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서울대공원 토종동물번식센터…‘쉿! 동물원은 지금 핑크빛’
등록 2015.02.23.“동물원 ‘러브호텔’ 한번 구경하실래요?”(서울대공원 관계자)
10일 오후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에서 한 직원의 제의를 받고 걸음을 옮겼다. 들소 우리 뒤편으로 향하자 ‘토종동물번식센터’(번식센터)라는 간판을 단 초라한 통나무 대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러브호텔이 이 모양이야’라는 푸념도 잠시. 문이 열리는 순간 동물 배설물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와 정체 모를 ‘교성’이 코와 귀를 자극했다. 평소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이곳은 바로 동물이 짝짓기를 하는 장소다. 2월은 야생동물 대부분의 발정기가 시작되는 때. 아직 바깥 날씨는 쌀쌀하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한여름처럼 후끈했다.
서울대공원에 번식센터가 생긴 건 1999년 8월. 관람객이 쳐다보는 방사장에서 공개적인 짝짓기를 거부하는 동물이 등장하면서 만들어졌다. 면적은 약 2566m². 일명 러브호텔로 불리는 이곳에선 현재 고양잇과 맹수, 남생이, 금개구리 등 7종 81마리의 야생동물이 ‘종 복원’이라는 사명 완수에 매진하고 있다.
물론 공간이 생겼다고 늘 번식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요즘 사육사들의 애를 가장 많이 태우는 동물은 올해로 14년(수컷), 13년(암컷) 된 설표(雪豹) 부부다. 히말라야 산맥이 고향으로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덕분에 번식센터에서 가장 큰 방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2012년 5월 처음 얻은 새끼 1마리를 이틀 만에 잃은 뒤로 아무 소식이 없다. 지난달 말 카메라에 찍힌 설표의 교미 동영상을 분석한 어경연 서울대공원 동물연구실장은 “교미는 정말 열심히 하는데 새끼를 못 낳는다”며 “사람으로 치면 둘 다 ‘환갑’을 넘겼는데 이번 겨울이 지나면 정말 가망이 없을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설표 옆방에 자리한 스라소니 부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스라소니는 남북 교류가 활발하던 2005년 평양 중앙동물원에서 이사 온 개마고원 출신이다. 그나마 설표는 교미라도 하지만 스라소니 암수는 이번 겨울부터 아예 ‘섹스리스’ 신세다. 같은 방에 있어도 하릴없이 노란 눈만 껌뻑이는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서울대공원은 이들의 번식을 돕기 위해 시끄러운 코요테 우리까지 옮기는 등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동물원 관계자들은 “남북 관계가 나빠지면서 토종 스라소니를 다시 들여올 길이 막막해 더 걱정된다”고 했다.
서울대공원 사육사들에게 함박웃음을 주는 동물도 있다. 바로 토종 붉은여우(환경부지정 멸종위기 1급)와 삵(〃 2급)이다. 붉은여우 역시 실패를 거듭했지만 ‘번식 상자’까지 만들어 준 노력 덕분에 2009년 새끼 3마리를 낳았고 매년 증식에 성공했다. 삵도 매년 2∼6마리의 새끼를 낳고 있다. 이렇게 대공원에서 태어난 여우와 삵은 경북 소백산 국립공원, 경기 시화호 등지에 방사돼 토종동물 생태 복원 성공의 상징이 됐다.
어 실장은 “동물원 번식센터는 훼손된 우리 생태계 복원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며 “매년 번식센터의 겨울이 뜨거워야 더 많은 동물이 우리 산과 들을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쉿! 동물원은 지금 핑크빛… 서울대공원 ‘러브호텔’ 토종동물번식센터
“동물원 ‘러브호텔’ 한번 구경하실래요?”(서울대공원 관계자)
10일 오후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에서 한 직원의 제의를 받고 걸음을 옮겼다. 들소 우리 뒤편으로 향하자 ‘토종동물번식센터’(번식센터)라는 간판을 단 초라한 통나무 대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러브호텔이 이 모양이야’라는 푸념도 잠시. 문이 열리는 순간 동물 배설물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와 정체 모를 ‘교성’이 코와 귀를 자극했다. 평소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이곳은 바로 동물이 짝짓기를 하는 장소다. 2월은 야생동물 대부분의 발정기가 시작되는 때. 아직 바깥 날씨는 쌀쌀하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한여름처럼 후끈했다.
서울대공원에 번식센터가 생긴 건 1999년 8월. 관람객이 쳐다보는 방사장에서 공개적인 짝짓기를 거부하는 동물이 등장하면서 만들어졌다. 면적은 약 2566m². 일명 러브호텔로 불리는 이곳에선 현재 고양잇과 맹수, 남생이, 금개구리 등 7종 81마리의 야생동물이 ‘종 복원’이라는 사명 완수에 매진하고 있다.
물론 공간이 생겼다고 늘 번식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요즘 사육사들의 애를 가장 많이 태우는 동물은 올해로 14년(수컷), 13년(암컷) 된 설표(雪豹) 부부다. 히말라야 산맥이 고향으로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덕분에 번식센터에서 가장 큰 방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2012년 5월 처음 얻은 새끼 1마리를 이틀 만에 잃은 뒤로 아무 소식이 없다. 지난달 말 카메라에 찍힌 설표의 교미 동영상을 분석한 어경연 서울대공원 동물연구실장은 “교미는 정말 열심히 하는데 새끼를 못 낳는다”며 “사람으로 치면 둘 다 ‘환갑’을 넘겼는데 이번 겨울이 지나면 정말 가망이 없을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설표 옆방에 자리한 스라소니 부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스라소니는 남북 교류가 활발하던 2005년 평양 중앙동물원에서 이사 온 개마고원 출신이다. 그나마 설표는 교미라도 하지만 스라소니 암수는 이번 겨울부터 아예 ‘섹스리스’ 신세다. 같은 방에 있어도 하릴없이 노란 눈만 껌뻑이는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서울대공원은 이들의 번식을 돕기 위해 시끄러운 코요테 우리까지 옮기는 등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동물원 관계자들은 “남북 관계가 나빠지면서 토종 스라소니를 다시 들여올 길이 막막해 더 걱정된다”고 했다.
서울대공원 사육사들에게 함박웃음을 주는 동물도 있다. 바로 토종 붉은여우(환경부지정 멸종위기 1급)와 삵(〃 2급)이다. 붉은여우 역시 실패를 거듭했지만 ‘번식 상자’까지 만들어 준 노력 덕분에 2009년 새끼 3마리를 낳았고 매년 증식에 성공했다. 삵도 매년 2∼6마리의 새끼를 낳고 있다. 이렇게 대공원에서 태어난 여우와 삵은 경북 소백산 국립공원, 경기 시화호 등지에 방사돼 토종동물 생태 복원 성공의 상징이 됐다.
어 실장은 “동물원 번식센터는 훼손된 우리 생태계 복원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며 “매년 번식센터의 겨울이 뜨거워야 더 많은 동물이 우리 산과 들을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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