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고급음식점 요리사의 비밀병기는 바로…‘고추장’

등록 2014.09.06.
#1. 이달 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미드타운.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 등 유명인사들이 자주 찾는 레스토랑인 ‘할로(Harlow)’의 인기 메뉴 중에는 고추장을 사용하는 음식이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메뉴는 ‘양고기 미트볼’. 고추장을 넣은 마리나라 소스(마늘과 해산물, 토마토 등을 넣은 이탈리아식 스파게티 소스)를 미트볼에 얹은 요리다. 대니 예 수석 셰프는 “고추장이 양고기의 노린내를 잡아준다”며 “뉴욕의 동료 요리사들로부터 고추장 쓰는 법을 전수받았다”고 말했다.

#2. 같은 날 맨해튼 첼시 지역의 식료품점인 ‘딘&델루카’. 납품업체들이 가장 선호하는, 눈높이의 소스 코너 판매대에 고추장이 놓여 있었다. 미국 현지의 한인 식품업체인 ‘마마오’가 만든 제품이었다. 한국 드라마 팬이라고 밝힌 에런 스콧 씨는 “한국 드라마 주인공이 고추장을 넣은 비빔밥을 먹는 것을 본 후 사다 먹게 됐다”며 “고추장 파스타를 만들어 주말에 열리는 친구들의 ‘포틀럭 파티(Potluck Party·참석자들이 각자 요리한 음식을 가져오는 파티)’에 가져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계 음식의 수도, 이른바 ‘푸드로폴리탄(Food+Metropolitan)’으로 불리는 뉴욕에서 고추장이 인기 소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고추장은 피자와 파스타, 바비큐 등에 두루 쓰이는, 스타 셰프들의 ‘비밀 병기’가 됐다. 한식의 대표주자가 기존의 갈비, 비빔밥, 불고기 등 요리에서 식재료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식재료는 현지 요리와도 결합해 광범위하게 쓰일 수 있는 만큼 고추장 인기가 본격화되면 상당한 경제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변방의 소스, 뉴욕 힙스터들의 식재료로

5, 6년 전만 해도 고추장은 뉴욕에서 ‘변방의 소스’에 지나지 않았다. 뉴욕은 ‘에스닉 푸드(Ethnic Food·이국적 음식)’의 집산지답게 일본 간장, 중국 굴소스 등 다채로운 다국적 소스로 넘쳐나는 곳이다. 하지만 고추장은 예외였다. 한국 교민들이 코리아타운에서나 구할 수 있는 식재료였다.

하지만 2008∼2009년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고추장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요리 전문채널 ‘푸드 네트워크’에서 방영하는 ‘촙트(Chopped)’에서는 인기 셰프들이 고추장의 특성을 설명한 후 출연자들에게 고추장을 이용한 요리를 만들라는 과제를 줬다. 그러자 미국인들 사이에 ‘도대체 고추장이 뭐야?’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후 미국의 인기 건강 프로그램인 ‘닥터 오즈쇼’에서 고추장의 캡사이신 성분이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다는 내용이 소개되자 ‘고추장이 건강에 좋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급기야 NBC의 ‘투데이쇼’는 ‘2013년 가장 핫(hot)한 트렌드’로 고추장의 확산을 꼽았다. 맨해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에스더 최 씨는 “스타 셰프들이 알음알음으로 사용하던 고추장이 미디어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대중적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지금 고추장은 뉴욕의 ‘힙스터(Hipster·트렌드를 앞서가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레스토랑 메뉴판에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유명해진 맨해튼의 ‘노부’ 레스토랑은 ‘매운 고추장 양념을 한 바삭한 새우튀김’으로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미국 뉴저지의 ‘밀퍼드 오이스터 하우스’는 ‘한국식 불버거(Korean Fire Burger)’를 팔면서 메뉴판에 ‘굵게 갈아낸 쇠고기를 고추장에 버무렸다(Gochujang mixed ground beef)’고 설명했다. 기딤 오 씨(마마오 대표)는 “예전에는 고추장이라는 낯선 식재료를 쉽게 설명하려고 ‘한국식 케첩(Korean Ketchup)’이나 ‘한국식 핫 소스(Korean Hot Sauce)’라는 표현을 썼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냥 고추장이라고 표현해도 큰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전 세계에 수출되는 고추장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1∼7월 고추장 수출액은 17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2%나 증가했다.



뉴요커들 “맵고 달고 짜고 오묘한 고추장, 제5의 맛”

뉴요커들이 고추장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레스토랑 컨설턴트인 트로이 톰슨 씨는 고추장의 맛을 ‘우마미(Umami)’라고 표현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학술용어인 우마미는 인간이 혀로 감지할 수 있는 단맛, 신맛, 짠맛, 쓴맛 이외의 ‘제5의 맛’을 가리킨다.

톰슨 씨는 “고추장 특유의 맵고 묵직하면서도 달콤하고 짠 복합적인 맛(Multiple Layer)은 한 단어로 압축해서 표현하기 힘들다”며 “고추장의 맛은 다른 국가의 소스에선 찾아보기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고추장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맛을 가지게 된다. 발효 과정에서 콩의 단백질이 분해되면 아미노산의 구수한 맛이 생기고, 전분이 분해되면 단맛이 생겨난다. 신맛은 유기산 생성의 결과다. 여기에 소금의 짠맛과 고춧가루 본연의 매운맛이 어우러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맛’이 나온다.

고추장의 인기는 미국의 핫 소스 시장이 매년 커지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핫 소스 시장 규모는 아시아계와 히스패닉 인구가 많아지면서 2008∼2013년 5년간 연평균 5.8%씩 성장했다. KOTRA에 따르면 미국의 핫 소스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11억 달러(약 1조1000억 원)에 이른다.

요리 잡지 ‘보나페티(Bon Appetit)’의 애덤 라포포트 편집장은 “기존에는 칠리소스나 스리라차(태국산 고추를 갈아서 부드럽게 만든 페이스트에 식초, 마늘, 설탕을 더해 만든 소스)가 인기였지만, 요즘엔 기존의 핫 소스에 식상한 미국인들이 고추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식초가 들어가는 칠리소스나 스리라차는 가열하면 기존의 맛이 날아가 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고추장은 가열해도 특유의 맛이 그대로 남아 요리의 맛을 더 풍성하게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식음료업계 오스카상 거머쥔 고추장

고추장의 인기는 국내 식품기업이나 해외의 교포 기업들에는 기회가 되고 있다. 올 7월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북미 최대의 식품박람회 ‘팬시푸드쇼(Summer Fancy Food Show)’에서는 미국의 김치 제조업체인 장모김치(Mother-In-Law Kimchi)가 출품한 고추장이 식음료 업계의 오스카상이라고도 불리는 ‘소피 어워드’를 수상했다. 축구장의 5배에 이르는 전시장에서 2700여 개의 식품기업이 26만여 종을 출품한 가운데 나온 상이었다.

로린 천 장모김치 대표는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춰 일반 고추장보다 묽고 덜 매우며 달콤한 맛을 강조했다”며 “현재 ‘모든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소스’를 모토로 판매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리할 때 넣는 것은 물론이고 오이나 크래커, 프렌치프라이 등을 찍어 먹어도 좋다. 칵테일에도 넣어 먹을 수 있고, 미국식 상추쌈(Lettuce Wraps)이나 칼라마리(Calamari·이탈리아식 오징어 튀김)에도 잘 어울린다”고 덧붙였다.

팬시푸드쇼에서는 국내 기업들도 미국인의 입맛에 맞춘 고추장을 선보였다. 대상 청정원이 마련한 부스는 ‘뜨는 양념’으로 통하는 고추장을 맛보기 위한 관람객들로 내내 북적였다. 고추장 시식대에서 관람객들은 오이와 당근, 크래커 등을 고추장에 찍어 먹어보기도 하고 고추장 양념을 한 바비큐도 맛보며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미국 대형 슈퍼마켓의 바이어인 린다 켄 씨는 “(고추장은) 덜 기름지고 담백하며 중독성이 있다”고 평했다. 그는 고추장에 표시된 ‘비건(Vegan·채식주의자용)’이나 ‘글루텐프리(Gluten Free·글루텐 미포함)’ 등의 마크를 눈여겨보면서 “몸에 좋은 소스라면 안 먹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대상은 행사에서 선보인 ‘고추장(Gochujang)’을 이달부터 미국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현지인들을 겨냥해 맛은 물론이고 포장도 국내 제품과 다르게 만들었다. 이 제품은 사각통에 담아 수저로 ‘퍼먹는’ 고추장이 아닌 케첩처럼 짜서 먹는 방식이다. 기존 제품은 포장재를 뜯을 때 내용물이 손에 묻고, 수저로 펐던 소스를 나중에 다시 먹는 것에 미국인들이 위생적인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했다. 박대엽 대상아메리카 지사장은 “고추장 유행이 미국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는 분위기를 최대한 활용해 고추장의 우수성을 미국에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미국인 식탁 점령은 과제

전문가들은 소스 산업이 식품 분야의 ‘장치산업’으로 불리는 점을 감안하면 고추장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상당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소스가 다양한 현지 요리에 활용되면서 매출액이 급증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 기코만 간장이 대표적이다. 기코만 간장의 총 매출액은 2010년 2856억 엔, 2011년 2834억 엔, 2012년 2832억 엔, 2013년 3002억 엔으로 매년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국내 식품 기업들의 매출이 줄거나 정체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기코만 간장의 성장에는 제품의 세계화가 큰 몫을 했다. 지난해 기코만 간장이 생산한 간장 18만7000kL 중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서 판매된 물량은 전체의 80%에 이른다. ‘식품기업=내수기업’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진 것이다.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에서의 기코만 간장 판매량은 전체의 10%에 그치고, 나머지 10%는 유럽에서 팔린다.

기코만 간장은 1957년 미국에 진출하면서 ‘미국인의 식탁에 간장을 올려놓자’를 영업 목표로 삼았다. ‘어디에나 쓸 수 있는 양념(All Purpose Seasoning)’을 광고 문구로 각종 신문에 현지 요리에 자사 제품을 이용하는 법을 광고했다. 동시에 일본요리 전문가를 미국에 초빙해 일본요리를 소개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1973년 미국에 공장을 세우는 등 시장에 안착했다. 덕분에 현재 미국의 슈퍼마켓에서는 어디에서나 기코만 간장을 볼 수 있다.

기코만 간장에 비하면 한국의 고추장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신현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뉴욕지사장은 “익숙한 음식에 새로운 소스나 식재료를 넣어 먹는 것은 몰라도, 특정 소스나 식재료를 위해 요리를 배우라고 하기는 어렵다”며 “최대한 현지 요리와 접목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김유영 기자 abc@donga.com

#1. 이달 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미드타운.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 등 유명인사들이 자주 찾는 레스토랑인 ‘할로(Harlow)’의 인기 메뉴 중에는 고추장을 사용하는 음식이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메뉴는 ‘양고기 미트볼’. 고추장을 넣은 마리나라 소스(마늘과 해산물, 토마토 등을 넣은 이탈리아식 스파게티 소스)를 미트볼에 얹은 요리다. 대니 예 수석 셰프는 “고추장이 양고기의 노린내를 잡아준다”며 “뉴욕의 동료 요리사들로부터 고추장 쓰는 법을 전수받았다”고 말했다.

#2. 같은 날 맨해튼 첼시 지역의 식료품점인 ‘딘&델루카’. 납품업체들이 가장 선호하는, 눈높이의 소스 코너 판매대에 고추장이 놓여 있었다. 미국 현지의 한인 식품업체인 ‘마마오’가 만든 제품이었다. 한국 드라마 팬이라고 밝힌 에런 스콧 씨는 “한국 드라마 주인공이 고추장을 넣은 비빔밥을 먹는 것을 본 후 사다 먹게 됐다”며 “고추장 파스타를 만들어 주말에 열리는 친구들의 ‘포틀럭 파티(Potluck Party·참석자들이 각자 요리한 음식을 가져오는 파티)’에 가져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계 음식의 수도, 이른바 ‘푸드로폴리탄(Food+Metropolitan)’으로 불리는 뉴욕에서 고추장이 인기 소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고추장은 피자와 파스타, 바비큐 등에 두루 쓰이는, 스타 셰프들의 ‘비밀 병기’가 됐다. 한식의 대표주자가 기존의 갈비, 비빔밥, 불고기 등 요리에서 식재료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식재료는 현지 요리와도 결합해 광범위하게 쓰일 수 있는 만큼 고추장 인기가 본격화되면 상당한 경제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변방의 소스, 뉴욕 힙스터들의 식재료로

5, 6년 전만 해도 고추장은 뉴욕에서 ‘변방의 소스’에 지나지 않았다. 뉴욕은 ‘에스닉 푸드(Ethnic Food·이국적 음식)’의 집산지답게 일본 간장, 중국 굴소스 등 다채로운 다국적 소스로 넘쳐나는 곳이다. 하지만 고추장은 예외였다. 한국 교민들이 코리아타운에서나 구할 수 있는 식재료였다.

하지만 2008∼2009년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고추장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요리 전문채널 ‘푸드 네트워크’에서 방영하는 ‘촙트(Chopped)’에서는 인기 셰프들이 고추장의 특성을 설명한 후 출연자들에게 고추장을 이용한 요리를 만들라는 과제를 줬다. 그러자 미국인들 사이에 ‘도대체 고추장이 뭐야?’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후 미국의 인기 건강 프로그램인 ‘닥터 오즈쇼’에서 고추장의 캡사이신 성분이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다는 내용이 소개되자 ‘고추장이 건강에 좋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급기야 NBC의 ‘투데이쇼’는 ‘2013년 가장 핫(hot)한 트렌드’로 고추장의 확산을 꼽았다. 맨해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에스더 최 씨는 “스타 셰프들이 알음알음으로 사용하던 고추장이 미디어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대중적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지금 고추장은 뉴욕의 ‘힙스터(Hipster·트렌드를 앞서가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레스토랑 메뉴판에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유명해진 맨해튼의 ‘노부’ 레스토랑은 ‘매운 고추장 양념을 한 바삭한 새우튀김’으로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미국 뉴저지의 ‘밀퍼드 오이스터 하우스’는 ‘한국식 불버거(Korean Fire Burger)’를 팔면서 메뉴판에 ‘굵게 갈아낸 쇠고기를 고추장에 버무렸다(Gochujang mixed ground beef)’고 설명했다. 기딤 오 씨(마마오 대표)는 “예전에는 고추장이라는 낯선 식재료를 쉽게 설명하려고 ‘한국식 케첩(Korean Ketchup)’이나 ‘한국식 핫 소스(Korean Hot Sauce)’라는 표현을 썼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냥 고추장이라고 표현해도 큰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전 세계에 수출되는 고추장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1∼7월 고추장 수출액은 17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2%나 증가했다.



뉴요커들 “맵고 달고 짜고 오묘한 고추장, 제5의 맛”

뉴요커들이 고추장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레스토랑 컨설턴트인 트로이 톰슨 씨는 고추장의 맛을 ‘우마미(Umami)’라고 표현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학술용어인 우마미는 인간이 혀로 감지할 수 있는 단맛, 신맛, 짠맛, 쓴맛 이외의 ‘제5의 맛’을 가리킨다.

톰슨 씨는 “고추장 특유의 맵고 묵직하면서도 달콤하고 짠 복합적인 맛(Multiple Layer)은 한 단어로 압축해서 표현하기 힘들다”며 “고추장의 맛은 다른 국가의 소스에선 찾아보기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고추장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맛을 가지게 된다. 발효 과정에서 콩의 단백질이 분해되면 아미노산의 구수한 맛이 생기고, 전분이 분해되면 단맛이 생겨난다. 신맛은 유기산 생성의 결과다. 여기에 소금의 짠맛과 고춧가루 본연의 매운맛이 어우러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맛’이 나온다.

고추장의 인기는 미국의 핫 소스 시장이 매년 커지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핫 소스 시장 규모는 아시아계와 히스패닉 인구가 많아지면서 2008∼2013년 5년간 연평균 5.8%씩 성장했다. KOTRA에 따르면 미국의 핫 소스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11억 달러(약 1조1000억 원)에 이른다.

요리 잡지 ‘보나페티(Bon Appetit)’의 애덤 라포포트 편집장은 “기존에는 칠리소스나 스리라차(태국산 고추를 갈아서 부드럽게 만든 페이스트에 식초, 마늘, 설탕을 더해 만든 소스)가 인기였지만, 요즘엔 기존의 핫 소스에 식상한 미국인들이 고추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식초가 들어가는 칠리소스나 스리라차는 가열하면 기존의 맛이 날아가 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고추장은 가열해도 특유의 맛이 그대로 남아 요리의 맛을 더 풍성하게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식음료업계 오스카상 거머쥔 고추장

고추장의 인기는 국내 식품기업이나 해외의 교포 기업들에는 기회가 되고 있다. 올 7월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북미 최대의 식품박람회 ‘팬시푸드쇼(Summer Fancy Food Show)’에서는 미국의 김치 제조업체인 장모김치(Mother-In-Law Kimchi)가 출품한 고추장이 식음료 업계의 오스카상이라고도 불리는 ‘소피 어워드’를 수상했다. 축구장의 5배에 이르는 전시장에서 2700여 개의 식품기업이 26만여 종을 출품한 가운데 나온 상이었다.

로린 천 장모김치 대표는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춰 일반 고추장보다 묽고 덜 매우며 달콤한 맛을 강조했다”며 “현재 ‘모든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소스’를 모토로 판매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리할 때 넣는 것은 물론이고 오이나 크래커, 프렌치프라이 등을 찍어 먹어도 좋다. 칵테일에도 넣어 먹을 수 있고, 미국식 상추쌈(Lettuce Wraps)이나 칼라마리(Calamari·이탈리아식 오징어 튀김)에도 잘 어울린다”고 덧붙였다.

팬시푸드쇼에서는 국내 기업들도 미국인의 입맛에 맞춘 고추장을 선보였다. 대상 청정원이 마련한 부스는 ‘뜨는 양념’으로 통하는 고추장을 맛보기 위한 관람객들로 내내 북적였다. 고추장 시식대에서 관람객들은 오이와 당근, 크래커 등을 고추장에 찍어 먹어보기도 하고 고추장 양념을 한 바비큐도 맛보며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미국 대형 슈퍼마켓의 바이어인 린다 켄 씨는 “(고추장은) 덜 기름지고 담백하며 중독성이 있다”고 평했다. 그는 고추장에 표시된 ‘비건(Vegan·채식주의자용)’이나 ‘글루텐프리(Gluten Free·글루텐 미포함)’ 등의 마크를 눈여겨보면서 “몸에 좋은 소스라면 안 먹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대상은 행사에서 선보인 ‘고추장(Gochujang)’을 이달부터 미국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현지인들을 겨냥해 맛은 물론이고 포장도 국내 제품과 다르게 만들었다. 이 제품은 사각통에 담아 수저로 ‘퍼먹는’ 고추장이 아닌 케첩처럼 짜서 먹는 방식이다. 기존 제품은 포장재를 뜯을 때 내용물이 손에 묻고, 수저로 펐던 소스를 나중에 다시 먹는 것에 미국인들이 위생적인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했다. 박대엽 대상아메리카 지사장은 “고추장 유행이 미국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는 분위기를 최대한 활용해 고추장의 우수성을 미국에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미국인 식탁 점령은 과제

전문가들은 소스 산업이 식품 분야의 ‘장치산업’으로 불리는 점을 감안하면 고추장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상당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소스가 다양한 현지 요리에 활용되면서 매출액이 급증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 기코만 간장이 대표적이다. 기코만 간장의 총 매출액은 2010년 2856억 엔, 2011년 2834억 엔, 2012년 2832억 엔, 2013년 3002억 엔으로 매년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국내 식품 기업들의 매출이 줄거나 정체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기코만 간장의 성장에는 제품의 세계화가 큰 몫을 했다. 지난해 기코만 간장이 생산한 간장 18만7000kL 중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서 판매된 물량은 전체의 80%에 이른다. ‘식품기업=내수기업’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진 것이다.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에서의 기코만 간장 판매량은 전체의 10%에 그치고, 나머지 10%는 유럽에서 팔린다.

기코만 간장은 1957년 미국에 진출하면서 ‘미국인의 식탁에 간장을 올려놓자’를 영업 목표로 삼았다. ‘어디에나 쓸 수 있는 양념(All Purpose Seasoning)’을 광고 문구로 각종 신문에 현지 요리에 자사 제품을 이용하는 법을 광고했다. 동시에 일본요리 전문가를 미국에 초빙해 일본요리를 소개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1973년 미국에 공장을 세우는 등 시장에 안착했다. 덕분에 현재 미국의 슈퍼마켓에서는 어디에서나 기코만 간장을 볼 수 있다.

기코만 간장에 비하면 한국의 고추장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신현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뉴욕지사장은 “익숙한 음식에 새로운 소스나 식재료를 넣어 먹는 것은 몰라도, 특정 소스나 식재료를 위해 요리를 배우라고 하기는 어렵다”며 “최대한 현지 요리와 접목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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