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명 탑승한 中유람선 침몰…강풍에 휘말려 1분만에 전복

등록 2015.06.03.
‘중국판 세월호’ 458명 탑승 中유람선 침몰… 선장 먼저 탈출

지나가던 배가 발견해 뒤늦게 신고… 효도관광 나선 50~80대 다수 참변

리커창, 잠수부 투입 등 구조 지휘… 승선자 명단에 한국인은 없어

《 중국 중부를 가로지르는 창장 강(長江·양쯔 강) 중류에서 승객과 승무원 458명을 태운 대형 호화 유람선 ‘둥팡즈싱(東方之星·동방의 별)’이 1일 밤 폭우와 돌풍으로 침몰해 40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중국 당국은 1000여 명의 군대를 동원해 구조 및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2일까지 구조한 인원은 15명에 그쳤다. 침몰 직후 선박을 탈출해 헤엄쳐 나온 선장과 기관장이 중국 당국에 체포되면서 ‘세월호 선장’처럼 승객 구조 임무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

1일 밤 창장 강(長江·양쯔 강)에서 발생한 호화 유람선 전복 사고는 밤중에 폭우와 강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발생해 구조가 늦어지면서 인명 피해가 커졌다. 이 수역에는 최근 20년간 이번 같은 대형 토네이도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기상당국이 밝혔다. 중국은 창장 강을 지나는 선박에 조기를 달도록 했다.

1일 오후 9시 28분경 후베이(湖北) 성 젠리(監利) 현 부근의 창장 강. 장쑤(江蘇) 성 난징(南京)을 출발해 충칭(重慶)으로 가던 호화 유람선 ‘둥팡즈싱(東方之星·동방의 별)’ 주위에 시간당 97mm의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초속 32m가 넘는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쳤다. 그 순간 선박이 옆으로 기울며 뒤집어졌다. 전복되기까지 1, 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많은 비가 내린 데다 밤늦은 시간이라 승객 대부분은 객실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배에는 위성전화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도 있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사고는 유람선 전복 후 30분가량이 지난 오후 10시경 부근을 지나던 다른 선박이 강물에 떠다니는 시신과 부유물을 보고 신고해 알려졌다. 발견 당시 유람선은 이미 뒤집어진 채로 깊이 15m가량의 강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사고 선박은 길이 76.5m, 폭 11m로 1994년 2월 건조됐다. 1, 2, 3등 객실에 542명이 탈 수 있다. 사고 당시에는 승객 406명, 승무원 47명, 여행사 가이드 5명을 합쳐 458명이 승선 중이었다. 승객들 중 다수는 상하이(上海) 모 여행사가 조직한 ‘시양훙(夕陽紅)’ 노년여행단 사람들로 50∼80대 연령층이다. 이날 발표된 승선자 명단에 한국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2일 사고 수역에는 군과 경찰 1000여 명이 투입됐다. 공군이 헬기 5대를 보내고 해군은 140여 명의 잠수 병력을 급파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사고 직후 마카이(馬凱) 부총리 등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2일 오전 85세 여성이 한 명 구조되기도 했으나 구조 및 탈출 인원은 15명에 그쳤고 5명의 시신이 확인됐다. 사고 수역의 물살이 빠른 데다 강물이 혼탁해 잠수부들이 물체를 알아보기 어렵고, 선박 구조가 복잡한 것도 구조대원이나 잠수부의 선체 진입을 어렵게 만들었다.

구명조끼에 매달려 밤새 표류하다 뭍에 도착해 살아남은 여행사 가이드 장후이 씨(43)는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고 느끼자마자 45도로 기울었고 옆에 있던 지인에게 ‘위험에 빠진 것 같다’고 말하자마자 구명조끼를 입을 새도 없이 뒤집혀 버렸다”며 “주변에서 10여 명이 살려 달라고 외치는 것을 봤지만, 5분 뒤 서너 명의 목소리만 들렸고 그마저 결국 사라졌다”고 말했다.

유람선에 타고 있던 7명은 헤엄쳐 나와 목숨을 건졌다. 이들 중에는 선장 장순원(張順文) 씨와 기관장 양중취안(楊忠權) 씨도 포함됐다. 이들은 뭍으로 나온 뒤 2일 오전 4시경 휴대전화를 빌려 회사에 사고 상황을 알렸다고 관영 매체인 펑파이(澎湃)신문이 전했다. 이들이 사고 직후 곧바로 헤엄쳐 구조되면서 한국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과 선원처럼 승객 대피 조치를 하지 않고 자신들만 탈출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펑파이신문은 “선장과 기관장이 조사를 받기 위해 공안 당국에 억류됐다”고 전했다. 사고 선박을 소유한 ‘충칭둥팡룬촨(重慶東方輪船)’은 1967년 설립된 관영 회사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판 세월호’ 458명 탑승 中유람선 침몰… 선장 먼저 탈출

지나가던 배가 발견해 뒤늦게 신고… 효도관광 나선 50~80대 다수 참변

리커창, 잠수부 투입 등 구조 지휘… 승선자 명단에 한국인은 없어

《 중국 중부를 가로지르는 창장 강(長江·양쯔 강) 중류에서 승객과 승무원 458명을 태운 대형 호화 유람선 ‘둥팡즈싱(東方之星·동방의 별)’이 1일 밤 폭우와 돌풍으로 침몰해 40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중국 당국은 1000여 명의 군대를 동원해 구조 및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2일까지 구조한 인원은 15명에 그쳤다. 침몰 직후 선박을 탈출해 헤엄쳐 나온 선장과 기관장이 중국 당국에 체포되면서 ‘세월호 선장’처럼 승객 구조 임무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

1일 밤 창장 강(長江·양쯔 강)에서 발생한 호화 유람선 전복 사고는 밤중에 폭우와 강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발생해 구조가 늦어지면서 인명 피해가 커졌다. 이 수역에는 최근 20년간 이번 같은 대형 토네이도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기상당국이 밝혔다. 중국은 창장 강을 지나는 선박에 조기를 달도록 했다.

1일 오후 9시 28분경 후베이(湖北) 성 젠리(監利) 현 부근의 창장 강. 장쑤(江蘇) 성 난징(南京)을 출발해 충칭(重慶)으로 가던 호화 유람선 ‘둥팡즈싱(東方之星·동방의 별)’ 주위에 시간당 97mm의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초속 32m가 넘는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쳤다. 그 순간 선박이 옆으로 기울며 뒤집어졌다. 전복되기까지 1, 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많은 비가 내린 데다 밤늦은 시간이라 승객 대부분은 객실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배에는 위성전화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도 있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사고는 유람선 전복 후 30분가량이 지난 오후 10시경 부근을 지나던 다른 선박이 강물에 떠다니는 시신과 부유물을 보고 신고해 알려졌다. 발견 당시 유람선은 이미 뒤집어진 채로 깊이 15m가량의 강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사고 선박은 길이 76.5m, 폭 11m로 1994년 2월 건조됐다. 1, 2, 3등 객실에 542명이 탈 수 있다. 사고 당시에는 승객 406명, 승무원 47명, 여행사 가이드 5명을 합쳐 458명이 승선 중이었다. 승객들 중 다수는 상하이(上海) 모 여행사가 조직한 ‘시양훙(夕陽紅)’ 노년여행단 사람들로 50∼80대 연령층이다. 이날 발표된 승선자 명단에 한국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2일 사고 수역에는 군과 경찰 1000여 명이 투입됐다. 공군이 헬기 5대를 보내고 해군은 140여 명의 잠수 병력을 급파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사고 직후 마카이(馬凱) 부총리 등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2일 오전 85세 여성이 한 명 구조되기도 했으나 구조 및 탈출 인원은 15명에 그쳤고 5명의 시신이 확인됐다. 사고 수역의 물살이 빠른 데다 강물이 혼탁해 잠수부들이 물체를 알아보기 어렵고, 선박 구조가 복잡한 것도 구조대원이나 잠수부의 선체 진입을 어렵게 만들었다.

구명조끼에 매달려 밤새 표류하다 뭍에 도착해 살아남은 여행사 가이드 장후이 씨(43)는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고 느끼자마자 45도로 기울었고 옆에 있던 지인에게 ‘위험에 빠진 것 같다’고 말하자마자 구명조끼를 입을 새도 없이 뒤집혀 버렸다”며 “주변에서 10여 명이 살려 달라고 외치는 것을 봤지만, 5분 뒤 서너 명의 목소리만 들렸고 그마저 결국 사라졌다”고 말했다.

유람선에 타고 있던 7명은 헤엄쳐 나와 목숨을 건졌다. 이들 중에는 선장 장순원(張順文) 씨와 기관장 양중취안(楊忠權) 씨도 포함됐다. 이들은 뭍으로 나온 뒤 2일 오전 4시경 휴대전화를 빌려 회사에 사고 상황을 알렸다고 관영 매체인 펑파이(澎湃)신문이 전했다. 이들이 사고 직후 곧바로 헤엄쳐 구조되면서 한국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과 선원처럼 승객 대피 조치를 하지 않고 자신들만 탈출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펑파이신문은 “선장과 기관장이 조사를 받기 위해 공안 당국에 억류됐다”고 전했다. 사고 선박을 소유한 ‘충칭둥팡룬촨(重慶東方輪船)’은 1967년 설립된 관영 회사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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