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노예’ 北해외노동자… ‘중동지역 극과 극 생활’

등록 2016.12.26.
최근 카타르 도하 인근의 한국 식당에 셔츠를 말끔히 차려 입은 북한인 2명이 들어왔다. 2600여 명의 카타르 주재 북한 노동자를 관리·감독하는 간부들이었다. 생일 파티를 한다며 한국 식당을 찾은 두 사람은 아침부터 삼겹살 5인분에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소주와 맥주 등 610리얄(약 21만 원)어치의 생일상을 즐겼다. 카타르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의 한 달 치 월급(150∼200달러)을 단둘이 한 끼에 털어 넣은 이들은 숙소에서 먹을 김치도 따로 싸 갔다.

○ “건설사 사장 3년 하면 100만 달러 챙겨”

 카타르의 북한 노동자는 북한 건설사 사장, 당 간부, 국가안전보위부 간부가 삼각 편대로 관리·감독한다. 북한 당국이 건설사 사장의 빈번한 자금 횡령을 막기 위해 감시 차원에서 당과 보위부 간부를 딸려 보내는 것이다. 셋 다 소속은 다르지만 노동자의 피를 빨아 배를 채우려는 데엔 한통속이다.

 북한에서 파견된 간부들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만 달러를 넘어 초고가 물가로 악명 높은 카타르에서 중동 부자 부럽지 않게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북한 노동자가 카타르 회사로부터 받는 급여를 대신 받아 평양에 충성 자금으로 보내고, 급여의 20% 남짓을 노동자에게 나눠 주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상당액을 빼돌린다는 것이다. 북한 노동자 사이에선 북한 건설사 사장을 3년만 하면 100만 달러(약 12억5000만 원)를 챙긴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북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거세지자 김정은은 올해 해외 공사 현장에 ‘노동자 임금을 떼먹지 말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쿠웨이트에 파견됐다가 귀국하던 한 노동자가 올해 1월 중간 기착지인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도망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베이징에서 붙잡혀 북송된 이 노동자는 “간부들이 하도 임금을 떼먹어 화가 나 도망쳤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노동자 임금을 착취하지 않으면 김정은 정권에 바칠 충성 자금 목표액을 채울 수 없어 김정은의 특별 지시도 무용지물이 됐다.

 간부들은 ‘벼룩의 간’까지도 빼먹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악랄하다. 월급 150∼200달러를 받는 노동자들에게 좋은 보직을 대가로 상습적으로 뇌물을 받아 챙긴다. 노동 강도가 상대적으로 덜한 데다 뙤약볕이 아닌 실내에서 작업해 노동자들이 선호하는 밀주 제조책이 되려면 간부에게 3000달러를 뇌물로 바치기로 약속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유일한 휴일인 금요일에 외출해도 고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하지만 간부들은 도하의 유명 호텔 나이트클럽에도 자주 드나든다.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이슬람 문화 속에서 1인분에 80리얄(약 2만7000원)이나 하는 삼겹살을 매주 한 번씩 먹으러 온다고 한다. 북한 간부가 자주 찾는 한국식당 관계자는 “대부분 퉁퉁하게 살이 붙어 있고 말끔한 셔츠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와 한눈에 간부라는 걸 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숟가락 삼켜 자살 기도하는 노동자

 호화생활에 젖은 간부와 달리 ‘21세기 노예’로 살아가는 노동자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도하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김모 씨는 지난해 6월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에 중노동을 견디다 못해 16cm 길이의 숟가락을 삼켰다. 그는 도하의 대형 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장시간 수술 끝에 간신히 살아나 강제 북송됐다. 카타르의 북한 건설사 5곳 중 하나인 1건설(수도건설) 소속 나모 씨는 2014년 7월 도하 중심가인 시티센터의 고층 빌딩 공사 현장에서 대낮에 투신자살했다. 그의 동료는 “나 씨가 고된 노동 환경 때문에 평소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온갖 고난을 견뎌 온 군인들도 해외 건설 현장에 파견된 후에는 열악한 처지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한다. 민간인으로 신분을 위장한 군인들로 구성된 남강2건설에서 일해 온 신모 씨는 지난해 5월 작업복 차림으로 도망갔다가 4일 만에 수색대에 붙잡혀 강제 북송됐다. 그는 중노동에 윗사람의 구타까지 이어지자 충동적으로 탈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군인 한모 씨는 지난해 2월 사막 황무지에 컨테이너 가건물로 지어진 숙소에서 몰래 빠져나와 도망쳤지만 보위부 요원에게 며칠 만에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됐다.

○ 중동 부호(富豪)에게 인기 높은 북한 화가

[ㅊ]  북한 노동자들 가운데 기술이 뛰어난 극소수는 이른바 ‘청부업’을 한다. 주로 건설기술사나 벽화를 그리는 화가들이다. 이들은 집단 숙소생활을 하는 일반 노동자와 달리 따로 나와 살면서 독자적으로 일하는 대신 일정 금액을 간부들에게 꼬박꼬박 뇌물로 상납해야 한다. 한 청부업자는 카타르 항공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여성 승무원과 만나 연애를 하기도 했다.

 북한 노동자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인 청부업은 화가다. 이들은 손재주가 좋아 대형 벽화를 좋아하는 카타르 부호들에게 인기가 높다. 대개 m²당 2500리얄(약 83만 원)가량을 받기에 벽화 크기에 따라 손쉽게 수백만∼수천만 원을 벌 수 있다. 1년 반 만에 30만 달러를 벌어 귀국했다는 ‘성공담’이 북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도하의 부촌에 위치한 대저택 3층에 북한 화가가 그렸다는 벽화를 직접 확인했다. 가로 8m, 세로 3m 크기에 폭포를 그린 수묵화였다. 북한 화가와 종종 교류했다는 현지 교민은 “북한 화가가 폭포 그림으로 2000만 원 정도를 벌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8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탈북 소식이 알려지자 청부업을 전면 금지했지만 자금 사정이 열악해 조만간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도하=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최근 카타르 도하 인근의 한국 식당에 셔츠를 말끔히 차려 입은 북한인 2명이 들어왔다. 2600여 명의 카타르 주재 북한 노동자를 관리·감독하는 간부들이었다. 생일 파티를 한다며 한국 식당을 찾은 두 사람은 아침부터 삼겹살 5인분에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소주와 맥주 등 610리얄(약 21만 원)어치의 생일상을 즐겼다. 카타르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의 한 달 치 월급(150∼200달러)을 단둘이 한 끼에 털어 넣은 이들은 숙소에서 먹을 김치도 따로 싸 갔다.

○ “건설사 사장 3년 하면 100만 달러 챙겨”

 카타르의 북한 노동자는 북한 건설사 사장, 당 간부, 국가안전보위부 간부가 삼각 편대로 관리·감독한다. 북한 당국이 건설사 사장의 빈번한 자금 횡령을 막기 위해 감시 차원에서 당과 보위부 간부를 딸려 보내는 것이다. 셋 다 소속은 다르지만 노동자의 피를 빨아 배를 채우려는 데엔 한통속이다.

 북한에서 파견된 간부들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만 달러를 넘어 초고가 물가로 악명 높은 카타르에서 중동 부자 부럽지 않게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북한 노동자가 카타르 회사로부터 받는 급여를 대신 받아 평양에 충성 자금으로 보내고, 급여의 20% 남짓을 노동자에게 나눠 주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상당액을 빼돌린다는 것이다. 북한 노동자 사이에선 북한 건설사 사장을 3년만 하면 100만 달러(약 12억5000만 원)를 챙긴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북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거세지자 김정은은 올해 해외 공사 현장에 ‘노동자 임금을 떼먹지 말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쿠웨이트에 파견됐다가 귀국하던 한 노동자가 올해 1월 중간 기착지인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도망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베이징에서 붙잡혀 북송된 이 노동자는 “간부들이 하도 임금을 떼먹어 화가 나 도망쳤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노동자 임금을 착취하지 않으면 김정은 정권에 바칠 충성 자금 목표액을 채울 수 없어 김정은의 특별 지시도 무용지물이 됐다.

 간부들은 ‘벼룩의 간’까지도 빼먹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악랄하다. 월급 150∼200달러를 받는 노동자들에게 좋은 보직을 대가로 상습적으로 뇌물을 받아 챙긴다. 노동 강도가 상대적으로 덜한 데다 뙤약볕이 아닌 실내에서 작업해 노동자들이 선호하는 밀주 제조책이 되려면 간부에게 3000달러를 뇌물로 바치기로 약속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유일한 휴일인 금요일에 외출해도 고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하지만 간부들은 도하의 유명 호텔 나이트클럽에도 자주 드나든다.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이슬람 문화 속에서 1인분에 80리얄(약 2만7000원)이나 하는 삼겹살을 매주 한 번씩 먹으러 온다고 한다. 북한 간부가 자주 찾는 한국식당 관계자는 “대부분 퉁퉁하게 살이 붙어 있고 말끔한 셔츠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와 한눈에 간부라는 걸 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숟가락 삼켜 자살 기도하는 노동자

 호화생활에 젖은 간부와 달리 ‘21세기 노예’로 살아가는 노동자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도하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김모 씨는 지난해 6월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에 중노동을 견디다 못해 16cm 길이의 숟가락을 삼켰다. 그는 도하의 대형 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장시간 수술 끝에 간신히 살아나 강제 북송됐다. 카타르의 북한 건설사 5곳 중 하나인 1건설(수도건설) 소속 나모 씨는 2014년 7월 도하 중심가인 시티센터의 고층 빌딩 공사 현장에서 대낮에 투신자살했다. 그의 동료는 “나 씨가 고된 노동 환경 때문에 평소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온갖 고난을 견뎌 온 군인들도 해외 건설 현장에 파견된 후에는 열악한 처지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한다. 민간인으로 신분을 위장한 군인들로 구성된 남강2건설에서 일해 온 신모 씨는 지난해 5월 작업복 차림으로 도망갔다가 4일 만에 수색대에 붙잡혀 강제 북송됐다. 그는 중노동에 윗사람의 구타까지 이어지자 충동적으로 탈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군인 한모 씨는 지난해 2월 사막 황무지에 컨테이너 가건물로 지어진 숙소에서 몰래 빠져나와 도망쳤지만 보위부 요원에게 며칠 만에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됐다.

○ 중동 부호(富豪)에게 인기 높은 북한 화가

[ㅊ]  북한 노동자들 가운데 기술이 뛰어난 극소수는 이른바 ‘청부업’을 한다. 주로 건설기술사나 벽화를 그리는 화가들이다. 이들은 집단 숙소생활을 하는 일반 노동자와 달리 따로 나와 살면서 독자적으로 일하는 대신 일정 금액을 간부들에게 꼬박꼬박 뇌물로 상납해야 한다. 한 청부업자는 카타르 항공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여성 승무원과 만나 연애를 하기도 했다.

 북한 노동자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인 청부업은 화가다. 이들은 손재주가 좋아 대형 벽화를 좋아하는 카타르 부호들에게 인기가 높다. 대개 m²당 2500리얄(약 83만 원)가량을 받기에 벽화 크기에 따라 손쉽게 수백만∼수천만 원을 벌 수 있다. 1년 반 만에 30만 달러를 벌어 귀국했다는 ‘성공담’이 북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도하의 부촌에 위치한 대저택 3층에 북한 화가가 그렸다는 벽화를 직접 확인했다. 가로 8m, 세로 3m 크기에 폭포를 그린 수묵화였다. 북한 화가와 종종 교류했다는 현지 교민은 “북한 화가가 폭포 그림으로 2000만 원 정도를 벌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8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탈북 소식이 알려지자 청부업을 전면 금지했지만 자금 사정이 열악해 조만간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도하=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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