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말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활동 모습
등록 2013.02.25.1979.11.21∼1997.12.10
“그 시절이 은둔과 칩거로 치부될 때 나는 쓴웃음만…”
1979년 10월 26일 밤 12시 무렵.
청와대 본관 2층, 박근혜 씨의 방문 앞 전실(前室)에는 감색 양복 한쪽 소매가 피에 젖은 김계원 비서실장이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그 뒤에는 방금 전 근령 씨로 하여금 언니 근혜 씨를 깨워 달라고 한 전석영 총무비서관이 있었다. 김 실장이 머뭇거리며 박정희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전했다. 충격에 빠진 근혜 씨 입에서 “전방은 괜찮습니까”라는 얘기가 나온 것은 그때였다. “비상계엄을 내렸다”고 답한 김 실장은 뒤이어 “함정에 빠졌다…”고 우물거렸다.
비서실장실은 황망한 수석비서관들로 어수선했다. 박 대통령의 시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던 수석들은 아침에 청와대로 모시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전 전 비서관은 “수석들은 바깥을 김재규가 장악했다고 여겼는지, 당장 모셔오려면 복잡한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술회했다. “아침에 모시면 국민들이 알고 더 소동이 난다. 지금 바로 모시는 게 도리이자 정상적”이라는 말과 함께 전 비서관이 나갔다.
전 비서관은 근령 씨에게 아버지에게 입힐 검은 옷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그 5년 전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셨을 때 흰 옷을 준비해서 병원에 갔던 기억이 났습니다. 총에 맞으셨으니 옷에 문제가 있지 않겠나 했습니다. 소접견실에 빈소를 마련하라고 부속실에 말한 것도 그때 기억을 따랐습니다.”
청와대와 인접한 종로구 소격동 국군서울지구병원 응급실.
수술대에 누워 있던 박 대통령에게 옷을 갈아입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 비서관은 그곳까지 따라온 근령 씨가 충격을 받을까 봐 밖에 나가 있어 달라고 했다. 동행했던 청와대 경호원 2명과 김병수 국군서울지구병원 원장의 힘을 빌려 겨우 옷을 갈아입힐 수 있었다. 앰뷸런스에 실려 청와대로 온 시신을 흰 보를 덮어 싸늘한 탁자 위에 뉘었다. 그 앞에 병풍이 쳐졌다. 육 여사의 시신이 누워 있던 그 공간, 바로 그곳이었다.
부속실에서 급히 마련한 제상에는 북어찜이 올라왔다. 식당에서는 “큰 영애께서 대통령이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해서 갖다 놨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중에 큰 영애한테 물어보니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고건 전 국무총리(당시 행정수석비서관)는 그렇게 기억했다. 소식을 듣고 소접견실 빈소를 가장 먼저 찾은 청와대 밖 인사는 이용희 국토통일원 장관과 동훈 차관이었다.
27일 동이 튼 뒤 성복제(成服祭)를 올리고 나서야 청와대 비서실은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빈소도 소접견실에서 대접견실로 옮겼다. 수석 가운데 서열상 맨 위인 최광수 의전수석비서관이 고건 행정수석에게 국장(國葬)을 준비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장과 관련한 주요 결정은 고 수석의 몫이 아니었다. “주로 JP(김종필 전 총리)가 친인척을 대표해서 했지요. 영구차를 어떤 모양으로 제작하라고 지시한 분도 JP였습니다.” JP는 흰 국화로 뒤덮은 버스 중간을 유리로 만들어 밖에서 안의 관을 볼 수 있도록 한 영구차 모양을 메모지에 그려서 고 수석에게 건넸다.
그렇게 10·26의 밤이 지나갔다. 근혜 씨의 방은 자신의 자서전 표현대로 ‘무섭도록 적막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몸에 한기가 돌더니 온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사람이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울음조차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2007년)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기사 원문 읽기] 박근혜의 그 열여덟해
1979.11.21∼1997.12.10
“그 시절이 은둔과 칩거로 치부될 때 나는 쓴웃음만…”
1979년 10월 26일 밤 12시 무렵.
청와대 본관 2층, 박근혜 씨의 방문 앞 전실(前室)에는 감색 양복 한쪽 소매가 피에 젖은 김계원 비서실장이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그 뒤에는 방금 전 근령 씨로 하여금 언니 근혜 씨를 깨워 달라고 한 전석영 총무비서관이 있었다. 김 실장이 머뭇거리며 박정희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전했다. 충격에 빠진 근혜 씨 입에서 “전방은 괜찮습니까”라는 얘기가 나온 것은 그때였다. “비상계엄을 내렸다”고 답한 김 실장은 뒤이어 “함정에 빠졌다…”고 우물거렸다.
비서실장실은 황망한 수석비서관들로 어수선했다. 박 대통령의 시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던 수석들은 아침에 청와대로 모시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전 전 비서관은 “수석들은 바깥을 김재규가 장악했다고 여겼는지, 당장 모셔오려면 복잡한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술회했다. “아침에 모시면 국민들이 알고 더 소동이 난다. 지금 바로 모시는 게 도리이자 정상적”이라는 말과 함께 전 비서관이 나갔다.
전 비서관은 근령 씨에게 아버지에게 입힐 검은 옷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그 5년 전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셨을 때 흰 옷을 준비해서 병원에 갔던 기억이 났습니다. 총에 맞으셨으니 옷에 문제가 있지 않겠나 했습니다. 소접견실에 빈소를 마련하라고 부속실에 말한 것도 그때 기억을 따랐습니다.”
청와대와 인접한 종로구 소격동 국군서울지구병원 응급실.
수술대에 누워 있던 박 대통령에게 옷을 갈아입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 비서관은 그곳까지 따라온 근령 씨가 충격을 받을까 봐 밖에 나가 있어 달라고 했다. 동행했던 청와대 경호원 2명과 김병수 국군서울지구병원 원장의 힘을 빌려 겨우 옷을 갈아입힐 수 있었다. 앰뷸런스에 실려 청와대로 온 시신을 흰 보를 덮어 싸늘한 탁자 위에 뉘었다. 그 앞에 병풍이 쳐졌다. 육 여사의 시신이 누워 있던 그 공간, 바로 그곳이었다.
부속실에서 급히 마련한 제상에는 북어찜이 올라왔다. 식당에서는 “큰 영애께서 대통령이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해서 갖다 놨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중에 큰 영애한테 물어보니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고건 전 국무총리(당시 행정수석비서관)는 그렇게 기억했다. 소식을 듣고 소접견실 빈소를 가장 먼저 찾은 청와대 밖 인사는 이용희 국토통일원 장관과 동훈 차관이었다.
27일 동이 튼 뒤 성복제(成服祭)를 올리고 나서야 청와대 비서실은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빈소도 소접견실에서 대접견실로 옮겼다. 수석 가운데 서열상 맨 위인 최광수 의전수석비서관이 고건 행정수석에게 국장(國葬)을 준비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장과 관련한 주요 결정은 고 수석의 몫이 아니었다. “주로 JP(김종필 전 총리)가 친인척을 대표해서 했지요. 영구차를 어떤 모양으로 제작하라고 지시한 분도 JP였습니다.” JP는 흰 국화로 뒤덮은 버스 중간을 유리로 만들어 밖에서 안의 관을 볼 수 있도록 한 영구차 모양을 메모지에 그려서 고 수석에게 건넸다.
그렇게 10·26의 밤이 지나갔다. 근혜 씨의 방은 자신의 자서전 표현대로 ‘무섭도록 적막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몸에 한기가 돌더니 온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사람이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울음조차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2007년)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기사 원문 읽기] 박근혜의 그 열여덟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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