필로 적은 유서에서 “학교폭력은 금품 갈취, 언어폭력, 사이버폭력, 빵 셔틀 등이 있다”며 자신이 물리적 폭력, 금품 갈취,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을 포함해 학생들이 학교 폭력에 여전히 ‘무방비 상태’임을 호소한 것이다. 대구 경북에서는 지난해 6월 대구 S고교, 4월 영주 Y중학교에서 학교 폭력으로 인한 자살 사건이 2건 발생했다. 전국적으로는 지난 한 해 동안 중고교생 15명이 따돌림과 우울증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2일 경북 경산경찰서에 따르면 11일 오후 7시 40분경 청도 특성화고교 1학년 최 군이 자신의 집인 경산시 정평동 한 아파트 23층 복도 창문에서 투신해 숨져 있는 것을 경비원 최모 씨(70)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투신 장소에서 발견된 최 군의 가방에는 유서가 들어 있었다.

최 군은 유서에서 “경찰 아저씨들, 내가 이때까지 괴롭힘을 받았던 얘기를 여기에 적는다”며 2011년부터 자신을 괴롭혔던 중학 동창 5명의 이름과 현재 다니는 학교를 언급했다. 이 중 2명은 최 군이 다니는 고교에 함께 진학했다.

최 군은 11일 오전 7시경 경산역에서 친구 박모 군(15)을 만나 학교 앞에 도착했지만 학교에 들어가지 않고 사라졌다. 박 군은 경찰 조사에서 “최 군이 조금 늦게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10여 차례 전화와 문자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고 했다.

최 군의 모습은 이날 오후 6시 43분 집 아파트로 걸어오는 CCTV 화면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13층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CCTV에 그의 모습은 없었다. 최 군은 계단을 이용해 23층까지 올라간 뒤 50분 정도 복도에 머문 후 몸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유서에서 최 군을 괴롭힌 것으로 나와 있는 동급생 5명을 불러 폭력 행위가 있었는지를 조사할 계획이다. 또 부검을 통해 최 군의 몸에 폭행으로 인한 상처가 있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강신욱 경산서 수사과장은 “최 군의 휴대전화 통화기록과 문자메시지 내용도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 군의 어머니(46)는 이날 경산 모 병원 장례식장에서 아들의 영정을 손으로 매만지며 통곡했다. “착하디착한 우리 아이가 왜? 엄마를 두고 이러면 어떻게 하느냐”며 눈물을 쏟았다. 최 군의 아버지(49)는 “아들은 부모의 말을 잘 따르는 착한 아이였다”며 “가끔 얼굴에 멍이 들거나 눈 밑이 긁히는 등 상처가 있었는데 ‘넘어져서 다쳤다’고 해 지나친 게 잘못”이라며 괴로워했다. 그는 “지난 주말 고교 기숙사 생활이 힘들다고 해서 통학을 허락했다. 바지가 찢어져 있길래 왜 그랬냐고 했더니 ‘청소하다가 그랬다’며 얼버무렸다. 그때 (폭행 등) 징후를 알고 관심을 가졌어야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A 군은 최 군 부모가 각별히 챙겨준 학생이어서 충격은 더 컸다. 최 군의 아버지는 “A 군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2011년에 5개월 넘게 우리 집에서 밥 해먹이고 옷도 사주고 돌봐줬다. 그런 아이가 우리 아들을 괴롭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최 군은 키 170cm, 몸무게 80kg의 당당한 체구였지만 순진한 성격 때문에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최 군이 다녔던 중학교는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밝혀졌다. 담임교사였던 B 씨 등은 “최 군이 학교 폭력 상담을 요청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최 군을 괴롭힌 5명도 모두 징계를 받거나 문제 학생으로 지적된 적이 없었다. 평범한 학생들이 순진한 한 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셈이다. 이 학교 건물과 복도에 설치된 CCTV 19대는 최 군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의 유서처럼 사각지대만 드러낸 무용지물이었다. 학교 폭력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CCTV 10만여 대가 각급 학교에 설치돼 있다. 학교 안팎을 드나드는 사람이나 차량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100만 화소 이상이어야 하지만 지난해 감사원이 1만7000여 대를 표본 조사한 결과 97%가량이 50만 화소 미만이라 식별 기능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319개 학교는 교문 등 출입이 빈번한 곳을 촬영하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설치된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나무나 조명에 막혀 아예 제 기능을 못하는 것도 있었다. 안전한 통학로 확보를 위해 학교 밖 인도와 도로 상황까지 살피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공교육 살리기 학부모연합 이경자 상임대표는 “이런 실정을 고려하면 CCTV도 학교 폭력을 막는 근본 대책은 되지 못한다”며 “교사들이 직접 나서 학생들에게 인성을 가르치고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예방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를 위해서는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교권을 충분히 보장하는 선제 조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 군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에서는 “이제는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폭력을 막아야 한다” “친구를 폭행하는 아이들에게 엄한 벌을 내려야 한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경산=장영훈 기자·김수연 기자 jang@donga.com

“엄마 아빠 미안해요.… 내가 죽는 이유를 말할게요. 학교폭력은 지금처럼 (단속을) 하면 100% 못 잡아냅니다. 반에도 화장실에도 CC(폐쇄회로)TV가 없어요. 그나마 CCTV가 있어도 화질이 안 좋아 판별하기 어려워요. (학교는) 돈이 없어 CCTV를 설치하거나 교체할 수 없다는데 나는 그걸 핑계라고 생각합니다. CCTV의 사각지대에서는 아직도 학생들이 맞고 있어요.”

경북 경산에서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고교생 최모 군(15)의 유서 내용이다. 최 군은 A4 용지 크기의 종이 앞뒤에 연필로 적은 유서에서 “학교폭력은 금품 갈취, 언어폭력, 사이버폭력, 빵 셔틀 등이 있다”며 자신이 물리적 폭력, 금품 갈취,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을 포함해 학생들이 학교 폭력에 여전히 ‘무방비 상태’임을 호소한 것이다. 대구 경북에서는 지난해 6월 대구 S고교, 4월 영주 Y중학교에서 학교 폭력으로 인한 자살 사건이 2건 발생했다. 전국적으로는 지난 한 해 동안 중고교생 15명이 따돌림과 우울증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2일 경북 경산경찰서에 따르면 11일 오후 7시 40분경 청도 특성화고교 1학년 최 군이 자신의 집인 경산시 정평동 한 아파트 23층 복도 창문에서 투신해 숨져 있는 것을 경비원 최모 씨(70)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투신 장소에서 발견된 최 군의 가방에는 유서가 들어 있었다.

최 군은 유서에서 “경찰 아저씨들, 내가 이때까지 괴롭힘을 받았던 얘기를 여기에 적는다”며 2011년부터 자신을 괴롭혔던 중학 동창 5명의 이름과 현재 다니는 학교를 언급했다. 이 중 2명은 최 군이 다니는 고교에 함께 진학했다.

최 군은 11일 오전 7시경 경산역에서 친구 박모 군(15)을 만나 학교 앞에 도착했지만 학교에 들어가지 않고 사라졌다. 박 군은 경찰 조사에서 “최 군이 조금 늦게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10여 차례 전화와 문자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고 했다.

최 군의 모습은 이날 오후 6시 43분 집 아파트로 걸어오는 CCTV 화면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13층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CCTV에 그의 모습은 없었다. 최 군은 계단을 이용해 23층까지 올라간 뒤 50분 정도 복도에 머문 후 몸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유서에서 최 군을 괴롭힌 것으로 나와 있는 동급생 5명을 불러 폭력 행위가 있었는지를 조사할 계획이다. 또 부검을 통해 최 군의 몸에 폭행으로 인한 상처가 있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강신욱 경산서 수사과장은 “최 군의 휴대전화 통화기록과 문자메시지 내용도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 군의 어머니(46)는 이날 경산 모 병원 장례식장에서 아들의 영정을 손으로 매만지며 통곡했다. “착하디착한 우리 아이가 왜? 엄마를 두고 이러면 어떻게 하느냐”며 눈물을 쏟았다. 최 군의 아버지(49)는 “아들은 부모의 말을 잘 따르는 착한 아이였다”며 “가끔 얼굴에 멍이 들거나 눈 밑이 긁히는 등 상처가 있었는데 ‘넘어져서 다쳤다’고 해 지나친 게 잘못”이라며 괴로워했다. 그는 “지난 주말 고교 기숙사 생활이 힘들다고 해서 통학을 허락했다. 바지가 찢어져 있길래 왜 그랬냐고 했더니 ‘청소하다가 그랬다’며 얼버무렸다. 그때 (폭행 등) 징후를 알고 관심을 가졌어야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A 군은 최 군 부모가 각별히 챙겨준 학생이어서 충격은 더 컸다. 최 군의 아버지는 “A 군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2011년에 5개월 넘게 우리 집에서 밥 해먹이고 옷도 사주고 돌봐줬다. 그런 아이가 우리 아들을 괴롭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최 군은 키 170cm, 몸무게 80kg의 당당한 체구였지만 순진한 성격 때문에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최 군이 다녔던 중학교는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밝혀졌다. 담임교사였던 B 씨 등은 “최 군이 학교 폭력 상담을 요청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최 군을 괴롭힌 5명도 모두 징계를 받거나 문제 학생으로 지적된 적이 없었다. 평범한 학생들이 순진한 한 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셈이다. 이 학교 건물과 복도에 설치된 CCTV 19대는 최 군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의 유서처럼 사각지대만 드러낸 무용지물이었다. 학교 폭력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CCTV 10만여 대가 각급 학교에 설치돼 있다. 학교 안팎을 드나드는 사람이나 차량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100만 화소 이상이어야 하지만 지난해 감사원이 1만7000여 대를 표본 조사한 결과 97%가량이 50만 화소 미만이라 식별 기능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319개 학교는 교문 등 출입이 빈번한 곳을 촬영하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설치된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나무나 조명에 막혀 아예 제 기능을 못하는 것도 있었다. 안전한 통학로 확보를 위해 학교 밖 인도와 도로 상황까지 살피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공교육 살리기 학부모연합 이경자 상임대표는 “이런 실정을 고려하면 CCTV도 학교 폭력을 막는 근본 대책은 되지 못한다”며 “교사들이 직접 나서 학생들에게 인성을 가르치고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예방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를 위해서는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교권을 충분히 보장하는 선제 조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 군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에서는 “이제는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폭력을 막아야 한다” “친구를 폭행하는 아이들에게 엄한 벌을 내려야 한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경산=장영훈 기자·김수연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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