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 이후]위안부 피해자 납득할수 있어야… 국장급 채널로는 한계

등록 2015.11.04.
“정상이 만나 합의를 못했다고 판이 깨지면 안 된다. 쉽게 풀릴 문제였다면 지금까지 왔겠나. 국장급 협상의 격을 높여 그동안 못 낸 속도를 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일 만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논의한 것에 대해 주일 대사를 지낸 전 고위급 외교관은 이렇게 말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도 “외교에서 한쪽이 100% 양보하기는 어렵다. 정상이 정치적인 결단을 내려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정상이 차분하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논의했다는 것 자체가 큰 진전이라고 유 전 장관은 평가했다. 유흥수 주일 대사는 2일 본보 기자와 만나 “그동안 한일 간에 아무것도 안 된다고 말해왔던 것보다는 상황이 낫지 않으냐”며 정상회담 결과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이 일본군 위안부 해법을 찾자고 원칙에 합의한 것만 해도 성과라는 평가다. 하지만 각론에서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 바뀌지 않은 일본의 태도

아베 총리는 2일 귀국 직후 방송에 나와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관방부장관은 “일본 입장은 바뀐 게 없다는 것이 입장”이라고도 했다. 일본의 말대로라면 법적 부분은 손대지 않은 채 외교적, 도의적인 선에서 매듭짓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런 일본의 원칙 고수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 피해자들은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정부 예산이 들어간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요구해왔다. 한국 정부도 “국민과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준이 돼야 한다”고 밝혀왔다. 2012년 피해자에게 돈을 지급하되 배상이 아닌 사죄의 마음을 담은 인도적 지원으로 하자는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당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의 방안이 좌초한 것도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군대 위안부 문제가) 장래 세대에 장해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했다”는 아베 총리의 이날 발언에도 한국과 다른 인식이 담겨 있다. 이 말은 ‘이번 협상이 최종적인 것이며, 타결된다면 더이상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는 요구를 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한 번도 이번이 최종 협상이라고 밝힌 적이 없다.

○ 한국과 다른 일본 시간표와 의사결정 구조

내각제 특성상 일본 관료는 총리에 대한 접근이 수월하다. 한일 국장급 위안부 협의의 일본 대표인 이시카네 기미히로(石兼公博)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아베 총리에게 직접 보고하고 지시를 받을 수 있다. 반면 한국 대표(외교부 동북아국장)의 보고는 차관보-차관-장관-청와대-대통령을 거치는 복잡한 구조다. 일본이 ‘한국 쪽은 실권이 없다’고 평가 절하하는 배경이다. 이번 정상회담 직전인 10월 중순 위안부 협의 일본 측 책임자가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국장에서 이시카네 국장으로 교체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협의 채널을 격상하거나 채널을 다양화하는 게 낫다는 제안도 나온다.

선남국 외교부 부대변인은 3일 정례브리핑에서 위안부 후속협의 채널에 대해 “국장급 협의가 중심이 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장급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도 많다. 2014년 3월부터 총 9차례 국장급 협의가 이어졌지만 일본이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 적이 없다고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최근 거론된 아시아여성기금 잔여액에 일본 정부 예산을 합친 기금 조성과 정부의 책임 부분 인정 등의 방안도 별도 채널로 타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외교가에서는 한일이 그동안 국장급 이외의 별도 채널을 가동해왔으나 강제징용 관련 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한국에 당했다”고 생각한 일본이 이 채널을 와해시켰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전 인터뷰에서 ‘연내 위안부 문제 타결을 바란다’는 희망을 밝혔지만 일본의 시계는 한국과 다르게 도는 것도 걸림돌이다. 단임제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넘긴 박 대통령과 달리 아베 총리는 2018년까지 집권이 보장돼 여유가 있다. 또 내년 1월 일본의 정기국회가 열리면 보수 정치인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3월 역사 교과서, 4월 야스쿠니신사 춘계대예제 참배 등 갈등 사이클도 다시 가동된다.

조숭호 shcho@donga.com ·우경임 기자

“정상이 만나 합의를 못했다고 판이 깨지면 안 된다. 쉽게 풀릴 문제였다면 지금까지 왔겠나. 국장급 협상의 격을 높여 그동안 못 낸 속도를 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일 만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논의한 것에 대해 주일 대사를 지낸 전 고위급 외교관은 이렇게 말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도 “외교에서 한쪽이 100% 양보하기는 어렵다. 정상이 정치적인 결단을 내려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정상이 차분하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논의했다는 것 자체가 큰 진전이라고 유 전 장관은 평가했다. 유흥수 주일 대사는 2일 본보 기자와 만나 “그동안 한일 간에 아무것도 안 된다고 말해왔던 것보다는 상황이 낫지 않으냐”며 정상회담 결과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이 일본군 위안부 해법을 찾자고 원칙에 합의한 것만 해도 성과라는 평가다. 하지만 각론에서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 바뀌지 않은 일본의 태도

아베 총리는 2일 귀국 직후 방송에 나와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관방부장관은 “일본 입장은 바뀐 게 없다는 것이 입장”이라고도 했다. 일본의 말대로라면 법적 부분은 손대지 않은 채 외교적, 도의적인 선에서 매듭짓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런 일본의 원칙 고수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 피해자들은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정부 예산이 들어간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요구해왔다. 한국 정부도 “국민과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준이 돼야 한다”고 밝혀왔다. 2012년 피해자에게 돈을 지급하되 배상이 아닌 사죄의 마음을 담은 인도적 지원으로 하자는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당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의 방안이 좌초한 것도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군대 위안부 문제가) 장래 세대에 장해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했다”는 아베 총리의 이날 발언에도 한국과 다른 인식이 담겨 있다. 이 말은 ‘이번 협상이 최종적인 것이며, 타결된다면 더이상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는 요구를 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한 번도 이번이 최종 협상이라고 밝힌 적이 없다.

○ 한국과 다른 일본 시간표와 의사결정 구조

내각제 특성상 일본 관료는 총리에 대한 접근이 수월하다. 한일 국장급 위안부 협의의 일본 대표인 이시카네 기미히로(石兼公博)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아베 총리에게 직접 보고하고 지시를 받을 수 있다. 반면 한국 대표(외교부 동북아국장)의 보고는 차관보-차관-장관-청와대-대통령을 거치는 복잡한 구조다. 일본이 ‘한국 쪽은 실권이 없다’고 평가 절하하는 배경이다. 이번 정상회담 직전인 10월 중순 위안부 협의 일본 측 책임자가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국장에서 이시카네 국장으로 교체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협의 채널을 격상하거나 채널을 다양화하는 게 낫다는 제안도 나온다.

선남국 외교부 부대변인은 3일 정례브리핑에서 위안부 후속협의 채널에 대해 “국장급 협의가 중심이 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장급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도 많다. 2014년 3월부터 총 9차례 국장급 협의가 이어졌지만 일본이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 적이 없다고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최근 거론된 아시아여성기금 잔여액에 일본 정부 예산을 합친 기금 조성과 정부의 책임 부분 인정 등의 방안도 별도 채널로 타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외교가에서는 한일이 그동안 국장급 이외의 별도 채널을 가동해왔으나 강제징용 관련 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한국에 당했다”고 생각한 일본이 이 채널을 와해시켰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전 인터뷰에서 ‘연내 위안부 문제 타결을 바란다’는 희망을 밝혔지만 일본의 시계는 한국과 다르게 도는 것도 걸림돌이다. 단임제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넘긴 박 대통령과 달리 아베 총리는 2018년까지 집권이 보장돼 여유가 있다. 또 내년 1월 일본의 정기국회가 열리면 보수 정치인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3월 역사 교과서, 4월 야스쿠니신사 춘계대예제 참배 등 갈등 사이클도 다시 가동된다.

조숭호 shcho@donga.com ·우경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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