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여행-행주산성
등록 2010.10.08.행주산성을 찾았다면 한강이 내다뵈는 강변식당에서 장어구이 한 번 맛보는 식도락은 참새방앗간 아닐까. 그곳은 행주산성 아래 행주외동, 그러니까 행주대교 북단 강변에 들어선 ‘소애촌’ 식당가다. ‘샛말’이라고 불리는 이곳 장어식당 촌 역사는 벌써 50년을 훌쩍 넘겼다. 초창기만 해도 이곳에선 행주나루 어부가 직접 잡은 장어를 취급했다. 하지만 수질악화와 수중보 설치로 서해장어가 더 이상 이곳까지 오르지 못한 지난 30년 새 사정은 변했다. 장어는 크게 줄어 외지 장어를 쓴다. 그래도 식당은 계속 늘어 20곳이 넘는다.
소애촌 식당가에도 터줏대감이 있다. 60여년 역사 행주가든의 여주인 박성자씨(79)다. 애초 식당은 행주나루 돌방구지(큰 돌이 이룬 절벽아래 지형)물가의 수상가옥이었다. 박씨는 드럼통을 엮어 만든 바지선 위에서 밥 짓고 음식을 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나룻배를 저어 강 건너 개화산 밑 공암과 행주, 두 나루를 오가며 16년간 뱃사공(1963~78년)도 했다. 행주가든을 지은 것은 당시 이 자리에 있던 식당 ‘서일루’가 홍수에 떠내려간 직후. 행주가든 터는 돌방구지 강안을 흙으로 돋워 닦아 만든 자리로 강안의 전망이 무척 좋다.
79세 고령에도 고운 피부에 건강도 좋아 보이는 박씨. “장어 많이 드셔서 그런 가 봐요.” 그런데 그 대답에 가슴이 찡해왔다. “대장간에 칼이 논다고 평생 장어장사 했지만 내 먹을라고 구운 건 한 마리도 없어.”
식당은 강안이 훤히 내다뵈는 유리창이 한 벽을 이루고 있다. 그 창밖으로 한강 물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다. 강에서는 행주어촌계 어민들이 1t도 안되는 작은 동력선에서 참게통발을 던지고 있었다. 강 건너 올림픽대로로는 자동차가 질주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하류 쪽 풍치는 행주대교에 가로막혀 영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상류 쪽은 강이 훤히 내다보였다. 홍수 때 물이 불으면 식당 창밖으로 강물의 넘실거림까지 보인단다. 박씨는 행주외동에서 태어난 토박이. 행주성당의 5대 박우철 바오로신부(1926~1935년 재임)가 큰아버지로 부모는 부임하던 박 신부를 따라와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서해물길과 한강수운의 연결점 행주나루
행주나루와 산성은 그 역사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그런 오랜 역사의 초점은 역시 한강이란 큰 강이다. 주변 평야가 훤히 조망되는 덕양산은 강 건너 마주한 개화산과 더불어 강을 통해 진입하는 적을 방비하기에 그만이다. 그리고 한강은 반도의 중심으로 진출하기 위한 유일한 물길이었고 또 서울지역 주민의 생명수였다.
산성은 마을을 낳고 마을은 사람을 불러들이며 그 사람이 길을 트고 그 길로는 문물이 오갔다. 행주나루는 바로 그 한강의 길목이다. 여기서 뱃사공을 했던 행주가든 박성자씨의 말을 들어보자. “강 건너편에서 ‘사공’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노를 저어 건너가 나룻배로 강을 건네줬어. 그때만 해도 강폭이 지금 절반정도여서 부르면 다 들렸거든. 배 삯? 군청서는 5원만 받으라고 했는데 배짓느라 진 빚 갚느라 곱절로 받았지. 가끔 뱃놀이 오면 산성아래 절벽까지 갔다 오곤 했지. 배타는 손님 중엔 부평장 일산장을 옮겨 다니는 장꾼도 많았고 강 건너 친정 다녀가던 새댁도 생각나는구먼. 소도 많이 태웠어. 부평 장에서 사가지고 파주까지 몰고 가던 농민들이었지.”
나루나 포구는 지금으로 치면 버스터미널 격. 배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운송의 주역이었던 시절이었으니 그 배가 닿는 곳이라면 사람과 물건, 돈이 흥청거릴 수밖에. 행주나루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허다한 한강의 포구와 나루에서도 아주 특별했다. 서해바다로 수송된 전국의 세곡과 세금, 생선과 물자를 도성으로 실어 나를 때 반드시 들르던 중간보급기지이자 국제교역 항이었기 때문. 그래서 행주는 ‘포’보다 규모가 적은 ‘나루’여도 배후 마을이 컸고 나루에는 중앙관청까지 나와 있었다. ‘관청너머’라는 식당이름은 바로 그 역사를 담고 있다. 이 식당은 소애촌 식당가의 뒤편 언덕 너머 자유로 방향의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옛 한옥건물의 토속식당. 집주인 이송희씨(74)는 “관청이 저 (언덕)너머 있어서 옛날부터 식당이 든 이곳을 관청너머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그런 행주나루 역사가 명을 다한 것은 1978년. 행주대교 개통과 동시에 나룻배와 함께 사라졌다. 나루의 정확한 위치는 행주대교 북단교각에서 상류 쪽으로 400m쯤 떨어진 행주가든 식당 아래 강변의 돌방구지. 당시 나루는 백사장이었는데 지금은 수중보 설치로 인한 수면상승과 뻘흙 축적으로 사라졌다. 행주가든 주차장 입구의 ‘행주나루터’ 표석만이 여기 나루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행주산성 앞 한강에는 아직도 고기잡이 어부가 있다. 행주어촌계 42명 중 33명이 여기서 매일 그물과 통발을 던진다. 요즘은 참게 잡이가 한창. 철마다 웅어와 황복, 장어도 잡지만 그 양은 미미한 편이다. “지난달 호우 때 장어그물과 참게통발이 몽땅 떠내려가 어민들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경인 아라뱃길 낸다고 준설하느라 고기잡이도 어려워지고….” 어촌계 총무 최재후 씨의 한숨 섞인 말이다. 자연산 장어도 잡히는데 소매가는 한 마리(700~800g)에 15만 원 안팎이라고.
조성하 동아일보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소애촌 식당가 터줏대감 ‘행주가든’ 박성자씨
행주산성을 찾았다면 한강이 내다뵈는 강변식당에서 장어구이 한 번 맛보는 식도락은 참새방앗간 아닐까. 그곳은 행주산성 아래 행주외동, 그러니까 행주대교 북단 강변에 들어선 ‘소애촌’ 식당가다. ‘샛말’이라고 불리는 이곳 장어식당 촌 역사는 벌써 50년을 훌쩍 넘겼다. 초창기만 해도 이곳에선 행주나루 어부가 직접 잡은 장어를 취급했다. 하지만 수질악화와 수중보 설치로 서해장어가 더 이상 이곳까지 오르지 못한 지난 30년 새 사정은 변했다. 장어는 크게 줄어 외지 장어를 쓴다. 그래도 식당은 계속 늘어 20곳이 넘는다.
소애촌 식당가에도 터줏대감이 있다. 60여년 역사 행주가든의 여주인 박성자씨(79)다. 애초 식당은 행주나루 돌방구지(큰 돌이 이룬 절벽아래 지형)물가의 수상가옥이었다. 박씨는 드럼통을 엮어 만든 바지선 위에서 밥 짓고 음식을 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나룻배를 저어 강 건너 개화산 밑 공암과 행주, 두 나루를 오가며 16년간 뱃사공(1963~78년)도 했다. 행주가든을 지은 것은 당시 이 자리에 있던 식당 ‘서일루’가 홍수에 떠내려간 직후. 행주가든 터는 돌방구지 강안을 흙으로 돋워 닦아 만든 자리로 강안의 전망이 무척 좋다.
79세 고령에도 고운 피부에 건강도 좋아 보이는 박씨. “장어 많이 드셔서 그런 가 봐요.” 그런데 그 대답에 가슴이 찡해왔다. “대장간에 칼이 논다고 평생 장어장사 했지만 내 먹을라고 구운 건 한 마리도 없어.”
식당은 강안이 훤히 내다뵈는 유리창이 한 벽을 이루고 있다. 그 창밖으로 한강 물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다. 강에서는 행주어촌계 어민들이 1t도 안되는 작은 동력선에서 참게통발을 던지고 있었다. 강 건너 올림픽대로로는 자동차가 질주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하류 쪽 풍치는 행주대교에 가로막혀 영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상류 쪽은 강이 훤히 내다보였다. 홍수 때 물이 불으면 식당 창밖으로 강물의 넘실거림까지 보인단다. 박씨는 행주외동에서 태어난 토박이. 행주성당의 5대 박우철 바오로신부(1926~1935년 재임)가 큰아버지로 부모는 부임하던 박 신부를 따라와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서해물길과 한강수운의 연결점 행주나루
행주나루와 산성은 그 역사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그런 오랜 역사의 초점은 역시 한강이란 큰 강이다. 주변 평야가 훤히 조망되는 덕양산은 강 건너 마주한 개화산과 더불어 강을 통해 진입하는 적을 방비하기에 그만이다. 그리고 한강은 반도의 중심으로 진출하기 위한 유일한 물길이었고 또 서울지역 주민의 생명수였다.
산성은 마을을 낳고 마을은 사람을 불러들이며 그 사람이 길을 트고 그 길로는 문물이 오갔다. 행주나루는 바로 그 한강의 길목이다. 여기서 뱃사공을 했던 행주가든 박성자씨의 말을 들어보자. “강 건너편에서 ‘사공’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노를 저어 건너가 나룻배로 강을 건네줬어. 그때만 해도 강폭이 지금 절반정도여서 부르면 다 들렸거든. 배 삯? 군청서는 5원만 받으라고 했는데 배짓느라 진 빚 갚느라 곱절로 받았지. 가끔 뱃놀이 오면 산성아래 절벽까지 갔다 오곤 했지. 배타는 손님 중엔 부평장 일산장을 옮겨 다니는 장꾼도 많았고 강 건너 친정 다녀가던 새댁도 생각나는구먼. 소도 많이 태웠어. 부평 장에서 사가지고 파주까지 몰고 가던 농민들이었지.”
나루나 포구는 지금으로 치면 버스터미널 격. 배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운송의 주역이었던 시절이었으니 그 배가 닿는 곳이라면 사람과 물건, 돈이 흥청거릴 수밖에. 행주나루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허다한 한강의 포구와 나루에서도 아주 특별했다. 서해바다로 수송된 전국의 세곡과 세금, 생선과 물자를 도성으로 실어 나를 때 반드시 들르던 중간보급기지이자 국제교역 항이었기 때문. 그래서 행주는 ‘포’보다 규모가 적은 ‘나루’여도 배후 마을이 컸고 나루에는 중앙관청까지 나와 있었다. ‘관청너머’라는 식당이름은 바로 그 역사를 담고 있다. 이 식당은 소애촌 식당가의 뒤편 언덕 너머 자유로 방향의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옛 한옥건물의 토속식당. 집주인 이송희씨(74)는 “관청이 저 (언덕)너머 있어서 옛날부터 식당이 든 이곳을 관청너머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그런 행주나루 역사가 명을 다한 것은 1978년. 행주대교 개통과 동시에 나룻배와 함께 사라졌다. 나루의 정확한 위치는 행주대교 북단교각에서 상류 쪽으로 400m쯤 떨어진 행주가든 식당 아래 강변의 돌방구지. 당시 나루는 백사장이었는데 지금은 수중보 설치로 인한 수면상승과 뻘흙 축적으로 사라졌다. 행주가든 주차장 입구의 ‘행주나루터’ 표석만이 여기 나루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행주산성 앞 한강에는 아직도 고기잡이 어부가 있다. 행주어촌계 42명 중 33명이 여기서 매일 그물과 통발을 던진다. 요즘은 참게 잡이가 한창. 철마다 웅어와 황복, 장어도 잡지만 그 양은 미미한 편이다. “지난달 호우 때 장어그물과 참게통발이 몽땅 떠내려가 어민들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경인 아라뱃길 낸다고 준설하느라 고기잡이도 어려워지고….” 어촌계 총무 최재후 씨의 한숨 섞인 말이다. 자연산 장어도 잡히는데 소매가는 한 마리(700~800g)에 15만 원 안팎이라고.
조성하 동아일보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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