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다수 무시하는 ‘강경파의 나라’

등록 2014.10.14.
“일부 극단적인 주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박영선 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타결되고 이틀 뒤인 2일 의원들에게 e메일로 보낸 원내대표 사퇴서에 이렇게 썼다. 정치권은 이 ‘극단적인 주장’에 휘둘렸고 국회는 지난달 30일 협상 타결 전까지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하고 5개월 동안 공전했다.

당초 세월호 특별법 초안이 마련될 때만 해도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자’는 주장은 조사 활동의 효율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였고 국회 논의 과정에서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수사권과 기소권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조항이 돼 버렸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 내에서는 정의당 당원인 유경근 대변인 등 강경파들이 의사결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게 유가족들의 얘기다.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한 유가족은 “우리가 있을 곳은 광화문도 국회도 아니고 청와대 앞도 아니다”라며 “그분(일부 유가족 대표)들이 강압적으로 해 왔다”고 말했다. 공무원연금 개혁 이슈에서도 한 공무원은 “국가 재원이 고갈되는 상황에서 연금 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런 말을 내뱉는 순간부터 공적(公敵)이 된다”며 “일종의 금기어처럼 돼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하면 우린 다 죽는다” “△△ 결사반대”와 같은 결의에 찬 문구는 스펙트럼의 선두이자 해당 집단의 대표 의견으로 다수 국민에게 인식된다. 그렇다면 스펙트럼의 나머지 부분에 있는 이들의 ‘침묵’은 암묵적 동의를 의미하는 것일까. 드러나지 않고 묵살됐던 다른 의견이 실제로는 다수 의견인 것은 아닐까.

동아일보는 이런 의문에서 출발해 지난달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팀과 함께 ‘목소리 큰 도우미’ 실험을 설계했다. 정답에서 가장 거리가 먼 답안을 제시하면서도 강경하게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도우미 앞에서 실험 참가자들은 애초의 의견을 바꾸거나 토론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써서 제출한 답안과 실험 종료 후 인터뷰에서는 강경파 도우미에게 반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취재팀은 최근 사회적으로 갈등의 핵이 되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 공무원연금 개혁, 쌀 시장 개방 등의 이슈와 관련해 그동안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침묵하던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일부 세월호 유가족과 현직 및 예비 공무원, 쌀 전업 농민의 목소리는 기존에 주목받던 그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집단 내 강경한 주장에 드러내놓고 절충적이거나 현실적인 의견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반복적인 묵살에 의한 무기력감’ ‘자칫하면 집단 안에서 소외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강경파가 침묵하는 다수에게 ‘비겁자’라거나 ‘충분히 문제를 알지 못한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독선의 늪’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곽도영 now@donga.com ·조종엽 기자

“일부 극단적인 주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박영선 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타결되고 이틀 뒤인 2일 의원들에게 e메일로 보낸 원내대표 사퇴서에 이렇게 썼다. 정치권은 이 ‘극단적인 주장’에 휘둘렸고 국회는 지난달 30일 협상 타결 전까지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하고 5개월 동안 공전했다.

당초 세월호 특별법 초안이 마련될 때만 해도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자’는 주장은 조사 활동의 효율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였고 국회 논의 과정에서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수사권과 기소권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조항이 돼 버렸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 내에서는 정의당 당원인 유경근 대변인 등 강경파들이 의사결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게 유가족들의 얘기다.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한 유가족은 “우리가 있을 곳은 광화문도 국회도 아니고 청와대 앞도 아니다”라며 “그분(일부 유가족 대표)들이 강압적으로 해 왔다”고 말했다. 공무원연금 개혁 이슈에서도 한 공무원은 “국가 재원이 고갈되는 상황에서 연금 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런 말을 내뱉는 순간부터 공적(公敵)이 된다”며 “일종의 금기어처럼 돼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하면 우린 다 죽는다” “△△ 결사반대”와 같은 결의에 찬 문구는 스펙트럼의 선두이자 해당 집단의 대표 의견으로 다수 국민에게 인식된다. 그렇다면 스펙트럼의 나머지 부분에 있는 이들의 ‘침묵’은 암묵적 동의를 의미하는 것일까. 드러나지 않고 묵살됐던 다른 의견이 실제로는 다수 의견인 것은 아닐까.

동아일보는 이런 의문에서 출발해 지난달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팀과 함께 ‘목소리 큰 도우미’ 실험을 설계했다. 정답에서 가장 거리가 먼 답안을 제시하면서도 강경하게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도우미 앞에서 실험 참가자들은 애초의 의견을 바꾸거나 토론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써서 제출한 답안과 실험 종료 후 인터뷰에서는 강경파 도우미에게 반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취재팀은 최근 사회적으로 갈등의 핵이 되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 공무원연금 개혁, 쌀 시장 개방 등의 이슈와 관련해 그동안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침묵하던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일부 세월호 유가족과 현직 및 예비 공무원, 쌀 전업 농민의 목소리는 기존에 주목받던 그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집단 내 강경한 주장에 드러내놓고 절충적이거나 현실적인 의견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반복적인 묵살에 의한 무기력감’ ‘자칫하면 집단 안에서 소외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강경파가 침묵하는 다수에게 ‘비겁자’라거나 ‘충분히 문제를 알지 못한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독선의 늪’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곽도영 now@donga.com ·조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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