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멘토 간호섭, 나라면 ‘프런코’ 도전 안했을것

등록 2012.05.14.

나긋한 목소리와 말투, 짙은 쌍꺼풀을 가진 그를 처음 보면 ‘여성스러움’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와 조금만 이야기해보면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강인함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남성미를 느낄 수 있다.

패션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프런코)에 출연하며 패션 꿈나무들에 최고의 멘토로 떠오른 간호섭 홍익대 교수다.

고생 한번 안 했을 것 같은 외모를 가졌지만, 그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겪었던 설움과 노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패션계의 독설가 간호섭을 만났다.

Q: 치과대학을 다니다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꿨다고 들었다.

A: 디자인이 너무 하고 싶었다. 부모님께서 산수 풀라고 준 시험지에다 디자인을 그렸던 것이 수십 장이다. 집안의 분위기가 엄했고, 용기가 없었던 탓도 있었고. 또 시대적인 상황이 무르익지 않았던 때라 그 시절 한국에 있는 대학교 의상과들은 남자들 입학을 받지 않았었다. 내가 입학하기 전년도에 남학생이 입학하는 것을 허가했다. 지금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그때는 그랬다.

Q: 파리가 아닌 뉴욕으로 유학을 가게 된 이유는?

A: 3월의 프랑스 파리는 다섯 시면 해가 떨어지고 그때도 진눈깨비가 날리고 다섯 시만 되면 ‘드라큘라가 나오겠다’ 싶을 정도로 약간 음침하다. 스튜디오베르소, 파리 의상조합, 에스모드 등 여러 학교를 둘러봤는데 "과연 내가 여기가 맞을까?"라는 회의가 들어서 바로 뉴욕으로 갔다.

Q: 유학 생활을 보내며 힘든 시기는 언제였나?

A: 가장 힘든 것은 나 자신을 이기는 것이었다. 패션은 철저히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이야기한다. 자기 것을 발견하는 것, 자기 디자인을 하는 것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걸 이기고, 극복해야 한다.

Q: 젊은 시절 와 같은 패션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도전했을까?

A: 현재로서는 그 시스템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안 할 것 같다(웃음).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 상황에 주어지는 미션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펼쳐진다. 내가 봤을 때 이 사람은 ‘파이널3’에 가겠다. 하는 분들이 떨어진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그분들은 최종 우승자 못지않게 디자인계에서 활동하는 분들도 많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도전을 못해도 멋모르는 학생 때는 했을 것 같다. 나는 어떻게 보면 젊은 나이에 많이 알려진 편인데, 패션 세계에서 오랫동안 이 자리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금방 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계속 끊임없이 화제작을 만들어냈고 늘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Q: 노력과 재능,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A: 잘 가공된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와 깎아 내지 않은 5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있다. 깎아 내지 않은 다이아몬드는 뿌연 돌덩이일 뿐이다. 유리 조각처럼 빛나지도 않는다. 만약 내 앞에 반짝이는 1캐럿의 다이아몬드와 뿌연 돌덩이의 5캐럿짜리가 있다면, 사람들은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다이아몬드로 볼 것이다.

Q: 패션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A: 오랜 세월 한 분야에 있다 보면 그 분야의 철학이 생긴다. 대학원 강의할 때 이런 말을 한다. ‘여러분은 그것에 대해서 철학을 가지고 계시냐, 오늘이 됐건 10년 후가 됐건 꼭 발견했으면 좋겠다’. 나도 아직 감히 패션의 철학을 발견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패션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패션을 인체 위에 그리는 원근법이라고 표현한다. 천은 평면이지만, 사람 몸은 평면이 아니다. 그림도 평면에 원근법을 넣어 그림이 살아나 보이는 것처럼 옷에서도 사람의 올록볼록한 원근법에 다가가는 것이다. 무수한 굴곡이 있는 인체를 그냥 단순한 천을 가지고 새롭게 바꾸는 작업이다.
윤태진, 김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taejin107@kyobobook.co.kr,


나긋한 목소리와 말투, 짙은 쌍꺼풀을 가진 그를 처음 보면 ‘여성스러움’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와 조금만 이야기해보면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강인함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남성미를 느낄 수 있다.

패션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프런코)에 출연하며 패션 꿈나무들에 최고의 멘토로 떠오른 간호섭 홍익대 교수다.

고생 한번 안 했을 것 같은 외모를 가졌지만, 그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겪었던 설움과 노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패션계의 독설가 간호섭을 만났다.

Q: 치과대학을 다니다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꿨다고 들었다.

A: 디자인이 너무 하고 싶었다. 부모님께서 산수 풀라고 준 시험지에다 디자인을 그렸던 것이 수십 장이다. 집안의 분위기가 엄했고, 용기가 없었던 탓도 있었고. 또 시대적인 상황이 무르익지 않았던 때라 그 시절 한국에 있는 대학교 의상과들은 남자들 입학을 받지 않았었다. 내가 입학하기 전년도에 남학생이 입학하는 것을 허가했다. 지금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그때는 그랬다.

Q: 파리가 아닌 뉴욕으로 유학을 가게 된 이유는?

A: 3월의 프랑스 파리는 다섯 시면 해가 떨어지고 그때도 진눈깨비가 날리고 다섯 시만 되면 ‘드라큘라가 나오겠다’ 싶을 정도로 약간 음침하다. 스튜디오베르소, 파리 의상조합, 에스모드 등 여러 학교를 둘러봤는데 "과연 내가 여기가 맞을까?"라는 회의가 들어서 바로 뉴욕으로 갔다.

Q: 유학 생활을 보내며 힘든 시기는 언제였나?

A: 가장 힘든 것은 나 자신을 이기는 것이었다. 패션은 철저히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이야기한다. 자기 것을 발견하는 것, 자기 디자인을 하는 것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걸 이기고, 극복해야 한다.

Q: 젊은 시절 와 같은 패션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도전했을까?

A: 현재로서는 그 시스템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안 할 것 같다(웃음).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 상황에 주어지는 미션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펼쳐진다. 내가 봤을 때 이 사람은 ‘파이널3’에 가겠다. 하는 분들이 떨어진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그분들은 최종 우승자 못지않게 디자인계에서 활동하는 분들도 많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도전을 못해도 멋모르는 학생 때는 했을 것 같다. 나는 어떻게 보면 젊은 나이에 많이 알려진 편인데, 패션 세계에서 오랫동안 이 자리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금방 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계속 끊임없이 화제작을 만들어냈고 늘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Q: 노력과 재능,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A: 잘 가공된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와 깎아 내지 않은 5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있다. 깎아 내지 않은 다이아몬드는 뿌연 돌덩이일 뿐이다. 유리 조각처럼 빛나지도 않는다. 만약 내 앞에 반짝이는 1캐럿의 다이아몬드와 뿌연 돌덩이의 5캐럿짜리가 있다면, 사람들은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다이아몬드로 볼 것이다.

Q: 패션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A: 오랜 세월 한 분야에 있다 보면 그 분야의 철학이 생긴다. 대학원 강의할 때 이런 말을 한다. ‘여러분은 그것에 대해서 철학을 가지고 계시냐, 오늘이 됐건 10년 후가 됐건 꼭 발견했으면 좋겠다’. 나도 아직 감히 패션의 철학을 발견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패션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패션을 인체 위에 그리는 원근법이라고 표현한다. 천은 평면이지만, 사람 몸은 평면이 아니다. 그림도 평면에 원근법을 넣어 그림이 살아나 보이는 것처럼 옷에서도 사람의 올록볼록한 원근법에 다가가는 것이다. 무수한 굴곡이 있는 인체를 그냥 단순한 천을 가지고 새롭게 바꾸는 작업이다.
윤태진, 김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taejin107@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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