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농구스타 김영희 “뇌종양, 거인병, 수없이 하늘 원망했지만…”
등록 2014.09.15.2m가 넘는 키로 하늘 높은 줄 모른다는 얘기를 듣던 그를 추석 다음 날인 9일 경기 부천시 오정구의 자택에서 만났다. 다세대주택 2층의 20m²(약 6평) 단칸방에서 마주한 김 씨는 거동이 불편했다. 올해 초 장(腸)마비 증세와 폐에 물이 차고 담낭에 염증이 생기면서 쓰러져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다고 한다. 2개월여 동안 입원했던 후유증이 남은 것이다. 합병증으로 윗니도 몇 개 없었다. 그는 “찾아오기 힘들지 않았느냐. 집에서 보자고 해 미안하다”며 신문지 크기만 한 상에 송편과 포도 한 송이를 차렸다. 매년 명절을 혼자 보내다 손님은 기자가 처음이라고 했다. 소파와 싱크대로 채워진 공간의 한쪽 벽에 놓인 장식장에는 녹슨 훈장, 트로피와 함께 코끼리 인형들이 눈길을 끌었다.
○ 너무 작게 태어났지만…
김 씨는 아기 때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너무 작게 태어나 할머니가 백일기도를 했다고 하더라. 아버지(165cm)와 어머니(163cm)도 크지 않았다.”
그러던 그의 키가 자라기 시작한 것은 다섯 살 때부터. “(부산 석포) 초등학교 입학식 날엔 맨 뒤에 설 정도가 되더니 5학년 때 175cm가 넘었다. 학교에서 나 때문에 배구팀을 만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공부를 중단하고 상경해 1년 동안 실업 배구팀에서 생활했다. 아버지가 결핵으로 요양 중이라 어머니는 생선 행상을 했다. 밥 구경도 못하다 서울 와 배불리 먹으니 키가 187cm까지 크더라.”
농구와 배구장을 전전하던 그는 부산 동주여중 농구부 시절 일찌감치 실업팀 한국화장품과 전속 계약을 했다. 박찬숙에 맞설 대항마로 ‘영희의 전성시대’가 열리는 줄 알았다.
○ 큰 키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1981년 서울 숭의여고 졸업 후 한국화장품에 입단한 김영희는 대회 엠블럼에 코끼리 그림이 들어간 점보시리즈가 출범하면서 한껏 주목받았다. 당시 한 경기 최다인 52점을 넣으며 개인 타이틀 5관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스피드가 느리다는 것에 발목이 잡혔다. 3점슛 제도 도입으로 농구 전술이 바뀐 것도 악재였다. “경기에 지면 모든 게 내 탓이었다. 대표팀에서도 벤치에 자주 앉아있었다.” 빙하기를 맞은 공룡 신세였던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다 돌연 은퇴식도 없이 코트를 떠났다. 뛰어난 기억력을 갖고 있는 코끼리처럼 그날을 떠올리던 김 씨는 몸서리를 쳤다.
“1987년 11월이었다. 샤워할 때 머리에 감각이 없더라. 두통이 너무 심해 병원을 찾았다. 뇌종양이라더라. 이틀만 늦게 갔어도 위독할 뻔했다. 스물다섯 살 때였다.” 시련은 끝난 게 아니었다. 1998년 유일한 친구 같은 존재였던 어머니가 59세로 세상을 떠난 뒤 2000년 아버지마저 세 차례의 암 수술 끝에 눈을 감았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7개월 가까이 곡기를 끊었다. 130kg 나가던 체중이 70kg까지 빠지더라. 목숨을 끊으려 한 적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김 씨는 2002년 거인병으로 알려진 말단증후군 판정을 받았다. 그의 키가 현역 때보다 커진 205cm에 이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심장과 장기 등이 계속 커져 죽게 되는 병이다. 매달 150만 원 넘게 드는 성장호르몬 억제 주사를 평생 맞아야 한다. 다행히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에서 계속 도와주고 계시다. 나를 왜 이렇게 크게 만들어 힘들게 하는지. 하늘을 수도 없이 원망했다.”
○ 처음으로 행복을 느끼는 꺽다리 아줌마
김 씨는 자신을 향한 세상의 낯선 시선도 힘들었다. “어려서부터 외계인 취급을 받았다. ‘장군감’이라고 말하던 동네 어른들을 피하려고 멀리 돌아다녔다. 처음 부천에 이사 와서는 아이들이 집 앞에 몰려와 ‘거인 나오라’고 외쳐댔다.” 4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며 외출도 꺼렸던 김 씨의 마음을 잡게 한 건 어느 날 불쑥 떠오른 어머니의 유언이었다. “‘엄마 아빠 다 죽고 너 혼자 되면 남에게 먼저 베푸는 삶을 살라’고 하셨다. ‘힘들어도 누군가를 부축하고 일으켜야 너도 살 수 있다’면서 말이다.”
기초연금과 메달포상 연금 등으로 매달 50만 원가량을 손에 쥐는 김 씨는 면도날 끼우기, 양말 실밥 제거 등 가내 부업으로 장애인과 소년 소녀 가장 등을 도왔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쌀 같은 구호품 등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고 있다.
“장애인 자원봉사를 나갔는데 몸이 불편해 양말도 혼자 못 신는 분들을 보며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홀몸노인들에게 팥죽을 끓여 주기도 하고 나를 놀리던 꼬마들에게는 과자와 사탕을 건넸다.” 김 씨는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다 최근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통해 관심이 집중된 전 프로농구 코치 박승일 씨 얘기도 꺼냈다. “언젠가 승일이 어머니를 만났는데 몸이 부쩍 마르셨더라. 아들 생각해서 밥이 안 넘어가도 많이 드시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장애 5급인데 3급만 되어도 그에게 큰 힘이 될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이제 김 씨는 주변 사람의 농담도 웃으며 받아넘길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어떤 어르신이 내 신발(330mm)을 보더니 항공모함 같다고 하길래 ‘내 신발 한번 타고 노를 저어 유럽 여행 가시라’고 웃으며 말했다. 큰 과일은 싱겁고 푸석푸석하지 않으냐. 내가 사람은 커도 마음은 솜사탕 같다. 아무 꿈도 없지만 지금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농구 후배들이 많이 도와줬다. 언젠가 농구장 가서 치어리더라도 하고 싶다. 그런데 그러다 코트 무너지면 어떡하지. 호호.” 김 씨가 몇 개 안 남은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그 미소가 보름달처럼 환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이름보다 ‘코끼리’라는 별명이 더 유명했다. 1980년대 농구 코트를 호령했던 김영희 씨(52)다. 1982년 인도 뉴델리와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은메달 멤버였다.
2m가 넘는 키로 하늘 높은 줄 모른다는 얘기를 듣던 그를 추석 다음 날인 9일 경기 부천시 오정구의 자택에서 만났다. 다세대주택 2층의 20m²(약 6평) 단칸방에서 마주한 김 씨는 거동이 불편했다. 올해 초 장(腸)마비 증세와 폐에 물이 차고 담낭에 염증이 생기면서 쓰러져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다고 한다. 2개월여 동안 입원했던 후유증이 남은 것이다. 합병증으로 윗니도 몇 개 없었다. 그는 “찾아오기 힘들지 않았느냐. 집에서 보자고 해 미안하다”며 신문지 크기만 한 상에 송편과 포도 한 송이를 차렸다. 매년 명절을 혼자 보내다 손님은 기자가 처음이라고 했다. 소파와 싱크대로 채워진 공간의 한쪽 벽에 놓인 장식장에는 녹슨 훈장, 트로피와 함께 코끼리 인형들이 눈길을 끌었다.
○ 너무 작게 태어났지만…
김 씨는 아기 때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너무 작게 태어나 할머니가 백일기도를 했다고 하더라. 아버지(165cm)와 어머니(163cm)도 크지 않았다.”
그러던 그의 키가 자라기 시작한 것은 다섯 살 때부터. “(부산 석포) 초등학교 입학식 날엔 맨 뒤에 설 정도가 되더니 5학년 때 175cm가 넘었다. 학교에서 나 때문에 배구팀을 만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공부를 중단하고 상경해 1년 동안 실업 배구팀에서 생활했다. 아버지가 결핵으로 요양 중이라 어머니는 생선 행상을 했다. 밥 구경도 못하다 서울 와 배불리 먹으니 키가 187cm까지 크더라.”
농구와 배구장을 전전하던 그는 부산 동주여중 농구부 시절 일찌감치 실업팀 한국화장품과 전속 계약을 했다. 박찬숙에 맞설 대항마로 ‘영희의 전성시대’가 열리는 줄 알았다.
○ 큰 키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1981년 서울 숭의여고 졸업 후 한국화장품에 입단한 김영희는 대회 엠블럼에 코끼리 그림이 들어간 점보시리즈가 출범하면서 한껏 주목받았다. 당시 한 경기 최다인 52점을 넣으며 개인 타이틀 5관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스피드가 느리다는 것에 발목이 잡혔다. 3점슛 제도 도입으로 농구 전술이 바뀐 것도 악재였다. “경기에 지면 모든 게 내 탓이었다. 대표팀에서도 벤치에 자주 앉아있었다.” 빙하기를 맞은 공룡 신세였던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다 돌연 은퇴식도 없이 코트를 떠났다. 뛰어난 기억력을 갖고 있는 코끼리처럼 그날을 떠올리던 김 씨는 몸서리를 쳤다.
“1987년 11월이었다. 샤워할 때 머리에 감각이 없더라. 두통이 너무 심해 병원을 찾았다. 뇌종양이라더라. 이틀만 늦게 갔어도 위독할 뻔했다. 스물다섯 살 때였다.” 시련은 끝난 게 아니었다. 1998년 유일한 친구 같은 존재였던 어머니가 59세로 세상을 떠난 뒤 2000년 아버지마저 세 차례의 암 수술 끝에 눈을 감았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7개월 가까이 곡기를 끊었다. 130kg 나가던 체중이 70kg까지 빠지더라. 목숨을 끊으려 한 적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김 씨는 2002년 거인병으로 알려진 말단증후군 판정을 받았다. 그의 키가 현역 때보다 커진 205cm에 이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심장과 장기 등이 계속 커져 죽게 되는 병이다. 매달 150만 원 넘게 드는 성장호르몬 억제 주사를 평생 맞아야 한다. 다행히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에서 계속 도와주고 계시다. 나를 왜 이렇게 크게 만들어 힘들게 하는지. 하늘을 수도 없이 원망했다.”
○ 처음으로 행복을 느끼는 꺽다리 아줌마
김 씨는 자신을 향한 세상의 낯선 시선도 힘들었다. “어려서부터 외계인 취급을 받았다. ‘장군감’이라고 말하던 동네 어른들을 피하려고 멀리 돌아다녔다. 처음 부천에 이사 와서는 아이들이 집 앞에 몰려와 ‘거인 나오라’고 외쳐댔다.” 4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며 외출도 꺼렸던 김 씨의 마음을 잡게 한 건 어느 날 불쑥 떠오른 어머니의 유언이었다. “‘엄마 아빠 다 죽고 너 혼자 되면 남에게 먼저 베푸는 삶을 살라’고 하셨다. ‘힘들어도 누군가를 부축하고 일으켜야 너도 살 수 있다’면서 말이다.”
기초연금과 메달포상 연금 등으로 매달 50만 원가량을 손에 쥐는 김 씨는 면도날 끼우기, 양말 실밥 제거 등 가내 부업으로 장애인과 소년 소녀 가장 등을 도왔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쌀 같은 구호품 등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고 있다.
“장애인 자원봉사를 나갔는데 몸이 불편해 양말도 혼자 못 신는 분들을 보며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홀몸노인들에게 팥죽을 끓여 주기도 하고 나를 놀리던 꼬마들에게는 과자와 사탕을 건넸다.” 김 씨는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다 최근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통해 관심이 집중된 전 프로농구 코치 박승일 씨 얘기도 꺼냈다. “언젠가 승일이 어머니를 만났는데 몸이 부쩍 마르셨더라. 아들 생각해서 밥이 안 넘어가도 많이 드시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장애 5급인데 3급만 되어도 그에게 큰 힘이 될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이제 김 씨는 주변 사람의 농담도 웃으며 받아넘길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어떤 어르신이 내 신발(330mm)을 보더니 항공모함 같다고 하길래 ‘내 신발 한번 타고 노를 저어 유럽 여행 가시라’고 웃으며 말했다. 큰 과일은 싱겁고 푸석푸석하지 않으냐. 내가 사람은 커도 마음은 솜사탕 같다. 아무 꿈도 없지만 지금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농구 후배들이 많이 도와줬다. 언젠가 농구장 가서 치어리더라도 하고 싶다. 그런데 그러다 코트 무너지면 어떡하지. 호호.” 김 씨가 몇 개 안 남은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그 미소가 보름달처럼 환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7인조 그룹 킹덤, ‘백야’ 쇼케이스 현장
VIVIZ, 신곡 ‘LOVEADE’ 쇼케이스
라잇썸, ‘ALIVE’ 쇼케이스 무대
박찬욱 감독 ‘헤어질 결심’ 칸에 쏟아진 호평
이정재 ‘헌트’, 칸서 쏟아진 7분 기립박수
볼빨간사춘기, 새 앨범 ‘서울’ 공개
그룹 퍼플키스(PURPLE KISS), ‘memeM’ 앨범으로 컴백
그룹 킹덤(KINGDOM), K팝 크로스오버 ‘승천’ 컴백
오마이걸, 정규 2집 ‘Real Love’ 쇼케이스
(여자)아이들, 정규 1집 [I NEVER DIE]로 컴백
위클리, 신곡 ‘Ven para’ 내고 활동 시작
템페스트, 데뷔 앨범 ‘It‘s ME, It’s WE’ 발매
JYP 신인 걸그룹 엔믹스(NMIXX), ‘O.O’ 데뷔
비비지(VIVIZ), ‘BOP BOP!’ 정식 데뷔
그룹 루미너스(LUMINOUS), ‘All eyes down’ Live Stage
다음 동영상
자동재생동의유튜브 채널
VODA 인기 동영상
- 재생03:291올댓트로트이불…울어라 열풍아 Cover by 김미자(원곡 이미자 / Aerophone player)
- 재생22:412야구플러스드디어 문동주가 웃었다! 길었던 부진 탈출
- 재생08:433알토란(궁 셰프 타임) 뜸부기 & 미역으로 만드는 극강의 고소함! 「뜸부기미역국」 비법 공개! MBN 250629 방송
- 재생01:294미운 우리 새끼[7월 6일 예고] “제 아내 잘 부탁드려요” 이상민, 최초 공개하는 아내와 시험관 임신 여부 결과 듣는 날!
- 재생05:015성적을 부탁해 티처스2하루 수면 3시간의 역대급 독기 고등학생, 덕분에 부모님은 베란다로 안방 출입?!
- 재생07:336이제 만나러 갑니다'김일성종합대학' 출신 엘리트에게 쏟아진 러브콜, 대뜸 일본행을 선택하게 된 박진희?
- 재생03:107여왕의 집함은정, 강경헌&이가령에 경고! “ 피붙이가 제일 무서운 거 아시죠? ” [여왕의 집] | KBS 250630 방송
- 재생04:318성적을 부탁해 티처스2"지금 학원을 다녀서 달라질 게 있나...?" 유학을 안보내준 엄마에게 비수를 꽂는 딸
- 재생02:079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어머니가 보육원에 계셨던 건 알고 있지?"신슬기에게 배해선의 사정을 설명해 주는 윤박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 | KBS 250629 방송
- 재생05:4410성적을 부탁해 티처스2티처스 최초 정식T 솔루션 실패?! 솔루션 후, 3등급에서 주저앉은 79점...
- 재생05:041왈스TV산책을 많이 하면 안좋은 이유
- 재생01:032시구왕레드벨벳 조이, 햇살같은 미소가 눈부신 시구!
- 재생02:493나 혼자 산다바선생 만나고 멘탈 털린 안재현🪳 바선생에게 잡아먹힌 정신, MBC 250620 방송
- 재생05:534하트페어링"오늘 밤 새야겠는데ㅎㅎ" 우재와 지원의 신혼미 넘치는 집데이트
- 재생14:555야구플러스한화 선두 질주는 리베라토 어깨에 달려 있다
- 재생02:106여왕의 집"나 낳아준 생모 말이야" 차민지에게 엄마에 대해 묻는 김현욱 [여왕의 집] | KBS 250620 방송
- 재생02:567미지의 서울"내 자리가 없는거 같아" 박보영(미지), 작아진 마음과 커진 두려움 | tvN 250621 방송
- 재생03:018불후의 명곡2 전설을 노래하다정동원 (JD1) - 흥! | KBS 250621 방송
- 재생04:119사랑의 콜센타 세븐스타즈다 같이 손 위로 들고 임찬&정우와 함께 흔들어 재껴 ‘장윤정 트위스트’ TV CHOSUN 250619 방송
- 재생05:2010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폭력으로 분출되던 감정과 마주하는 용기... 아들이 진심으로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