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영 교수의 그림 읽기]우리의 현주소

등록 2007.04.07.
프랑스 파리 거리에서 길을 물으면 대개 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저 앞에 신호등이 보이죠? 거기서 우회전해서 약 50m 가면 또 하나의 신호등이 있습니다. 거기서 좌회전하여 약 20m 가면 그 번지의 집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길을 물으면 현지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의 대답이 보통 이렇습니다. “저기 큰 건물 보이죠? 저쪽으로 똑바로 가다가… 저기 뭐냐… 저기… 파출소나 편의점이 있을 거예요. 거기서 물어보세요.” 이렇게 대답의 나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합니다. 이러다 보니 우리는 길을 물으면서도 훨씬 더 많은 사람과 차례로 접촉하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건 어쩌면 서로 잘 아는 사람들끼리 한 동네에 오순도순 모여 살던 옛 농경사회가 남긴 정다운 단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건 낯선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합집산하면서 살아야 하는 현대의 복잡한 도시생활을 더욱 피곤하게 만드는 거대한 미로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농경사회와는 달리 복잡해진 도시의 미로는 곧 마음속에 또 하나의 미로를 만들어 내면서 ‘길 잃은 사람’ 특유의 맹목과 두려움을 자아냅니다. 복잡한 삶을 합리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객관화하는 논리적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번에 우리의 주소 표기 방식도 아시아 특유의 ‘지번’ 방식에서 서구식 ‘도로 이름’ 방식으로 바뀐다지요? 사람은 누구나 이동할 때 길을 따라 갑니다. 그리고 모든 길은 다른 길을 만나거나 아니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되돌아 나오게 만듭니다. 따라서 도로마다 고유한 이름을 붙이고 그 왼쪽은 홀수, 오른쪽은 짝수로 표시하는 도로 이름 방식이 훨씬 더 합리적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이제 찾아가는 목적지가 어딘지를 처음부터 알고 갈 수 있고 매번 다른 사람에게 묻기를 거듭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이제 남은 문제로 첫째는 그 모든 길에 예외 없이 이름을, 건물에 번호를 붙이는 일, 둘째는 그 이름과 번호를 실제의 길과 건물마다 일정한 규격으로 알기 쉽게 표시하는 일, 셋째는 그 도로 이름과 번호가 표시된 지도를 만드는 일이 남았습니다. 우리의 정신 속에는 아직도 농경사회의 미로가 자욱하게 뒤얽혀 있고 하루가 멀다 하며 재건축이다 리모델링이다 해서 도로와 집을 부수고 새로 바꾸는데 이런 논리적 삼위일체가 과연 언제쯤이면 가능할까요?

프랑스 파리 거리에서 길을 물으면 대개 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저 앞에 신호등이 보이죠? 거기서 우회전해서 약 50m 가면 또 하나의 신호등이 있습니다. 거기서 좌회전하여 약 20m 가면 그 번지의 집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길을 물으면 현지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의 대답이 보통 이렇습니다. “저기 큰 건물 보이죠? 저쪽으로 똑바로 가다가… 저기 뭐냐… 저기… 파출소나 편의점이 있을 거예요. 거기서 물어보세요.” 이렇게 대답의 나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합니다. 이러다 보니 우리는 길을 물으면서도 훨씬 더 많은 사람과 차례로 접촉하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건 어쩌면 서로 잘 아는 사람들끼리 한 동네에 오순도순 모여 살던 옛 농경사회가 남긴 정다운 단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건 낯선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합집산하면서 살아야 하는 현대의 복잡한 도시생활을 더욱 피곤하게 만드는 거대한 미로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농경사회와는 달리 복잡해진 도시의 미로는 곧 마음속에 또 하나의 미로를 만들어 내면서 ‘길 잃은 사람’ 특유의 맹목과 두려움을 자아냅니다. 복잡한 삶을 합리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객관화하는 논리적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번에 우리의 주소 표기 방식도 아시아 특유의 ‘지번’ 방식에서 서구식 ‘도로 이름’ 방식으로 바뀐다지요? 사람은 누구나 이동할 때 길을 따라 갑니다. 그리고 모든 길은 다른 길을 만나거나 아니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되돌아 나오게 만듭니다. 따라서 도로마다 고유한 이름을 붙이고 그 왼쪽은 홀수, 오른쪽은 짝수로 표시하는 도로 이름 방식이 훨씬 더 합리적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이제 찾아가는 목적지가 어딘지를 처음부터 알고 갈 수 있고 매번 다른 사람에게 묻기를 거듭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이제 남은 문제로 첫째는 그 모든 길에 예외 없이 이름을, 건물에 번호를 붙이는 일, 둘째는 그 이름과 번호를 실제의 길과 건물마다 일정한 규격으로 알기 쉽게 표시하는 일, 셋째는 그 도로 이름과 번호가 표시된 지도를 만드는 일이 남았습니다. 우리의 정신 속에는 아직도 농경사회의 미로가 자욱하게 뒤얽혀 있고 하루가 멀다 하며 재건축이다 리모델링이다 해서 도로와 집을 부수고 새로 바꾸는데 이런 논리적 삼위일체가 과연 언제쯤이면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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