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무너졌습니다’

등록 2008.02.11.
오늘 아침 출근길에 늘 그렇듯 숭례문 주변을 지나갔습니다. 언제나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울을 지켜줄 것만 같던 숭례문이 사라지고 서까래 잔해만 뒹굴고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충격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외신기자들이 보였습니다. 선진국 진입을 코앞에 둔 경제규모 11위 국가가 자신들이 가장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문화재를 이렇게 관리했다는 사실을 세계인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낯이 뜨거웠습니다.

국보1호인 문화재가 어떻게 이렇게 허술하고 주먹구구로 관리되어왔는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화재진압부터 소방 안전설비, 경비시스템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초기진화의 실패입니다. 숭례문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는 신고가 접수된 것이 어제 밤 8시 45분경. 숭례문에 설치된 무인경비시스템에도 이상을 알리는 적외선 신호가 감지됐습니다.

소방대는 비교적 빠른 시간인 5분 내에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불꽃이 피어오르지 않아 큰 불이 아닌 것으로 판단한 소방대는 고가사다리와 소방 호스를 동원해 불을 뿜어댔습니다.

하지만 연기는 쉽사리 잡히지 않았습니다. 밤 10시 30분이 넘어서야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소방대는 기와지붕 일부를 뜯어낼 수 있도록 문화재청에 요청했습니다.

결국 11시50분이 되어서야 소방대는 지붕해체 작업에 나섰지만 그때는 불꽃이 피어올라 지붕까지 접근도 어려웠고, 엄청난 물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지붕은 무너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오늘 0시 25분 누각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고 58분 2층 누각이 기와부터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방재 전문가들은 소방대가 평소 목조건축물에 대한 진압훈련이 안돼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빚어졌다고 지적합니다.

기와건물은 특성상 기와 아래에 황토층이 있고, 그 아래에 대들보와 기둥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기와를 뜯어내고 그 안으로 물을 흘려보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방대는 이런 사실을 몰랐습니다. 더욱이 숭례문은 튼튼한 ‘방수설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화재진화를 하려면 바로 해체작업부터 했어야 한다고 합니다.



숭례문 화재원인은 방화로 추정됩니다. 평소 일반시민의 접근과 관람이 허용된 문화재이면서도 야간에 경비가 없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밤 8시 이후 직원들이 퇴근하면 무인경비시스템만 가동됐다는 것입니다. 이 정부는 공무원을 그처럼 많이 늘렸으면서도 숭례문의 야간경비 한명 고용하지 않고 무얼 했는지 정말 모를 일입니다.

문화재는 사라진 다음에야 그 존재감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부모나 같은 존재입니다. 숭례문은 언젠가는 복원될 수 있겠지만 600년 조선역사의 위용과 함께 무너진 대한민국의 자존심은 쉽사리 복원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는 한 아무리 경제대국을 이룬다 해도 우리 국민이 바라는 선진화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오늘 아침 출근길에 늘 그렇듯 숭례문 주변을 지나갔습니다. 언제나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울을 지켜줄 것만 같던 숭례문이 사라지고 서까래 잔해만 뒹굴고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충격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외신기자들이 보였습니다. 선진국 진입을 코앞에 둔 경제규모 11위 국가가 자신들이 가장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문화재를 이렇게 관리했다는 사실을 세계인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낯이 뜨거웠습니다.

국보1호인 문화재가 어떻게 이렇게 허술하고 주먹구구로 관리되어왔는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화재진압부터 소방 안전설비, 경비시스템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초기진화의 실패입니다. 숭례문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는 신고가 접수된 것이 어제 밤 8시 45분경. 숭례문에 설치된 무인경비시스템에도 이상을 알리는 적외선 신호가 감지됐습니다.

소방대는 비교적 빠른 시간인 5분 내에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불꽃이 피어오르지 않아 큰 불이 아닌 것으로 판단한 소방대는 고가사다리와 소방 호스를 동원해 불을 뿜어댔습니다.

하지만 연기는 쉽사리 잡히지 않았습니다. 밤 10시 30분이 넘어서야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소방대는 기와지붕 일부를 뜯어낼 수 있도록 문화재청에 요청했습니다.

결국 11시50분이 되어서야 소방대는 지붕해체 작업에 나섰지만 그때는 불꽃이 피어올라 지붕까지 접근도 어려웠고, 엄청난 물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지붕은 무너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오늘 0시 25분 누각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고 58분 2층 누각이 기와부터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방재 전문가들은 소방대가 평소 목조건축물에 대한 진압훈련이 안돼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빚어졌다고 지적합니다.

기와건물은 특성상 기와 아래에 황토층이 있고, 그 아래에 대들보와 기둥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기와를 뜯어내고 그 안으로 물을 흘려보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방대는 이런 사실을 몰랐습니다. 더욱이 숭례문은 튼튼한 ‘방수설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화재진화를 하려면 바로 해체작업부터 했어야 한다고 합니다.



숭례문 화재원인은 방화로 추정됩니다. 평소 일반시민의 접근과 관람이 허용된 문화재이면서도 야간에 경비가 없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밤 8시 이후 직원들이 퇴근하면 무인경비시스템만 가동됐다는 것입니다. 이 정부는 공무원을 그처럼 많이 늘렸으면서도 숭례문의 야간경비 한명 고용하지 않고 무얼 했는지 정말 모를 일입니다.

문화재는 사라진 다음에야 그 존재감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부모나 같은 존재입니다. 숭례문은 언젠가는 복원될 수 있겠지만 600년 조선역사의 위용과 함께 무너진 대한민국의 자존심은 쉽사리 복원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는 한 아무리 경제대국을 이룬다 해도 우리 국민이 바라는 선진화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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