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광주비엔날레, 5일 개막…“창조적 파괴위해 모두 불태워라”

등록 2014.09.04.
14 광주비엔날레 5일 개막

“문어가 전시관을 부수고 나오려고 하네요.”

“한국에서 문어는 나쁜 의미로 쓰인다면서요? ‘문어발식 경영’이란 표현에서처럼.”

개막을 이틀 앞둔 3일 2014 광주비엔날레 행사장을 미리 찾은 400여 명의 국내외 기자들과 예술 관계자들은 전시관 전면을 가득 채운 도발적인 그림을 보고 한마디씩 했다. 영국 작가 제러미 델러(48)의 신작으로 올해의 주제인 ‘터전을 불태우라(Burning down the house·사진)’를 익살스럽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1995년 미술계의 변방 국가, 거기에서도 남쪽 작은 도시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비엔날레로 착실히 성장해온 광주비엔날레는 20주년을 맞아 ‘터전을 불사르자’는 제안을 하고 전시장이 불타고 있는 작품부터 내걸었다.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뉴욕 출신의 펑크록그룹 ‘토킹 헤즈’의 노래 제목(‘Burning down the house’)처럼 저항과 혁신이라는 예술의 역할을 되새겨보자는 취지에서다. 38개국에서 111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2014 광주 비엔날레 주제 ‘터전을 불태우라’에서 ‘터전’이란 나쁜 제도나 관습을 뜻한다. 사진에 나오는 작품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는 선동과 공포 정치를 일삼는 기성 권력의 취약성을 풍자적으로 꼬집은 작품이다. 말에 매달린 이의 마스크에는 ‘YES’나 ‘NO’ 중 한 단어가 적히는데, 이는 전시가 열리는 곳에서 실시한 ‘정부에 만족하는가’라는 설문조사의 결과를 뜻한다. 미국의 부부 작가 에드워드 키엔홀츠(1927∼1994)와 낸시 레딘 키엔 홀츠(71)의 작품.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전시장은 불난 집 같았다. 영국과 스페인 출신의 예술 그룹인 엘 우티모 그리토의 그래픽 작품 ‘버닝(burning)’으로 전시장이 ‘도배’됐기 때문이다. 주제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검은 연기를 내뿜는 모습을 담은 작품을 벽면 전체에 붙여놓았다.

불태워야 할 터전이란 은유다. 인도 작가 쉴라 가우다(57)는 영상 작품을 통해 불가촉천민에게 “불교로 개종해 스스로를 해방하자”고 선동했다. 파키스탄 작가 후마 물지(44)는 동물 가죽으로 실물 크기의 인간을 만들어 뉘어 놓은 뒤 ‘분실물 취급소’라는 제목을 달았다. 실종이 흔한 사회를 고발하는 작품이다. 1980년대 군부독재 정치를 비판했던 사진작가 김영수(1946∼2011)는 ‘고문’을 통해 신체적인 폭력을, 최수앙(39)은 부러움과 질투로 과장되게 찡그린 얼굴을 여럿 매달아 놓은 ‘소음’에서 사회적 압박과 타인의 시선을 불태우자고 한다. 이불(50)은 나체로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는 퍼포먼스 ‘낙태’를 통해, 최운형(38)은 남성 성기를 잔뜩 그려놓은 그림 ‘아쿠아리움’을 통해 가부장적인 문화를 겨냥했다.

중국 작가 겅젠(52)는 설치작품 ‘쓸모없는’에서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현대인들의 소비문화를 불 지르자고 제안한다. 그는 상하이에 3일간 머물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버린 물건 500점을 수거해 투명한 아크릴 상장에 전시했다. 옷 신발 컴퓨터 등 온갖 전시물엔 언제 샀고 왜 버렸는지 이유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한국의 붕어빵 찍어내듯 하는 건축문화도 태워 없애버려야 할 터전이다. 브라질의 헤나타 루카스(43)는 전시관 건너편 아파트의 창문 형태를 그대로 따라 만든 창을 전시실 건물에 짜 넣었다. 제목은 ‘불편한 이방인이 될 때까지’.

영국 런던의 리슨 갤러리 큐레이터 그레그 힐티 씨는 전시장을 둘러본 뒤 “주제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작은 작품부터 6600m² 크기의 대형 작품까지 스케일과 소재 면에서 다양성을 확보한 인상적인 전시”라고 했다.

그러나 창조적 파괴 후 새로운 재건을 얘기하는 작품은 찾기 힘들었다. 불태우면서 아쉽게 잃게 되는 것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전시의 예술총감독인 제시카 모건(46) 영국 테이트모던 수석 큐레이터는 “불태운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불태운 뒤 새 피를 수혈하는 것이 중요해 참여 작가 가운데 90% 이상을 신진 작가들로 채웠다”고 했다.

1980년대 유행가 ‘터전을 불태우라’만큼 이번 전시는 혁신적인가. 판단은 관람객의 몫이다. 격년으로 개최돼 올해 10회째를 맞는 광주비엔날레는 5일 개막해 11월 9일까지 이어진다.

광주=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14 광주비엔날레 5일 개막

“문어가 전시관을 부수고 나오려고 하네요.”

“한국에서 문어는 나쁜 의미로 쓰인다면서요? ‘문어발식 경영’이란 표현에서처럼.”

개막을 이틀 앞둔 3일 2014 광주비엔날레 행사장을 미리 찾은 400여 명의 국내외 기자들과 예술 관계자들은 전시관 전면을 가득 채운 도발적인 그림을 보고 한마디씩 했다. 영국 작가 제러미 델러(48)의 신작으로 올해의 주제인 ‘터전을 불태우라(Burning down the house·사진)’를 익살스럽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1995년 미술계의 변방 국가, 거기에서도 남쪽 작은 도시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비엔날레로 착실히 성장해온 광주비엔날레는 20주년을 맞아 ‘터전을 불사르자’는 제안을 하고 전시장이 불타고 있는 작품부터 내걸었다.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뉴욕 출신의 펑크록그룹 ‘토킹 헤즈’의 노래 제목(‘Burning down the house’)처럼 저항과 혁신이라는 예술의 역할을 되새겨보자는 취지에서다. 38개국에서 111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2014 광주 비엔날레 주제 ‘터전을 불태우라’에서 ‘터전’이란 나쁜 제도나 관습을 뜻한다. 사진에 나오는 작품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는 선동과 공포 정치를 일삼는 기성 권력의 취약성을 풍자적으로 꼬집은 작품이다. 말에 매달린 이의 마스크에는 ‘YES’나 ‘NO’ 중 한 단어가 적히는데, 이는 전시가 열리는 곳에서 실시한 ‘정부에 만족하는가’라는 설문조사의 결과를 뜻한다. 미국의 부부 작가 에드워드 키엔홀츠(1927∼1994)와 낸시 레딘 키엔 홀츠(71)의 작품.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전시장은 불난 집 같았다. 영국과 스페인 출신의 예술 그룹인 엘 우티모 그리토의 그래픽 작품 ‘버닝(burning)’으로 전시장이 ‘도배’됐기 때문이다. 주제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검은 연기를 내뿜는 모습을 담은 작품을 벽면 전체에 붙여놓았다.

불태워야 할 터전이란 은유다. 인도 작가 쉴라 가우다(57)는 영상 작품을 통해 불가촉천민에게 “불교로 개종해 스스로를 해방하자”고 선동했다. 파키스탄 작가 후마 물지(44)는 동물 가죽으로 실물 크기의 인간을 만들어 뉘어 놓은 뒤 ‘분실물 취급소’라는 제목을 달았다. 실종이 흔한 사회를 고발하는 작품이다. 1980년대 군부독재 정치를 비판했던 사진작가 김영수(1946∼2011)는 ‘고문’을 통해 신체적인 폭력을, 최수앙(39)은 부러움과 질투로 과장되게 찡그린 얼굴을 여럿 매달아 놓은 ‘소음’에서 사회적 압박과 타인의 시선을 불태우자고 한다. 이불(50)은 나체로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는 퍼포먼스 ‘낙태’를 통해, 최운형(38)은 남성 성기를 잔뜩 그려놓은 그림 ‘아쿠아리움’을 통해 가부장적인 문화를 겨냥했다.

중국 작가 겅젠(52)는 설치작품 ‘쓸모없는’에서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현대인들의 소비문화를 불 지르자고 제안한다. 그는 상하이에 3일간 머물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버린 물건 500점을 수거해 투명한 아크릴 상장에 전시했다. 옷 신발 컴퓨터 등 온갖 전시물엔 언제 샀고 왜 버렸는지 이유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한국의 붕어빵 찍어내듯 하는 건축문화도 태워 없애버려야 할 터전이다. 브라질의 헤나타 루카스(43)는 전시관 건너편 아파트의 창문 형태를 그대로 따라 만든 창을 전시실 건물에 짜 넣었다. 제목은 ‘불편한 이방인이 될 때까지’.

영국 런던의 리슨 갤러리 큐레이터 그레그 힐티 씨는 전시장을 둘러본 뒤 “주제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작은 작품부터 6600m² 크기의 대형 작품까지 스케일과 소재 면에서 다양성을 확보한 인상적인 전시”라고 했다.

그러나 창조적 파괴 후 새로운 재건을 얘기하는 작품은 찾기 힘들었다. 불태우면서 아쉽게 잃게 되는 것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전시의 예술총감독인 제시카 모건(46) 영국 테이트모던 수석 큐레이터는 “불태운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불태운 뒤 새 피를 수혈하는 것이 중요해 참여 작가 가운데 90% 이상을 신진 작가들로 채웠다”고 했다.

1980년대 유행가 ‘터전을 불태우라’만큼 이번 전시는 혁신적인가. 판단은 관람객의 몫이다. 격년으로 개최돼 올해 10회째를 맞는 광주비엔날레는 5일 개막해 11월 9일까지 이어진다.

광주=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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