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덕혜옹주 유품 7점, 오늘부터 일반에 특별공개

등록 2015.08.25.
돌아온 덕혜옹주 유품 7점, 오늘부터 일반에 특별공개

고종의 고명딸로 1925년 강제로 일본에 건너갔던 덕혜옹주(1912∼1989)의 유품 가운데 지난 6월 고국에 돌아온 복식이 특별 공개된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지난 6월 24일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이사장 겸 박물관장 오누마 스나오)으로부터 기증받은 덕혜옹주 유품 7점을 오늘(25일)부터 내달 6일까지 ‘대한제국과 황실’ 전시실에서 선보인다고 밝혔다.

이번에 돌아온 유품들은 덕혜옹주가 일본에 머물 때 남긴 조선왕실 복식 중 일부로 아동용 당의(조선시대 여성들이 입었던 예복)와 스란치마, 돌띠 저고리와 풍차바지, 속바지, 어른용 반회장 저고리(깃이나 고름 등에 다른 색 천을 대어 지은 의복)와 치마 등 총 7점의 복식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측은 “이들 유품은 덕혜옹주가 일본에 머물던 당시 남긴 조선왕실 복식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당대 최고 수준의 왕실 복식 유물로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 복식들은 소 다케유키가 1955년 덕혜옹주와 이혼하면서 영친왕 부부에게 돌려보낸 것으로, 이듬해 영친왕 부부가 문화학원의 전신인 문화여자단기대학 학장이었던 도쿠가와 요시치카에게 기증하면서 일본에 남았다. 이후 1979년 개관한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이 소장해 왔다.

한편, 덕혜옹주는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황제인 고종이 환갑을 맞은 1912년 낳았다. 어머니가 정실이 아닌 까닭에 공주 대신 옹주라는 호칭이 붙었고 일제강점기인 1925년, 14살의 나이에 강제로 일본 유학을 떠나 20세에 일본인 소 타케유키와 정략결혼을 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나타나는 조발성 치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이혼을 맞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조국을 떠난 지 38년 만인 1962년 환국해 창덕궁 낙선재의 수강재에서 머물다 1989년 7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동아닷컴 영상뉴스팀

돌아온 덕혜옹주 유품 7점, 오늘부터 일반에 특별공개

고종의 고명딸로 1925년 강제로 일본에 건너갔던 덕혜옹주(1912∼1989)의 유품 가운데 지난 6월 고국에 돌아온 복식이 특별 공개된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지난 6월 24일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이사장 겸 박물관장 오누마 스나오)으로부터 기증받은 덕혜옹주 유품 7점을 오늘(25일)부터 내달 6일까지 ‘대한제국과 황실’ 전시실에서 선보인다고 밝혔다.

이번에 돌아온 유품들은 덕혜옹주가 일본에 머물 때 남긴 조선왕실 복식 중 일부로 아동용 당의(조선시대 여성들이 입었던 예복)와 스란치마, 돌띠 저고리와 풍차바지, 속바지, 어른용 반회장 저고리(깃이나 고름 등에 다른 색 천을 대어 지은 의복)와 치마 등 총 7점의 복식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측은 “이들 유품은 덕혜옹주가 일본에 머물던 당시 남긴 조선왕실 복식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당대 최고 수준의 왕실 복식 유물로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 복식들은 소 다케유키가 1955년 덕혜옹주와 이혼하면서 영친왕 부부에게 돌려보낸 것으로, 이듬해 영친왕 부부가 문화학원의 전신인 문화여자단기대학 학장이었던 도쿠가와 요시치카에게 기증하면서 일본에 남았다. 이후 1979년 개관한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이 소장해 왔다.

한편, 덕혜옹주는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황제인 고종이 환갑을 맞은 1912년 낳았다. 어머니가 정실이 아닌 까닭에 공주 대신 옹주라는 호칭이 붙었고 일제강점기인 1925년, 14살의 나이에 강제로 일본 유학을 떠나 20세에 일본인 소 타케유키와 정략결혼을 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나타나는 조발성 치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이혼을 맞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조국을 떠난 지 38년 만인 1962년 환국해 창덕궁 낙선재의 수강재에서 머물다 1989년 7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동아닷컴 영상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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