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역들 1. 경춘선 화랑대역
등록 2009.04.15.서울의 마지막 간이역, 화랑대역의 아름다운 배려
“철도 1819호, 화랑대.”
“1819호, 이상.”
“화랑대 본선확인 통과, 안전운행 합시다.”
승강장으로 춘천발 청량리행 무궁화호 열차가 들어온다. 하지만 열차는 정차하지 않고 그대로 내달린다.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29-3번지 화랑대역. 이 역은 서울에 남은 마지막 간이역이다.
경춘선이 지나는 이 곳에도 역무원이 배치되어 있다. 하루 38회의 열차가 지나간다. 이 중 역에 서는 열차는 무궁화호열차 7회. 이용객은 하루 20명 내외다.
하지만 ‘소수를 위한 배려’는 간이역의 존재 이유이자 최대 미덕이다. 화랑대역은 그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오래된 나무의자와 손 때 묻은 탁자, 설치된 미술품들까지. 회색 숲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잠시 시골의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 주는 곳이다. 주변엔 숲이 푸르다.
하지만 이 역은 2010년 말 없어질 예정이다. 1939년에 태릉역으로 영업 시작, 1958년 인접한 육군사관학교의 이름을 빌려 현재의 역명으로 변경한 화랑대역은 70여 년간 젊음과 낭만의 대명사 경춘선의 서울 길목을 지켜왔다.
하지만 철도 현대화를 내세운 흐름을 이기지 못했다. 2006년 등록문화재 300호로 지정된 건물은 보존되지만 철로는 새로운 길을 따라 우회하고 그 자리에는 시민들을 위한 공원이 들어서게 된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회색 땅 위에 섬처럼 푸른 빛을 내며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와 손님을 기다리는 그 고즈넉함이 사라진다니 아쉽다.
“14시 27분에 청량리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타는 곳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안전선 안쪽으로 물러서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역사에 무궁화호 정기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퍼진다. 하지만 승강장에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공허한 방송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혹시 누군가 이 역에 내릴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열차가 서서히 진입해 멈추고 문이 열린다. 내리는 사람은 단 한명. 인근 군부대를 방문한 승객이다. 하지만 괜찮다. 단 한 사람이라도 그를 위해 기꺼이 존재하는 것이 간이역 아니던가.
역이 그 소임을 다하면서 젊음과 낭만을 싣고 달리던 경춘선의 추억도 함께 사라져 갈 것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묵묵히 서 있었던 간이역의 그 `배려`는 이어지기를.
이철 동아닷컴 기자 kino27@donga.com
◀ 속도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역들 ▶굳게 닫힌 시간의 문, 서울 교외선 온릉역쉬어감의 미학이 남아있는 곳, 경춘선 사릉역짧지만 긴 여운이 남는 곳, 경춘선 김유정역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 화랑대역의 아름다운 배려
“철도 1819호, 화랑대.”
“1819호, 이상.”
“화랑대 본선확인 통과, 안전운행 합시다.”
승강장으로 춘천발 청량리행 무궁화호 열차가 들어온다. 하지만 열차는 정차하지 않고 그대로 내달린다.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29-3번지 화랑대역. 이 역은 서울에 남은 마지막 간이역이다.
경춘선이 지나는 이 곳에도 역무원이 배치되어 있다. 하루 38회의 열차가 지나간다. 이 중 역에 서는 열차는 무궁화호열차 7회. 이용객은 하루 20명 내외다.
하지만 ‘소수를 위한 배려’는 간이역의 존재 이유이자 최대 미덕이다. 화랑대역은 그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오래된 나무의자와 손 때 묻은 탁자, 설치된 미술품들까지. 회색 숲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잠시 시골의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 주는 곳이다. 주변엔 숲이 푸르다.
하지만 이 역은 2010년 말 없어질 예정이다. 1939년에 태릉역으로 영업 시작, 1958년 인접한 육군사관학교의 이름을 빌려 현재의 역명으로 변경한 화랑대역은 70여 년간 젊음과 낭만의 대명사 경춘선의 서울 길목을 지켜왔다.
하지만 철도 현대화를 내세운 흐름을 이기지 못했다. 2006년 등록문화재 300호로 지정된 건물은 보존되지만 철로는 새로운 길을 따라 우회하고 그 자리에는 시민들을 위한 공원이 들어서게 된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회색 땅 위에 섬처럼 푸른 빛을 내며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와 손님을 기다리는 그 고즈넉함이 사라진다니 아쉽다.
“14시 27분에 청량리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타는 곳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안전선 안쪽으로 물러서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역사에 무궁화호 정기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퍼진다. 하지만 승강장에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공허한 방송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혹시 누군가 이 역에 내릴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열차가 서서히 진입해 멈추고 문이 열린다. 내리는 사람은 단 한명. 인근 군부대를 방문한 승객이다. 하지만 괜찮다. 단 한 사람이라도 그를 위해 기꺼이 존재하는 것이 간이역 아니던가.
역이 그 소임을 다하면서 젊음과 낭만을 싣고 달리던 경춘선의 추억도 함께 사라져 갈 것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묵묵히 서 있었던 간이역의 그 `배려`는 이어지기를.
이철 동아닷컴 기자 kino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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